순박한 시골 청년이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충남 아산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정이리이리 작가(본명은 이정일)는 <씨네21>과의 인터뷰를 위해서 KTX를 타고 서울에 왔다. 그는 미디어다음에 조선시대 궁궐의 일곱 세자와 주변인물을 그린 <세자전>을 연재중이다. 데뷔작은 자신의 집주변 식물, 동물 등을 소재로 한 <잡초이야기>였다. 데뷔 이후 애인이 없는 솔로들의 애환을 담은 만화 <오! 솔로>로 인기를 얻었다. 조금은 느릿한 그의 말투가 정겨웠다.
-웹진에서 한 인터뷰를 봤다. 그때는 기자들이 시골로 내려가서 인터뷰를 했더라. =맞다. 그런데 그 인터뷰를 한 사람은 아는 사람이었다. 학사장교(ROTC)로 제대했는데 중대원이었던 친구가 문화 관련쪽 일을 한다고 인터뷰를 해달라고 하더라.
-정이리이리 작가에 대해 정말 잘 알려면 시골에 가야 맞는 것 같다. =만약 아산에 내려왔으면 목가적인 분위기로, 웹툰 작가라는 느낌보다는 영농후계자? 이런 느낌으로 “농사, 바뀌어야 한다” 그러지 않았을까. (웃음)
-그래서 궁금한데, 웹툰 작가가 꼭 서울에 있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시골에 내려간 이유가 뭔가. =어릴 때부터 시골에 살았고 거기가 고향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때부터 자취하면서 나와 살았는데 부모님이 농사도 지으시고, 소도 키우시고 하는데 힘에 부치셨는지 도와달라고 하셔서 내려가게 됐다. 처음에는 답답하고 그랬는데 마침 만화 연재도 시작됐고 때가 맞았던 것 같다.
-지금까지 세 작품을 했다. <잡초이야기> <오! 솔로> <세자전>이다. =<잡초이야기>가 데뷔작이다. 공대를 졸업하고 애니메이션학과로 편입했다. 졸업작품이 <잡초이야기>다. 애니메이션을 웹툰으로 바꿔서 데뷔했다.
-공대를 졸업한 건 몰랐다. 애니메이션 전공이라고만 봐서 원래는 애니메이션 관련 일을 하다가 웹툰으로 진로를 바꾼 줄 알았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대개의 부모님처럼 우리 부모님도 반대를 하셔서 다른 사람들처럼 점수에 맞춰서 대학에 갔고, 군대를 갔는데 군대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못 견딜 것 같더라. 그래서 학사장교 기간을 채우자마자 제대하고 편입했다. 당장 만화가를 시작할 수도 있었는데 그때는 겁이 나고 해서 대학에서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려 했다. 만화과 시험도 봤다. 입시미술학원도 다녔는데 처음 갔을 때 띠동갑 중학생과 같이 배웠다. 애니메이션학과에도 만화 전공이 있다고 그 학교를 갔는데 아니더라. 그냥 애니메이션과더라. (웃음)
-<잡초이야기> 후기에서 그 애니메이션을 봤다. <잡초이야기>는 소재가 신선했다. 잡초가 주인공이고 사람도 나오고 동물도 나온다. =소재는 신선했는데 인기를 못 얻어가지고…. (웃음) 웹툰은 타깃이 명확해야 한다. 30대 직장인, 20대 여성, 이런 식으로 타깃을 정해야 하는데 처음 웹툰을 할 때라 그런 생각 없이 어른도 보고 아이도 보고 그러면 좋겠다 싶었다. 결과적으로는 어른이 보기에는 유치하고 아이들이 보기에는 어려운 만화가 됐다. <잡초이야기>가 인기를 못 얻었다고 해도 <오! 솔로>를 통해서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오! 솔로>를 하면서 조회수가 많아졌다. 타깃층이 명확한 작품이니까. 20~30대 솔로가 대상이다.
-솔로에 관한 에피소드를 구하기 어려웠을 듯한데 극장에 솔로 남자 3명이 앞뒤 일렬로 앉는 에피소드가 기억난다. =그건 친구가 얘기해준 거다. 나란히 앉는 게 아니라 일렬로 앉으면 웃기겠다고 해서 만화로 그렸다. 보통 친구들과의 얘기 중에도 소재가 많이 나오고 이런 카페에서도 갑자기 생각이 나기도 하고 주변 사람 얘기도 들리기도 하고 그렇다.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소재들이니까.
-<오! 솔로>는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 솔로에 대한 내용도 많다. 남자들의 ‘안 생겨요~’ 유머에비해 상대적으로 여자 솔로 유머는 적은 것 같은데 <오! 솔로>는 적절히 분배를 잘했다. =여자들은 얘기를 잘 안 하니까. 그런데 솔로 관련 개그가 많은 것 같더라, 생각보다. 만약 남자솔로 얘기만 했으면 침울하고 늘 자학으로 빠질 것 같았다.
-극중 솔로였던 남자가 커플이 되면서 독자들이 댓글로 작가 연애하는 거 아니냐 지탄도 했다. =안경 낀 캐릭터가 있는데 친구를 모델로 했다. 그 친구가 커플이 돼서 만화에서 빼주겠다, 그랬다. 대신에 노력남 캐릭터를 넣었다. 그 캐릭터도 친구를 모델로 했다. 뭘 해도 준비형 인간인데 소개팅 코스 짜고 아직 없는 자기 여자를 지킨다고 <아저씨>에 등장했던 무술을 배우러 1시간 넘는 거리에 있는 학원을 다녔다. 그런데 그 친구, 어제 결혼했다. (웃음)
-갑자기 <오! 솔로>에서 본 휴재 공지가 생각난다. 감자 캐러간다고 휴재했다. 그거, 진짠가. =감자 농사에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감자를 4천~5천평 심는다. 사람을 열몇명 사서 며칠씩 캐야 한다. 그런 와중에 부모님께 전 만화 그려야 되는데요 할 수가 없더라.
-순수하게 휴재를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쓴 것뿐인데 그게 약간 웃기더라. =맞다. (웃음) 왜 만화가가 감자 농사 때문에 휴재를 하냐고! 안 그래도 이번에 <세자전>이 24화로 한 시즌 끝난다. 그 후기에 감자 농사 관련 사진이랑 다른 내용을 올리려 한다.
-연재 후기도 재밌게 잘하더라. =본편보다 후기가 더 재밌다. (웃음) 더 재밌게 해야 하는데… 지금 <세자전>을 하면서 스토리도 좋아야 하고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도 주어야 하고, 그다음에… 생각이 안 나네… 아, 재미도 있어야 한다. 만화가 재미가 없다 보니까 재미를 잊어버렸다. 이런 걸 적절하게 섞는 과정이 어렵다. 네컷만화는 네컷에 완결되면서도 연결 흐름도 있어야 하는데 그냥 흘러가는 컷도 있는 것 같아서 고민이 많다.
-그러고 보니 <오! 솔로> 이후에 네컷만화가 기본 형식이 됐다. =다음 담당자와 회의를 하면서 바꿨다. 나는 그렇게 그리는 게 좋은 것 같다.
-<세자전>은 독자에게 전할 얘기를 많이 준비한 느낌이다. 우선 왕이 등장하니까 어쩐지 지금의 정치와도 연결짓게 된다. =조선시대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이런 일이 있었다, 를 전달하는 건 아니지 않나. 다들 만화를 보면서 자신의 기준으로 다른 걸 생각하지 않을까.
-<세자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처음 기획은 궁궐 시트콤이었다. 담당자에게 줬던 1화 첫 번째 버전은 왕에게 왕자가 탄생했다고 얘기하고, 또 얘기하고, 또 얘기하고 그렇게 여섯명의 세자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다는 거였다. 이것도 후기에 넣으려고 한다.
-스토리는 그렇다 해도 시대 배경이 조선시대라 취재나 자료조사가 필요했겠다. =준비 기간이 길었다. 보통 두달 안에 연재 들어가는데 <세자전>은 지난해 7월 말부터 준비해서 올해 2월에 시작했다. 관련 도서도 찾아보고 궁궐에도 가서 배경으로 쓸 사진도 찍었다. 궁궐의 복식 같은 것도 제대로 그려야 하니까 조사를 했다. 간단하게 그리긴 하지만 디테일하게 간단한 그림과 그냥 간단한 그림은 다르다.
-<오! 솔로>의 영향인지 <세자전>도 개그만화라고 처음에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소문으로억울하게 강화도로 유배간 진평군의 어머니 혜빈이 자살하는 장면은 나름 충격이었다. =사람이 재밌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듯이 궁궐 내에도 슬픔이 있을 거고 어려움도 있을 거다.또 사람이 변하는 모습, 그 내부의 감정 변화 이런 것도 반영해서 그리고 싶었다.
-<세자전> 연재가 아직 많이 남았지만 혹시 다른 이야기를 생각해놓은 게 있나. =좀더 성장하고난 다음에 그려야겠다는 스토리는 있다. 신과 사람, 믿음에 대한 이야기다. 배경은 십자군 전쟁 때이고 기사를 주인공으로 할지 말단 병사를 주인공으로 할지는 모르겠지만. 십자군 전쟁 관련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 이건 디테일하고 잘 그린 그림이 필요할 것 같은데 아직은 그렇게 못 그린다. 나중에 하거나 그림 작가를 만나서 할까도 생각 중이다.
-음… 마지막으로. ‘정이리이리’라는 필명은 어떻게 나온 건가. =고심해서 만든 게 아니라 대학교 때부터 쓰던 건데 인터넷 아이디다. 이름 따라 ‘정이리’ 이렇게 해보니까 안 됐는데 ‘정이리이리’하니까 새 아이디를 만들 수 있더라. 필명으로 써도 되나 싶었는데 인터넷에 정일이를 치면 “(북에 있는) 정일이 죽여야 된다” 이런 뉴스만 나오고 그래서 정이리이리를 쓰기로 했다. 간혹 정 작가님 하시는 분도 있고 여자인 줄 아시는 분도 있다. 어떤 독자가 쪽지로 언니라고 불러도 되냐고 그래서 언니 아닙니다. 아저씨입니다. 서른살 넘었다고 그랬다.
<세자전>은 어떤 웹툰?
<세자전>에는 7명의 세자가 등장한다. 칠성군, 완덕군, 안영군, 진평군, 동진군, 무영군, 그리고 갓 태어난 막내 등이다. 왕은 일곱 세자 가운데 가장 뛰어나고 현명한 이에게 왕위를 넘겨줄 생각이다. 세자들이 서로 경쟁하는 와중에 탐욕스러운 고위 관리들의 음모가 시작된다. <세자전>은 가상의 시대와 인물을 배경으로 하지만 왕과 관리, 세자 등을 통해 지금의 정치상황을 떠올릴 수 있다. 정이리이리 작가는 <세자전>의 시즌1 후기를 통해 재미, 의미, 스토리의 삼박자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더 다채로운 인물들의 이야기로 <세자전> 시즌2가 약 3주 뒤에 돌아온다. <세자전>의 왕자 캐릭터가 너무 많아 헷갈리는 독자는 해당 웹툰 페이지 하단에 ‘<세자전> 왕자들 정리’ 페이지를 확인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