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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종잇장 같은 악인 앞에서

설득력과 디테일이 아쉬운 드라마 <골든크로스>

“금융시장을 과감하게 열고 외국 자본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만이 우리 경제를 살릴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전 경제부총리 김재갑(이호재)의 자서전 출판기념회 연설 내용이 너무나 앙상해서 웃음이 터졌다. 한국 경제가 외국 투기자본의 ‘먹튀’를 경험하기 이전의 회상 장면인가 싶었으나 2014년 현재 시점이다. 4조원이 넘는 가치의 한민은행을 1조원대의 헐값에 가져가겠다는 국제적 헤지펀드 팍스의 한국 지사장 마이클 장(엄기준)에게 제값을 치르라고 저항하는 사위이자 금융정책국장 서동하(정보석)를 제지할 때도 “금융시장이 개방돼야 우리 경제가 살아난다”라고 하며 책상다리 긁는 소리를 하고 있더라. 어찌된 일일까?

KBS <골든크로스>는 특정 개인, 조직, 기관과 관련이 없음을 고지하고 있으나, 사건의 디테일은 2003년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론스타쪽 대리인이었던 거대 로펌 그리고 외환은행의 자기자본비율 전망치가 9%대에서 6%대로 급락해 부실은행으로 둔갑한 미스터리는 유현미 작가의 2008년작 SBS <신의 저울> 후반부에서도 다룬 적이 있다. 검찰과 거대 로펌쪽 구도에 집중했던 전작에 이어 이번엔 법규상 대주주 자격이 없는 론스타의 적격성 심사를 담당한 경제 관료들의 부패를 파고든다. 사건을 현재 시점으로 옮기는 시간차로 인해 경제의 흑막 김재갑 캐릭터가 꽤 무디어졌지만 이쯤이야 언제든지 회복 가능하다.

하지만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불행이 있다. 상고 출신의 회계전문가인 한민은행 직원 강주완(이대연)이 상부의 지시로 BIS 비율 조작 압력을 받는 한편, 마이클의 지시를 받은 고위층 사교클럽 ‘골든크로스’ 대표 홍사라(한은정)는 강주완의 딸을 캐스팅해 서동하에게 성상납한다. 이후, 서동하는 골프채를 휘둘러 강주완의 딸을 살해하고, 강주완은 신명의 변호사 박희서(김규철)의 간계로 죄를 뒤집어쓰고 친딸 살해범이 된다. 강주완의 딸을 캐스팅한 기획사에서 청담동 복층 빌라를 내주고, 아무 훈련 없이 중국 드라마 오디션을 본다며 홍콩행 퍼스트클래스 티켓을 끊어주는데도 당사자는 물론, 딸을 애지중지하는 부모나 검사시보인 오빠 강도윤(김강우)까지도 의구심을 품지 않는다. 김재갑의 시간차는 웃고 넘겨도, 이렇게 편의적인 희생양에는 불쾌감을 지울 수 없다. 전작에서 자본주의로 무장한 신명의 법률가가 나름의 논리를 갖추고 결과적인 악의 그림을 그렸던 것에 비교하면, 현재 신명의 박희서는 걸핏하면 해치우자고 덤벼드는 악당의 껍질뿐이다. 종잇장 같은 악인을 땔감으로 증오를 불태우면 그걸로 족한 걸까? 위급하고 간절한 상황을 앞에 둔 인간, 그러한 인간이 하는 일의 과정과 디테일이 유례없이 충실했던 전작을 떠올리면, 버렸던 기대를 자꾸 주워 담게 된다.

시간차 없는 베끼기?

<골든크로스>의 오프닝 영상이 올해 미국 <HBO>에서 방영된 <트루 디텍티브>의 오프닝과 유사하다는 논란이 있었다. 해당 방송사에 비용을 치르고 포맷을 가져왔거나, 의도적으로 만든 조악한 팬아트인가 싶을 정도로 이미지 배치와 순서가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린다(<씨네21> 947호 52페이지에도 <트루 디텍티브>의 오프닝 시퀀스 제작 과정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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