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과 드라마가 줄줄이 결방을 알렸다. 시사회 연기 소식이 속속 날아왔다. 배우들의 인터뷰도 취소되었다. 얼마를 쏟아부은 영화, 몇년이 걸린 앨범 소식도 사라져버렸다. 청해진해운 세월호가 서해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모든 것이 멈췄다. 그럼에도 일상은 멈출 수 없이 흘러간다. 다만 문득 머리가, 몸이 멈추곤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한심해서. 살아 있는 내가 너무 무력해서.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어서.
TV는 지옥이었다. 성수대교가 뚝 잘리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는 거짓말 같은 광경을 이미 봤는데도,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배 안에 갇혀 있던 사람 하나도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을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는 건 끔찍할 만큼 비현실적인 현실이었다. 특보는 끝없이 슬픔과 분노를 쥐어짜냈고 자극적인 영상과 오보가 쏟아졌다. 민간잠수부를 자처한 이의 인터뷰를 방송한 MBN은 그의 말이 거짓임이 드러나자 사과에 앞서 “방송사의 의도와 관계없이 인터넷과 SNS상으로 확산되었다”는 변명부터 늘어놓았다. 후배 앵커가 한 생존 학생에게 친구의 죽음을 알린 데 대한 비난이 일자 “어떤 변명이나 해명도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선임자이자 책임자로서 충분히 알려주지 못한 내 탓이 가장 크다”고 말한 JTBC 손석희 앵커 겸 보도담당 사장만이 이 아수라장에서 드물게 바닥을 보이지 않은 사람이었다.
TV 바깥도 지옥이었다. “선박사고를 다룬 영화는?” 같은 기사를 내놓은 온라인 매체가 집중포화를 받았지만 수많은 매체가 ‘네티즌’의 입을 빌려 “세월호 침몰 사고, 아이들 생각에 잠을 잘 수가 없다”, “세월호 침몰 사고, 학생들 얼른 살아 돌아오길” 등 검색어 장사를 포기하지 않았다. 루머와 스미싱, 망자 모독까지 한국 사회 곳곳의 광기와 탐욕, 악의가 불거져 나왔다. “책임질 사람은 모두 엄벌하겠다”며 일찌감치 거리를 둔 대통령 이하 공직자들의 망언과 무신경한 행동에 대해서는 지면이 부족하니 생략해야 할 것 같다.
멍하니 뉴스를 볼 때마다 “우리는 사건 앞에서 200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으로 다가가면 피해자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건 사람이 죽은 사건이 200개가 있었다는 뜻이다”라는 기타노 다케시의 말이 천천히 떠올랐다 가라앉는다. 친구들을 구하러 배 안으로 되돌아갔던 아이와, “선원은 맨 마지막”이라며 배에 남은 스물두살의 승무원과, 아이들을 구하러 간다는 말이 마지막이었던 선생님들, 구명조끼 끈을 서로 묶은 채 시신으로 발견된 소년과 소녀, 합동 분향소에 줄지어 선 영정들. 그들에게,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나는, 아니 우리는 아마도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과 같은 삶으로 영영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그 하나다.
+α
하루카씨, 천국에서 평안하길
인터넷 커뮤니티 루리웹 회원 ‘하루카씨’가 세월호에서 사망한 단원고 학생임이 밝혀진 뒤 일부 회원들은 그가 갖고 싶어 했던 게임기와 외장하드를 챙겨 빈소를 찾았다. 그의 프로필 그림 속 소녀의 핑크리본을 추모의 의미를 담은 노란색으로 바꿔 자신의 프로필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토록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방식의 조문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