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기만 하면 독설을 퍼부으며 서로를 비웃는 두 남자가 있다. 20년 만에 초임지로 돌아온 일탄경찰서 수사과장 양철곤(성동일)은 과거 일탄시 부녀자 연쇄강간살인사건의 용의자 아들이 경찰이 된 게 무척 못마땅하고, 경장 하무염(윤상현)은 철곤의 강압수사로 아버지가 자살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기에 원한이 깊다.
영구미제로 남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tvN <갑동이>는 가상의 도시 일탄으로 무대를 옮겨, 공소시효 만료 이후를 이야기한다. 진범을 잡지 못하고 좌천되었던 양철곤과 수사과정에서 또다른 피해자가 된 용의자 가족 하무염 외에도 1996년 9차 사건의 생존자인 정신과 수련의 오마리아(김민정)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당시 수사관들이 범인을 지칭하던 ‘갑동이’라는 이름을 떨쳐내지 못한 채 살아왔다. 때마침 일탄시의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에선 ‘내가 진짜 갑동이다’라고 쓴 메시지가 발견되고, 갑동이를 알아본 사이코패스 류태오(이준)는 9차에서 멈췄던 갑동이의 범죄를 완성해 그를 뛰어넘으려고 한다.
불화와 반목을 거듭하던 경찰이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같은 목표를 향해 힘을 합치는 장르의 공식처럼, 만날 때마다 으르렁대는 철곤과 무염의 갈등은 진짜 갑동이와 그의 카피캣(모방범)을 추적하기 전까지의 예열 단계라 할 수 있다. 한데, 중저음으로 무게를 잡다 별안간 파괴적인 웃음을 터뜨리는 성동일과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 웃음을 맞받아치는 윤상현의 모습에 이따금씩 무협지의 장면이 겹쳐지곤 했다. “핫하하!” 따위의 웃음소리로 내공을 자랑하거나 상대의 웃음소리에 내상을 입어 일곱 구멍에서 피를 뿜는 대목 말이다. 다행히도 과장된 웃음 안쪽의 속사정이 한겹씩 드러나며 무협지의 인상은 곧 지워졌다.
1993년, 갑동이의 1차 범행 시점에 피 묻은 점퍼를 숨긴 지적장애인 하일식(길별은)을 범인이라고 확신한 양철곤은 자백을 받아내고자 일식을 폭행했고, 어린 무염은 공포에 질려 아버지가 숨겼던 점퍼를 불에 태우고 말았다. 때문에 철곤의 확신은 입증할 기회를 잃었고, 무염 역시 아버지의 혐의를 완전히 지울 수도 있었던 증거품을 제 손으로 없앤 셈이다. 갑동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지났어도 의심을 떨칠 수 없는 철곤은 ‘너조차도 아버지를 의심하지 않았느냐’며 무염을 조롱하고, 죄책감과 무기력에 짓눌린 무염은 철곤과 마주칠 때마다 자신의 아버지 말고도 생사람을 여럿 잡았던 철곤의 과오와 무능함을 자극한다. 탈출할 길이 보이지 않는 각자의 지옥으로 서로를 끌어들이는 두 사람은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처벌의 기한이 지난 범인과, 이미 얼굴을 드러낸 범인을 추적하는 <갑동이>의 성패는 당연한 듯 힘을 합치는 저 공식의 풀이과정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 α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살인의 추억>과 <몽타주>의 형사 김상경이 공소시효가 임박한 미제사건을 재조명하는 파일럿 프로그램 KBS <공소시효>의 진행을 맡았다. 4월5일 방송된 ‘포천 매니큐어 살인사건’편은 담당 형사와 프로파일러가 현장을 분석하고 용의자를 세우며 다시 배제하는 과정을 복기해나간다. “우리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당신을 찾아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