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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의 TVIEW] ‘아빠 숟가락’ 만사형통

남자 둘의 디저트 만들기 <노 오븐 디저트2>의 훈훈한 맛

빵집은커녕 슈퍼마켓도 없는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입이 심심할 때는 시커먼 흑임자죽이나 냉동실 구석에 남아 있던 생강엿을 먹으면서 엄마의 요리책을 봤다. 딸기 생크리임 케이크, 피이넛 버터 쿠키, 오렌지 시퐁 파이…. 예스러운 표기의 이름과 레시피를 수도 없이 읽으며 사진 속 예쁜 그릇에 담긴 디저트의 맛을 상상했다. 타르트는 달콤하고 스펀지케이크는 폭신폭신하고 푸딩은 부드럽겠지. 그때마다 입맛을 다시면서 다짐했다. 어른이 되면 베이킹파우더도 사고 바닐라 향료도 사고 오븐도 사서 저걸 다 만들어 먹어봐야지!

그러나 막상 어른이 되고 나니 집에 오븐이 있어도 1년에 한번 열어볼까 말까, 사실은 어떻게 켜는지도 잘 모른다. 그렇다고 단것으로부터 초연해진 건 아니다. 친구들과 밥을 먹고 나면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어디 가서 디저트를 먹을지 의논한다. 퇴근할 때 케이크나 쿠키를 사들고 오면 왠지 마음이 든든하다. 냉동실에는 가끔 아이스크림을 숨겨둔다. 그리고 올리브의 <노 오븐 디저트2>를 본다.

<노 오븐 디저트2>는 만화가 김풍과 쇼콜라티에 루이 강이 간단한 디저트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말 그대로 오븐 없이 전기밥솥과 전자레인지, 프라이팬을 이용해서 만든다. 저울이나 계량컵 대신으로는 종이컵과 밥숟가락, 일명 ‘아빠 숟가락’을 쓴다. 아빠 숟가락으로 생크림을 척척 발라 부슈 드 노엘을 데커레이팅하고 프라이팬에 예쁜 마카롱을 구워내며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라고 미소 짓는 루이 강은 마치 밥 로스 아저씨가 “차암 쉽죠?”라고 할 때처럼 말문을 막히게 하지만 괜찮다. 밥통에 반죽을 넣고 한두번 통을 탕탕 바닥에 내려쳐주면 기포 없이 매끈한 시트가 만들어진다든지 달걀 거품 위에 뜨거운 버터를 부을 때는 주걱 위로 흘려보내야 한다든지 하는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정보를 상냥하게 알려주니까. 편의점에서 산 카스텔라를 티라미수 시트라며 당당히 꺼내 들면서 “수제 케이크가 별거 아냐. 그렇게 치면 달걀을 닭이 낳았지, 내가 낳았나?”라고 박력 있게 우겨대는 김풍은 또 얼마나 귀여운지.

게다가 밥, 고기, 술이 아닌 디저트의 식감, 색깔, 향기가 갖는 미묘한 차이를 아는 남자들이라니, 디저트 카페에서 함께 수다를 떠는 것처럼 즐겁다. 예쁜 조리도구가 걸려 있는 널찍한 부엌에서 훈훈한 두 남자가 톰과 제리처럼 아옹다옹하면서 예쁘고 맛있는 초콜릿과 케이크를 잔뜩 만들어 먹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사이 루이 강이 갑작스럽게 <노 오븐 디저트2>에서 하차했다. 언니와 엄마를 포함해 마음의 평화가 깨진 많은 여성들이 폭동이라도 일으킬 기세다. 어서 초콜릿이라도 처방해야 할 것 같다!

+ α

신입 셰프의 생존 가능성은?

너무나 사랑받은 전임자 루이 강의 빈자리를 메우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거친 남자’인 척하면서 아줌마와 아저씨 중간쯤의 수다스런 말투로 은근히 주책맞은 멘트를 던지는 이진환 셰프는 개그 캐릭터로 살아남지 않을까. 남자에게 좋다는 복분자를 꺼내며 “사실 저는 필요 없는데 형님(김풍)이 필요하실 것 같아서”라니, 자찬과 저격, 원샷 투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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