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아이언맨이 마포대교를 질주하고 헐크가 강남대로를 휘젓는다며, 마치 서울시가 할리우드가 새로이 찾아낸 대단한 영화도시라도 되는 것처럼 잔뜩 들떠 있지만, 아직 이곳은 시네마테크가 제대로 된 숨소리조차 내기 힘든 문화의 불모지다. 여야 출신성분(?)을 떠나 시장이 된 그 모두가 ‘문화도시 서울’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서울아트시네마(이하 아트시네마)를 관심 있게 지켜보지 않았다. 지난 2011년 12월 ‘영상문화의 다양성과 공공성 확보를 위해 고전영화와 예술영화 등을 상영하는 시 관내 전용 상영관을 지원하는 전용관 지원 조례안’이 서울시 본회의를 통과, 제정되었다는 반가운 사실을 전해 들었지만 정작 이듬해에는 서울시가 조례안을 근거로 지원할 수 있는 대상에서 시네마테크가 제외됐다. 이후 계속 지원을 요청했지만 여전히 불가하다는 소식뿐이다. 아트시네마의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 손소영 사무국장을 만나 저간의 사정을 들었다. 그리고 한목소리로 답했다. “2014년을 도저히 그냥 보낼 수 없다.”

-서울시 홈페이지 ‘서울천만인소’(시민 청원)에서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지원을 촉구하는 시민 청원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상황(3월17일-편집자)은 어떤가. =손소영_1천명의 지지 클릭이 모아지면 검토 뒤 박원순 시장에게 청원 내용이 전달되고, 정책으로 고려하는 가운데 미팅을 가진다고 한다. 현재 3일 만에 480명 정도의 지지가 이어지고 있다. 얼마 안 있어 무난히 1천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로그인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면 경이적인 숫자다. 무척 고마운 일이고, 역시 관객의 힘을 느낀다.

김성욱_시민 청원 이전에, 이미 아트시네마는 서울시에 시네마테크의 지원과 관련해 몇 차례 제안을 했었다. 길게 보자면 이미 2006년부터, 그리고 2010년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발족하면서 시의 지원과 시네마테크를 위한 새로운 공간을 마련해줄 것을 촉구했다. 당시에는 시가 전혀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기에, 2011년에는 시네마테크 지원 정책 포럼을 거쳐 그해 12월, 김미경 서울시의원의 발의로 ‘전용과 지원 조례개정’을 이뤄내기도 했다. 사실 조례까지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서울시가 시민의 문화향유권을 존중했다면, 그리고 의지가 있었다면 지원은 가능했겠지만, 당시의 서울시는 관심이 없었기에 지원의 근거를 마련하는 조례 개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때 정책 포럼에서도 서울시의 문화과 담당자는 바쁘다는 이유로 포럼이 진행되는 중에 자리를 나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경우 시네마테크나 영화문화 정책에 대해서는 임기 내내 관심이 없었다. 물론 이명박 그전 시장 때도 그랬다.

-전용관 지원 조례안이 통과됐을 때 큰 산을 넘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시네마테크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무척 당혹스러웠다. 시네마테크가 조례안 제정에 그야말로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올해 다시 지원 불가 방침에 대해 알게 됐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김성욱_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의 한계를 느꼈다고나 할까. 물론 서울시가 그런 식의 고민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가령 대기업의 마트 규제를 하면서 전통시장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것처럼 문화적 환경 개선도 그렇게 접근하면 된다. 대형마트는 멀티플렉스이고 시네마테크는 전통시장 같은 것이다. 우리가 갑자기 이러는 것이 아니고 2006년부터 꾸준히 문화체육관광부, 영화진흥위원회, 서울시에 극장 지원과 전용관 마련을 요청해왔고 시네마테크에 대한 지원 조례안을 제정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서울시가 반응이 없어서 포럼도 열고 그런 과정을 거치며 조례가 만들어졌다. 사실 조례가 없어도 지원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서울시가 애초부터 큰 의지가 없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손소영_물론 처음에는 ‘이건 뭐지?’ 하는 기분이었지만(웃음), 지원 불가 자체가 황당했다기보다 지난 1년간 담당자와 줄기차게 나눴던 얘기들은 그냥 다 거짓말인 건가? 그동안 우리가 도대체 뭘 했지? 하는 허무함이 들었다. 지속적으로 시청에 전용관 지원 조례에 따른 지원을 요청했고, 지난해 말경에는 문화산업과 주무관이 얘기하길 “지원금을 2억원으로 올려 상정했는데 1억원이 삭감됐다”고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네마테크를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 지원 공고에서 지원 대상을 넓힐 수 있지 않겠느냐”며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 그런데 올해 초 서울시 문화산업과 과장, 팀장, 주무관들이 싹 다 바뀌었다. 이전 주무관의 얘기에 대해 현재 팀장은 “그 사람이 잘 모르고 한 얘기”일 거라고 말했다. 그렇게 담당자도 싹 다 바뀌면서 ‘제로세팅’이 되니까 이전까지의 얘기들이 졸지에 없던 게 돼버렸다.

-지난해 9월경 박원순 시장과 점심식사를 함께하며 직접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김성욱_그것도 2012년부터 계속 제안해온 면담 자리가 힘들게 마련된 거였다. 2010년 추진위원장으로 위촉된 이명세 감독 외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정윤철, 윤제균, 류승완 등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를 결성한 이후 거의 3, 4년 만에 만난 이뤄진 자리였다. 그럼에도 전용관은 물론이고 현재 시네마테크의 상황이나 지원에 대한 얘기가 별로 없었다.

손소영_솔직히 얘기하면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전에 서울시가 시네마테크와 독립영화전용관 설립 계획을 발표했는데, 시네마테크 건립도 중요하지만 현재 운영이 문제라고 얘기했고 지원 요청에 대해서도 얘기했지만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에 대해 뭔가 대충 넘어가는 분위기라는 걸 느꼈고, 제대로 된 현실 파악의 제스처는 전혀 없었다.

-실무자들과 직접 얘기를 나눠본 느낌은 어땠나? 어쨌건 지원에 대한 그들만의 논리가 있을 것 같은데. =손소영_사실상 논리가 없다. (웃음)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어보면 아직 결정이 안 됐다고만 얘기했다. 그것도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얘기나 공고를 통한 게 아니고 담당 과장이 얘기한 것이다. 그러다 나중에 ‘전용관 지원 조례’에 따른 지원은 독립영화 전용관으로 확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다시 물어보니, “영화인 몇몇에게 자문을 구했고 그들이 독립영화에 지원을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영화인 몇몇’이 누구냐고 물어보니까 그건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 결정 과정에 대한 경위를 좀 납득할 수 있도록 밝혀달라는 공문을 보내놓은 상태다. 또한 시네마테크 건립은 하겠다고 하면서 왜 지원은 하지 않는지 그에 대한 입장도 밝혀달라고 했다.

-지금 서울시는 이런저런 상황들과 무관하게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프론>(이하 <어벤져스2>) 촬영계획으로 무척 들떠 있다. =김성욱_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사랑에 빠진 것처럼>(2012)의 경우, 원래 한국 촬영을 고민하던 키아로스타미가 한국에서 별다른 투자나 지원을 받지 못해 최종적으로 일본에서 찍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가령 우디 앨런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완성한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2009)를 보면 당장 그곳에 가고 싶게 만든다. 또 굳이 로케이션이 아니라도 파리시와 문화국이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1985)에 지원한 것도 무척 아름다운 일이다. 말하자면 그런 식의 문화적 접근이 아쉽다.

-어떤 식으로든 결정이 난 만큼 보다 장기적인 투쟁을 계획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손소영_5월이면 언제나 개관기념영화제를 여는데 이번에는 영화제를 쉬면서 파업을 할까, 영화 상영 전 트레일러의 내용을 지원을 촉구하는 것으로 바꿀까 하는 생각도 했다. (웃음) 중요한 것은 절대 올해를 그냥 보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무엇보다 실제로 당장 운영이 어렵다. 다른 개봉영화 상영관들은 보내온 프린트를 받아와서 틀면 되지만, 우리는 대여료에 상영료에 운송료까지 부담하는 것이니 편당 상영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든다. 처음부터 마이너스에서 출발하는 일이다. 지원이 절실하다.

-이번 일은 영화생태계에 대한 접근이랄까, 보다 넓은 문화다양성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 일이다. =김성욱_오세훈 전 시장이 있을 때부터 언제나 ‘문화도시 서울’을 입버릇처럼 얘기했다. 하지만 그 지원이나 인식은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 같다. ‘극장’이라고 하면 다들 멀티플렉스만 생각하고 오직 ‘개봉영화’만 있는 것으로 안다. 제도가 사람을 그렇게 만든 거다. 2013년 프랑스 파리의 경우 인구수는 250만명 정도로 서울의 1/4 수준인데, 영화 관객수는 2700만명으로 서울의 절반 정도이며, 서울보다 100여개 적은 374개의 스크린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민간영화관이 150개가 있고 그중 예술영화관 수는 무려 89개다. 서울시에 그러한 예술영화관들은 대략 10개 정도 있다면 공공상영관이라 할 만한 극장은 비영리 시네마테크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와 독립영화전용관인 인디스페이스 두곳이다. 파리와 서울의 어떤 문화적 차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지난해 서울의 극장 관객수가 5600만명 정도였음을 떠올려보면 너무 극과 극이다. 전체 스크린 수는 파리와 서울이 크게 차이가 없지만 우리는 오직 개봉영화만 상영하는 멀티플렉스에 점령당했고, 파리는 예술영화관은 물론이고 독립영화관이나 또 다른 형태의 시네마테크 등 그야말로 다양한 상영관들이 존재한다. 말하자면 서울 시민들은 문화적 선택권이 제한돼 있다. 이것은 ‘시민의 권리’와도 직결된 문제다.

손소영_서울시에서 시립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물론이고 민간 미술관도 일정 정도 지원을 받고 있다. 아트시네마에 대한 지원은 다른 문화적 영역으로 나아가는, 그 지원의 여지를 만드는 상징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재로서는 올해를 그냥 넘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단지 얼마를 받자 그런 문제가 아니라, 이미 조례도 만들고 시네마테크도 건립하기로 한 상황에서 그 지원 폭을 더 넓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지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논의가 이뤄지고 이미 충분한 근거가 마련됐는데 여전히 지원을 하지 않는 게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담당 과장에게 독립영화 전용관은 지원이 가능하고 왜 우리는 안 되냐고 구체적으로 물었더니, 그곳은 산업적으로 접근 가능하다는 논리를 댔다. 어쨌건 영화를 ‘생산’하는 일과 관련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극장 혹은 관객 정책에는 아예 개념이 없는 것 같았다. ‘문화도시’라고 입으로만 얘기하고, 결국 ‘산업’의 논리인 것이다. 그게 가장 슬픈 일이다.

인터뷰 이후 반갑게도 서울시가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지원 검토에 착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3월13일 시작된, 서울시의 시네마테크 지원을 촉구하는 시민 청원이 단숨에 1천명을 돌파한 것이다. 서울시 온라인 청원사이트 ‘서울천만인소’에서 관련 청원이 성립하면서 문화산업과가 아트시네마 지원 여부를 공식 검토하게 된 것. 서울천만인소는 시의 정책이나 현안과 관련해 누구나 청원 글을 올릴 수 있는 곳으로, 30일 안에 시민 1천명 이상의 지지를 받으면 청원이 성립된다. 성립된 청원은 시 관련 부서 논의를 거쳐 서울시가 해결책을 모색해 공식 답변을 제공해야 하는데, 그리하여 이제 아트시네마 관계자들과 서울시가 3월 말 만남을 가질 예정이다. 어렵사리 이뤄진 만남인 만큼 어떤 얘기들이 오갈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가 블로그에 남긴 글을 덧붙인다. “지난 12년 동안 시네마테크 지원과 관련해 정책결정자들로부터 우리가 받은 것은 언제나 지불이 불가능한 부도수표였다. 최근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은 그 어떤 시장의 재임 시절과 비교가 안 될 만큼 답변과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제는 정책결정자들이 애매한 내일을 기약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난 12년의 과거를 돌아보고 그들은 지금, 이제 결정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