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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생존의 세계

성우왕국이라 불리는 일본의 성우 업계 현황

1969년 10월 방송을 시작한 일본의 국민 애니메이션 <사자에상>.

흔히 일본을 성우왕국이라 말한다. 사실이다. 하지만 단순히 산업의 규모가 크다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일본에서 성우 매니지먼트를 운영 중인 야마조에 도시히코는 성우 업계가 화려한 만큼 진입 장벽도 높고 버티기 힘든 곳이라 말한다. 여러 유명 성우를 키워낸 그에게 일본에서 성우가 되는 길과 성우업의 어려움에 대해 물어봤다.

일본에서 성우는 활동 영역이 다양하고 폭넓기 때문에 인기 직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현재 성우들은 외화 더빙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목소리, TV프로그램의 내레이션, 게임 캐릭터, 드라마 CD(CD에 음성만 들어간 드라마를 수록한 것. 대부분의 경우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을 원작으로 하고 담당 성우가 1명일 경우는 ‘시추에이션 CD’라고 불리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캐릭터송의 가수 활동 등 전 방위로 활동 중이다. 일차적으로 목소리 연기에 흥미를 느껴 성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가수나 아이돌을 꿈꾸는 사람들 중에서 성우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제3차 성우 붐으로 말해지는 ‘아이돌 성우’는 1990년대 중반부터 등장했는데, 목소리가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성우업뿐 아니라 노래 CD를 발표해 오리콘 랭킹 상위에 오르기도 한다. 다만 절대적인 인기를 얻었다고 해도 그 기간은 길지 않고 다음 젊은 세대에 포지션을 뺏겨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베테랑 성우나 성우 팬 중에는 아이돌적인 활동을 하는 성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에서 성우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수는 수십만명에 이르는 걸로 추정된다. 성우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학교에 입학하고 3년간 공부한 뒤 오디션을 거쳐 프로덕션에 소속되어야 한다. 일단 양성소에 입학해 2년간 훈련을 쌓은 뒤 진급시험에 합격하면 프로덕션의 준소속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더 시험을 치러 합격해야 정식 소속의 성우로 인정받는다. 이렇듯 성우가 되기까지는 7년에서 10년 정도(수업료는 수백만엔)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여기까지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사실 역할을 따내기까지는 더 지난한 시간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외화, 게임 등의 역할을 기존 성우들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신인 성우가 활약할 수 있는 장소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얼마 전 82살로 세상을 떠난 나가이 이치로는 마지막까지 현역으로 일본의 국민적인 TV애니메이션 <사자에상>의 아버지 나미헤이의 목소리를 담당했다. <사자에상>은 1969년 방송 개시 이래 지금까지 대부분의 성우가 바뀌지 않고 현재 전원이 70~80대인 고령화가 이어지고 있다. 등장인물의 목소리가 바뀌는 것으로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느껴 시청률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좀처럼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수많은 성우 훈련생 중 대부분은 데뷔조차 하지 못하고 탈락된다. 데뷔하여 프로덕션의 정식 소속이 된다고 하더라도 처음 대부분의 신인 성우는 성우로 받는 보수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나 부업 등을 병행하면서 성우 일을 한다. 게다가 이중에서 훗날 제일선에서 활약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프로덕션에서 장래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도 많다. 1996년 발매된 <키네마준보>의 ‘성우명람’에는 약 2400명의 성우가 올라 있었는데 이 가운데 성우로서의 지위가 확립되어 있는 사람은 약 300명뿐이고 성우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절반으로 줄어든다. 어느 정도의 지명도와 목소리 출연 빈도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성우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 은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만약 한때 메이저급 성우가 되었다고 해도 그 뒤 계속 성우를 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성우로서 한 시기 활약을 했더라도 일이 줄어 성우를 계속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또한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최근 극장용 애니메이션 등의 목소리를 성우가 아닌 인기 스타나 배우, 유명인 등을 기용하기 시작하면서 성우 업계의 반발을 사, 목소리 출연을 고사하는 인기 스타가 나오기도 했다. 인기 직종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만큼 그늘이 있는, 치열한 경쟁의 적자생존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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