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ography
음악 <남자가 사랑할 때>(2013), <오하이오 삿포로>(2012), <33리>(2012), <키다리 아가씨>(2012), <길 위에서>(2012), <댄싱퀸>(2012), <사랑의 확신>(2011), <가장 아름다운>(2010), <그림자살인>(2009), <유앤유>(2009), <미인도>(2008), <궁녀>(2007), <식객>(2007), <천군>(2005), <낭만자객>(2003), <튜브>(2003), <울랄라 씨스터즈>(2002), <은행나무 침대2: 단적비연수>(2000), <굿바이 서울 신파>(1993)
연출/각본 <가장 아름다운>(2010)
“누군가를 마비시키고 마취시킬 수도 있는 약간은 독약 같은 것.” 영화음악의 역할에 대해 묻자마자 <남자가 사랑할 때>의 황상준 음악감독이 꺼낸 첫마디다. 왠지 넘어가서는 안 되는 금지의 선 앞에 영화음악이 서 있다는 의미로 들려 귀를 세우게 된다. “음악으로 색을 잘 입히면 영화가 좋아 보이는데 마취가 되는 거다. 속은 텅 비어 있는데 겉모양만 좋아 보이는.” 감독과 음악감독 모두가 “조심해야” 할 부분에 대한 황 감독의 엄격한 지적이다. “진실”을 “본능적으로” 아는 관객에게 눈속임용 음악은 금방 들통이 날 것이라고 믿는 그이기에 겉치레에 눈멀지 않기 위해선 끝까지 경계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자기주문이기도 하다.
<남자가 사랑할 때> 역시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물론 <천군> <그림자살인> <댄싱퀸>에 이어 “존경하고 좋아하는 배우”이자 친형인 황정민과의 네 번째 만남이라 더욱 각별했던 것도 사실이다. “서로를 믿기에” 작품에 대해선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이번엔 ‘황 배우’가 전화로 이문세의 <기억이란 사랑보다>를 한번 들어보라고 하더라.”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지”만 이 곡을 엔딩곡으로 삽입할지 여부는 “끝까지 냉정하게 생각해보려” 했다고 짚어내는 건 앞서 말한 영화음악에 대한 그의 “조심”과 어떤 경계가 반영됐기 때문이리라. 인터뷰 도중 “의문”과 “논의”라는 단어를 몇번씩 언급한 것도 같은 이유다. 건달 태일(황정민)과 아름다운 여인(한혜진)의 사랑이라는 다소 상투적인 소재와 이별과 죽음이라는 묵직한 서사까지 더해진 영화에 음악까지 “진지하게 다가가는 게 맞냐”는 “궁금증”을 안고 시작해 고심 끝에 그가 찾은 해법은 “가볍게 가자”였다. “생각보다 음악 안에 정서적인 것을 많이 넣지 않은” 건 음악을 통해 관객이 “최대한 관찰자 시점으로” 두 사람의 만남을 지켜보게 해 “자연스레 그들의 감정을 느끼게끔”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전반부에 춤곡인 라틴풍의 음악을 여러 번 변주해 넣음으로써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자아낸 것도 “후반부의 슬픔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려는 계산된 편성이었다. 감정선 짙은 이문세의 유명 곡을 최종 선택한 게 의외라고 하자 “애초에 정형화된 음악들로 사랑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꺼내들 수 있었던 카드라고 답하는데, 전체 음악의 방향을 확실히 잡고 나간 황 감독의 자신감 있는 한수로 다시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의 이런 확신은 철저한 준비와 어떤 일도 허투루 하지 않는 꼼꼼함에서 온다. 대학 때 작곡을 전공하면서는 학교의 연극, 영화, 뮤지컬의 음악 작업을 죄다 도맡아했고 군 제대 뒤 본격적으로 영화음악을 하겠다고 마음먹고서는 당시 ‘강제규필름’에 데모 CD를 만들어 보내 <쉬리>의 예고편 음악 작업을 단박에 얻어냈다. <은행나무 침대2: 단적비연수>의 제작 소식을 듣자마자 곧장 데모 CD부터 만들기 시작한 게 음악감독 입문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후배들이 시나리오 모니터링을 부탁하면 “페이퍼로 작성해서” 건네는 지극정성을 보이고, “생방송과 같은 긴장감” 때문에 드라마 음악 작업을 “즐긴다”니. 그에게 일에서만큼은 금지의 영역이 따로 없어 보인다. “믹싱이 잘됐을 때”, “아직 살아 있네~ (웃음)”라고 느낀다는 그에게 음악영화 연출에는 욕심이 없냐고 슬쩍 물었다. “음악감독, 작곡가로서 음악 열심히 하면서 꼭 음악영화가 아니더라도 시나리오부터 연출까지 내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녹음기와 몽당연필
“24시간 아무 때고 곡을 쓸 수 있게” 손닿는 곳곳에 놓아둔다는 손때 묻은 녹음기, ‘황상준’이라는 이름과 사인이 아로새겨진 몽당연필. 황상준 음악감독의 분신들이다. 곡 작업을 할 때마다 어김없이 직접 연필을 깎아 들고 악보 위에 무수한 고민들을 찍어냈을 그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일, 전혀 낯설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