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개봉예정인 액션범죄영화가 있다. <표적>(제작 용필름, 감독 창감독, 배급 CJ엔터테인먼트)이다. 어떤 살인사건에 휩쓸린 여훈(류승룡)이라는 남자와 납치된 아내를 구출하려는 태준(이진욱), 두 남자가 우연히 만나 36시간 동안 동행하는 이야기다. <씨네21>은 <표적>의 막바지 촬영이 진행된 지난해 12월30일과 지난 1월8일 두 차례 현장을 찾았다. 추운 날씨에도 현장은 스탭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그리고 현장을 찾기 전 이미 촬영을 완료한 김성령, 촬영현장에서 만나지 못했던 조여정, 조은지 등 세 여배우들의 인터뷰도 함께 덧붙인다.
“고난도의 촬영을 보러 오셨네.” 땅거미가 깔릴 무렵,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난든집 나다 스튜디오에 도착하자 <표적>의 제작사인 용필름 임승용 대표가 반갑게 맞아준다. 코까지 내려온 그의 다크서클과 퀭한 행색을 보니 강행군을 제대로 하고 있는 모양이다. 경찰서 세트가 마련된 이곳에서 스탭들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액션 신을 닷새째 찍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세트장으로 들어가려는데 임승용 대표가 “액션 신 하나 보고 가라”며 붙잡는다. <표적>의 액션을 설명으로 듣기보다 직접 보고 감을 잡으라는 뜻일 거다. 현장 모니터를 통해 본 장면은 어떤 건물에 들어간 류승룡이 한 무리의 ‘어깨’들을 차례로 제압하는 시퀀스였다. 분노가 담긴 그의 주먹은 화려하진 않지만 묵직했고, 컷 분할 없이 몇분간 이어진 액션은 묘한 리듬감이 있었다. 수많은 컷들로 이어진 최근의 건조한 액션영화와 달리 뜨거운 매력이 있었다. 범죄액션영화 <표적>을 이끌고 가는 건 여훈과 태준, 두 남자다. 특수부대 출신인 여훈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중 어떤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그 사건으로 평범한 레지던트 의사 태준의 아내 희주(조여정)가 누군가에게 납치당한다. 여훈과 태준, 한번도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두 남자가 3일 동안 어쩔 수 없는 동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형사 반장 영주(김성령)와 광역수사대 송 반장(유준상)이 그 사건을 추적한다.
<표적>은 <명량-회오리바다> <군도: 민란의 시대>를 작업한 전철홍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고 류승룡, 유준상, 조여정, 김성령, 이진욱, 진구, 조은지 등 탄탄한 배우들이 대거 합류해 크랭크인 전부터 충무로에서 화제를 모았던 프로젝트다. 또 <명량-회오리바다>에서 왜장 구루지마 역을 맡았던 류승룡이 “살인 전문가 느낌이 나는” 액션을 선보이고, 조여정이 임신부를 연기하며, <추적자 THE CHASER> <상속자들> 등 여러 드라마에서 도도한 모습을 보였던 김성령이 형사 반장을 맡는 등 배우들의 새로운 변신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총 54회차 중 44회차 촬영이 진행된 지난해 12월30일, 여훈이 탄 자동차가 경찰서로 돌진하는 영화의 하이라이트 액션 장면이 공개됐다.
무엇이 그를 분노하게 했나
경찰서 복도 바닥은 깨진 유리 조각 천지다. 옆에 있던 이준우 프로듀서가 “어젯밤 총격 신을 찍었다. 화약이 폭발하면서 깨진 조각들이니 조심하라”고 한다. 세트장 한쪽 구석에서는 미술팀이 PVC 판을 유리 조각 크기로 자르고 있었다. “유리 대신 바닥에 깔려고 한다. 진짜 유리는 위험하기 때문”이라는 게 미술팀의 설명이다. 마침 카메라가 세팅되어 있는 경찰서 한가운데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최상묵 촬영감독(<늑대소년>), 특수효과 정종배 실장(<미스터 고> <숨바꼭질> 등), 최기호 미술감독(<내 머리 속의 지우개> <포화 속으로>) 등 각 파트의 키스탭들과 무술팀 서정수씨가 보는 앞에서 홍성민 조감독이 자동차의 동선을 수차례 모의하고 있었다. 자동차가 경찰서 현관문을 박살내고 들어와 좁은 복도를 질주하다가 사무실과 복도 사이에 있는 철문을 부순 뒤 사무실 한가운데 있는 계단을 그대로 박는 게 이들이 찍어야 할 장면이다.
홍성민 조감독은 전날 한숨도 못 잔 기색이다. “자동차와의 충돌로 세트가 무너질 수도 있고” (최기호 미술감독), “테이크를 다시 가려면 준비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홍성민 조감독)는 이유 때문에 제작진에 주어진 기회는 단 한번의 테이크뿐이다. 그러다 보니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자동차가 계단에 부딪히기 직전 류승룡의 스턴트 대역을 맡은 서정수씨가 차문을 열고 잽싸게 빠져나와야 한다. 충무로 최고의 카체이싱 스턴트 실력을 가진 그이지만, 달리는 차 안에서 정확한 타이밍에 운전석에서 뛰어내리는 건 확실히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차가 복도를 달릴 때 특수효과팀은 복도 천장에 있는 형광등, 유리, 문 등 여러 군데 심어둔 화약을 제때 터트려 유리를 산산조각내고, 복도와 사무실 사이에 있는 철문을 날려야 한다. “영화에 투입된 총 200발의 화약 중 150발이 이 한 장면에 쓰인다”는 정종배 실장의 설명을 듣고나서야 얼마나 위험한 촬영인지 실감났다. 이 모든 것을 한데 담아내야 하는 촬영팀의 부담도 이만저만 아니다. 최상묵 촬영감독은 “한번에 다양한 각도에서 장면을 잡아내야 해서 알렉사 2대, 캐논 5D 마크 8대, POV 카메라 2대 합쳐 총 12대의 카메라가 투입됐다”고 전했다.
그러니까 카 스턴트와 특수효과 그리고 촬영, 삼박자가 혼연일체되어야 원하는 그림을 얻을 수 있는 고난도의 촬영인 것이다.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는 까닭에 머릿속이 복잡한 스탭들에 비해 창감독은 비교적 대범해 보였다. 200편이 넘는 뮤직비디오와 광고, <고死: 피의 중간고사>를 연출한 창감독은 “잠을 잘 잤냐고? 푹 잤다. (웃음) 마음을 비웠다. 내가 고집해서 만들어낸 장면인데…. 테이크를 한번밖에 갈 수 없다고? 잘못 나오면 다시 찍으면 되지. 불발의 가능성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못한다”고 코앞에 있는 촬영에 집중했다. 테스트가 만족스러웠는지 스탭들 사이에서 박수가 나왔을 때 주연배우 류승룡과 <표적>이 첫 영화 작업인 이진욱이 현장에 나타났다.
류승룡은 가죽점퍼와 청바지 차림이었다. 얼마나 뛰고 굴렀는지 가죽점퍼 여기저기가 해졌다. “중년의 나이에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나”라는 질문에 그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뭐, 나이를 떠나서 어떤 현장이라도 힘든 건 매한가지다. 나이가 더 들면 언제 또 액션영화를 할 수 있겠는가.” <명량-회오리바다>가 끝난 뒤 지난해 7월부터 매주 두세번씩 운동을 하며 몸을 만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류승룡은 “몸이 힘든 것보다 여훈의 감정을 튀지 않게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며 “차를 운전해 경찰서 안으로 돌진하는 건 여훈의 감정이 그렇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젊은’ 이진욱은 며칠째 계속되는 액션 신 촬영에도 생생하다. 이 장면에서 그가 맡은 태준은 차가 경찰서 안으로 돌진할 때 몸을 던져 피해야 한다. 평범한 의사 태준이 극한상황에서 몸을 과감하게 날려야 하는 사연은 무엇일까. 이진욱은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아내 희주. 평범하고 비리비리한 남자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 몸을 던질 수 있는 것도 아내를 찾겠다는 남편의 의지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 이제 가자!” 창감독이 신호를 보내자 스탭들은 진열을 갖췄다. 액션 사인과 함께 여훈이 운전하는 자동차는 경찰서 안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평범하게 살려고 마음을 잡았던 그가 무모한 선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그를 분노하게 했을까. 그의 자동차가 쉴 새 없이 터지는 화약을 뚫고 단단하게 잠긴 철문을 날려버린 뒤 계단에 강하게 충돌했다. “쾅!” 굉음이 나는 순간 현장은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모든 스탭이 하나가 되어 꼼꼼하게 준비했던 덕분일까. 무전기를 통해 들려온 창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세트장 안을 시원하게 갈랐다.
감정을 보여주는 액션
‘밤 늦은 시각까지 촬영할 예정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제작부로부터 받은 <표적> 49회차 일일촬영계획표에 적힌 공지사항이다. 크랭크업까지 단 5회차를 남겨둔 1월8일, 스탭들은 무척 고단해 보였다. 이준우 프로듀서는 “전날 밤 촬영이 예상보다 오래 걸려 늦게 끝났다. 스탭도, 배우도 모두 예민해진 상태”라고 귀띔해준다. 모니터 앞에 앉아 있던 창감독은 “아우, 힘들다. 오늘 (류)승룡이 형과 (유)준상 선배의 클라이맥스 총격 신인데… 어제 늦게 끝나 콘티 정리도 안 된 상태로 왔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창감독의 말대로 이날 공개된 장면은 여훈과 송 반장이 총격전을 벌이는 106신과 109신. 경찰서로 돌진한 여훈이 그곳에서 광역수사대 송 반장을 맞닥뜨리는 상황이다.
현장에 먼저 나타난 배우는 사건을 쫓는 송 반장 역의 유준상. 자세하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임승용 대표가 “송 반장 역에 유준상이 꼭 필요했다”고 얘기할 정도로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재미있는 건 총격 신에서 맞붙을 유준상과 류승룡이 약속이라도 한 듯 전날 찍었던 상대방의 촬영 분량을 차례로 모니터하고 카메라 앞에 섰다는 것이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상황 때문일까. 모니터를 통해 상대를 쳐다보던 두 남자의 눈빛은 스파크가 튀었다. 유준상의 촬영 장면을 유심히 보고 있던 류승룡에게 “10분 전 유준상도 당신의 촬영 장면을 보고 갔다”고 말했다. 류승룡은 “그래?” 하고 짧게 대답한 뒤 혼자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카메라 앞으로 갔다.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촬영은 송 반장이 여훈을 향해 총을 난사하고, 여훈은 책상 밑에 몸을 웅크리는 장면부터 진행됐다. ‘숏 앤드 리버스숏’(shot/reverse shot) 방식으로 난사하는 송반장과 몸을 피하는 여훈을 각기 따로 찍어도 될 법한데, 제작진은 컷 분할 없이 롱테이크로 한번에 담아내려고 한다. 마스터숏을 선호하는 스타일인지 창감독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이 영화의 액션은 기술이 아닌 감정을 보여줘야 한다. 컷을 짧게 끊어서 찍으면 인물의 감정은커녕 땀도 안 보인다. 그래서 들고 찍는 장면도 우리 영화에는 없다. 대부분 액션 신은 롱테이크로 찍고, 꼭 근접해서 찍어야 하는 것만 클로즈업으로 찍었다.”
두 남자의 난사전 때문에 경찰서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슛 들어갈 때는 ‘쉭!’ 총소리만 오가고, 컷할 때는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까닭에 이곳이 경찰서인지, 전쟁터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찍으면서 오후 1시에 시작된 촬영은 다음날 오전에야 끝날 수 있었다. 쉬지 않고 고생한 게 만족스러웠을까. 촬영이 끝난 뒤 유준상은 창감독에게 소주 한잔하러 갈 것을 권했고, 류승룡은 소주 마실 힘도 없이 현장에서 그대로 뻗었다는 게 제작진의 후문이다. 조용히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여훈의 표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상반기 극장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표적>은 1월16일 크랭크업했고 현재 후반작업에 돌입했다.
센 캐릭터, 내 것 같다
김성령이 말하는 <표적>의 영주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의아했다. 원작인 프랑스영화 <포인트 블랭크>에서 여자 형사 반장이 굉장히 센 캐릭터라 나랑 맞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임승용 대표도, 주변 사람들도 영주랑 잘 어울릴 거라고 얘기해주더라. 드라마에서 누구의 엄마를 주로 연기하다가 형사 반장을 맡으니 처음에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다. 화장을 거의 안 했고, 절도 있게 걸었고, 형사처럼 가죽점퍼 같은 거친 스타일의 옷을 입었다. 드라마 <상속자들>, 영화 <역린>과 함께 찍다보니 잠깐 무리하기도 했는데 감정 순서대로 잘 찍은 것 같다. 촬영이 끝난 뒤 이렇게 마음이 편해보기는 처음이었다.”
알렉사 2대를 포함한 총 5대의 카메라가 차체 정면을 찍는 전기차 위에 세팅되어 있다.
본능적으로
조여정이 말하는 <표적>의 희주
“결혼도 안 했는데 임신부 역할이라니. (웃음) 임신부 체험복이 그렇게 무거운지 몰랐다. 한번도 해보지 못한 캐릭터였고, 좋은 배우들과 함께 호흡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도전하기로 결정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희주 역할을 위해 따로 준비한 건 없다. 하나만 집중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뱃속의 아기는 지켜야 한다는 것. 영화의 후반부에 가장 큰 위기에 처하는 신이 있는데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감정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게 희주를 연기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강한 듯 여린 듯
조은지가 말하는 <표적>의 수진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이야기의 속도가 엄청 빨랐다. 그러면서 모든 캐릭터가 살아 있어 인상적이었다. 형사 수진은 영주의 팀원이다. 남들 앞에서는 강해 보이는데 혼자 있을 때는 여린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게 창감독님의 주문이었다. 털털하고, 다소 유머러스했던 전작의 모습들과 다른 수진을 연기하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뛰는 장면이 많아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았냐고? 그것보다 이야기가 반전을 거듭하면서 상황에 맞는 감정을 달리 표현해야 하는 게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