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게 가장 싫을 때는 끼니를 챙겨먹어야 할 때다. 이 지긋지긋한 밥때. 일주일치 빨래를 세탁기에 쑤셔박는 것도, 화장실 수챗구멍에서 머리카락을 걷어내는 것도, 청소기를 돌리는 것도 모두 귀찮고 성가시긴 하지만 스스로가 처량해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진 않는다. 하지만 큰맘 먹고 산 대파 한 다발이 냉장고 속에서 그대로 물이 되어가고 있거나, 김치에 하얀 곰팡이가 낀 걸 발견하거나, 오랜만에 열어본 전기밥솥 안에서 언제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밥 위로 새로운 우주가 하나 형성되고 있는 걸 볼 때는 혼자 먹고 사는 비루함이 냉장고 쉰내처럼 훅 나를 덮쳐와 결국 코를 막고 고개를 돌려버리게 하고 만다. 내 주변의 싱글들 중 꽤 많은 이들은 심지어 그릇도 쓰지 않는다. 설거지 거리가 생기는 게 싫어 일회용 그릇과 나무젓가락, 플라스틱 숟가락을 서랍 가득 채워놓고 산다. 매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1/3을 밥벌이하는 데 쓰면서 정작 아무도 밥을 먹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끼니를 때워야 한다는 강박이 바탕이 된 그 태도가 문제다. 배가 고파서 꼬르륵거릴 때가 되어서야 마지못해 해먹는 밥이 문제다. 이 지루한 일상을 조금이라도 의미 있게 만들려면 즐기는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드립커피를 즐긴다. 커피콩을 갈고, 물을 데우고, 동그라미를 그리며 신중하게 커피 위로 물을 붓는다. 커피콩이 갈릴 때 나는 첫 향에 코를 박고, 동그랗게 부풀어오르는 커피가루를 미소를 띠고 바라본다. 다들 그 시간의 행복을 말한다. 이 모든 게 하나의 의식이다. 살기 위해 견뎌야 하는 일상을 조금 낫게 만들어주는 건 이런 의식들이다. 요리도 커피를 내리듯 그렇게 나만을 위하는 의식처럼 즐겨보는 수밖에.
솔로를 위한 쿡북 베스트
<고베 밥상> 성민자 지음 / 동녘라이프 펴냄 일본 음식이라니 까다로울 것 같지만 복잡한 양념이 들어가는 한식보다 이쪽이 더 간단하고 쉬울 수도 있다. 식재료도 우리나라와 별로 다를 바 없고 덮밥같이 한 그릇 음식이 많아서 1인용 식탁에 유용하다. 가쓰오부시가 무엇인지부터 설명하며 시작하는 친절한 일본 가정식 입문서.
<이렇게 맛있고 멋진 채식이라면> 생강 지음 / 동아일보사 펴냄 집에서나마 몸에 좋은 음식을 해먹고 싶은 당신에게 딱 맞을 채식요리 안내서. 혼자 사는 사람에게 채식이 또 좋은 이유는 고기 기름기가 나오지 않아 설거지며 뒤처리가 훨씬 깔끔하다는 것.
<What to cook & How to cook it> 제인 혼비 지음 / 파이든 펴냄 외국 요리 원서지만 전혀 어렵지 않다. 누구나 좋아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서양요리들을 스텝 바이 스텝으로 사진과 함께 설명해준다. 토마토 스파게티부터 시저샐러드, 팟타이까지 식당에 가면 기본으로 늘 주문하는 편안한 요리 100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사진이며 스타일링이 세련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
<이기적 식탁> 이주희 지음 / 디자인하우스 펴냄 누군가를 위해 차리는 따뜻한 밥상보다 나 혼자 먹으려고 차리는 이기적인 한상이 낫다는 여자의 요리와 싱글라이프 이야기. 나만을 위해 요리하는 이기적 식탁의 즐거움이 어떤 건지 미리 맛보고 싶다면 이 책을 들춰보면 좋겠다. 친숙한 메뉴들과 보통 요리책에선 한줄이면 끝날 레시피 대신 깨알 같은 잔소리가 가득한 레시피가 따라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