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감독 앙드레 테시네 출연 줄리엣 비노쉬 장르 드라마 (크림)
우리에겐 조금 낯선 이름이긴 하지만, 명석한 두뇌와 방대한 지식으로 무장한 채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로 활동하다가 70년대부터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앙드레 테시네는 지적이고도 감성적인 영화들을 연출해온 미지의 명감독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최근작 <앨리스와 마틴>(1998)은 다분히 문학적임과 동시에 강한 비주얼이 지배하는 영화이며, 두 연인의 사랑에 관한 드라마임과 동시에 한 개인사에 얽혀 있는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영화이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미혼모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던 마틴(알렉시스 로렛)은 10살이 되자, 권위적인 아버지댁에서 생활하게 된다. 다시 10년 뒤, 성인이 된 마틴은 집을 나와 의붓형이 살고 있는 파리에 머문다. 그곳에서 형의 룸메이트인 앨리스(줄리엣 비노쉬)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녀가 임신을 하자 영문 모를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신을 학대한다. 여기에는 그의 가족에 관한 개인적 기억과 상처들이 얽혀 있다.
이 영화는 마틴이라는 한 개인의 심리적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작품이다. 연대기적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중반까지의 과감하고도 거친 시간도약과 생략의 방식은 마틴의 미스터리를 가중시키는 수사학이다. 특히 도입부, 마틴의 유년 시절과 성인이 된 뒤 그가 파리로 이주하기 이전까지의 상황묘사는 마치 문학작품의 줄거리 요약처럼 빠르고 압축적으로 전개된다. 그렇지만 그것이 상황설명에 그치는 게 아니라 간간이 삽입되는 상징적이고도 시적인 이미지숏들로 인해 묘한 감성을 창출한다. 그리고 마치 소설에서 각장이 구분되듯 이 영화는 몇개의 사건을 중심으로 커다랗게 구분된다. 특히 마틴의 파리생활은 그와 앨리스의 사랑에 관한 드라마지만, 임신을 고백한 앨리스를 외면하고 자신만의 분열적 세계로 도피하는 마틴의 심리적 변화는 미스터리 구조를 가진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면, 지금까지 마틴의 주관적 심리와 감성으로 전개되던 이 영화는 앨리스에게로 무게중심을 옮기면서 마틴의 미스터리에 대한 해설적 역할을 한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장르로서는 미스터리와 멜로 장르가 혼재돼있고, 암시적으로는 마틴이라는 인물의 내면세계에 투영된 부친살해와 모태 내 퇴행욕구가 혼재된 듯한 오이디푸스적 궤적을 재현해간다. 그래서 <뉴욕타임스> 등에서는 이 영화가 다소 복잡하고 모호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듯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연기파 배우들의 강한 캐릭터 연기와 심리적 긴장감이 있는 지적이고 예술적인 작품이라는 평을 했다. 앨리스 역에는 앙드레 테시네의 85년작 <랑데뷰>에서도 함께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줄리엣 비노쉬가 맡았으며, 또한 올리비에 앗사이에 감독이 테시네 감독과 더불어 이 영화의 공동 각본에 참여했다.
정지연/ 영화평론가 woodyalle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