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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호크 다운>의 무대, 소말리아의 역사
2002-02-21

핍박의 대물림

미국이 아프카니스탄에서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이 또다른 암흑의 시대를 여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우려는, 어쩌면 기우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미 지난해 말 ‘깡패국가’(Rogue states)라는 망언을 일삼으며 확전의 가능성을 내비치더니, 얼마 전에는 북한과 이란, 이라크를 싸잡아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불러젖히는 미국 정부를 보면 그런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명백한 주권국가로 유엔 회원국이기까지 한 국가들을, 자국의 이익에 배치된다고 해서 ‘깡패’나 ‘악’이라고 부르는 미국의 만용은, 세계사의 정치적인 암흑시대를 이끌었던 과거 로마제국이나 대영제국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정도이다.

이렇게 묘한 시점에 개봉된 <블랙 호크 다운>은 그런 의미에서 아쉬움이 많은 영화다. 특히 ‘내용상의 문제점은 인정하지만, 현대 시가전의 참혹함을 독특한 스타일로 그려낸 거장의 작품’과 같은 뻔한 평까지 읽고 나면 그 아쉬움은 더해진다. 미국식 무한 정의를 위해서라면 소말리아인과 같은 저개발 국가의 국민 1천명 정도가 죽거나 다치는 것쯤이야 아무렇지도 않다는 위험한 발상을 영화가 은연중에 유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그냥 영화의 작은 문제점 정도로 치부하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이 일부 소말리아인으로 하여금 죽음을 무릅쓰고 미국과의 전투에 자원하게 했고, 총알이 빗발치는 지역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게 만드는지를 <블랙 호크 다운>과 관련된 인터넷상의 정보를 찾아봐서는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소말리아의 현대사를 이해함으로써 그 궁금증의 해답에 대한 단초라도 찾아보려 시도하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소말리아의 불운한 현대사는 1870년대 중반 이집트가 무단으로 소말리아의 해안지방 일부를 점거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다 1882년 수단에서 유명한 회교 지도자 마디가 식민제국에 반란을 일으키자 위협을 느낀 이집트는 철군을 했고 그 자리를 영국군이 차지하게 된다. 당시 영국은 이집트로부터 넘겨받은 소말리아의 해안지방을 포함한 전체 소말리아를 자신의 보호령하에 둠으로써, 인도로 가는 수에즈 운하의 통행권을 확보하려는 속셈이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오면서 소말리아 내부에서 거친 저항운동이 일어나자, 영국은 한창 아프리카에서 세력을 확장하려하던 이탈리아와 협정을 맺고 내륙지방에 대한 권리를 넘김으로써 이탈리아와 분할통치를 하게 된다.

그러다 2차대전이 일어났고 1940년 영국은 점령하고 있던 해안지방을 이탈리아에 빼앗겨 소말리아를 떠난다. 하지만 결국 2차 세계대전은 이탈리아의 패배로 끝났고, 승전국인 영국은 소말리아 해안지방을 다시 자신들의 보호국으로 만든다. 문제는 소말리아의 내륙을 포함한 전체 소말리아에 대한 승전국간의 의견조율이 어려웠다는 사실. 결국 승전국들은 유엔을 통해 1950년부터 10년간 소말리아의 내륙·해안지방을 신탁통치하고 그뒤에 독립시킨다는 안을 도출해낸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켜 1960년 소말리아의 내륙과 해안지방을 통합해 새로운 독립국가 소말리아로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문제는 임기 7년의 초대 대통령이 물러나고 두 번째 대통령이 집권한 지 2년이 흐른 1969년, 대통령의 암살과 군사 쿠데타가 불과 3일 동안 한꺼번에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쿠데타를 통해 소말리아를 장악한 바레 장군은 1970년 소말리아를 사회주의 국가로 전환시켜 정치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1974년과 75년 일어난 끔찍한 가뭄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소말리아의 기아를 유발했고, 그때부터 소말리아는 정치·경제적 혼란에 빠져든다. 그리곤 급기야 1988년부터 무장반군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소말리아는 본격적인 전장으로 변해갔다. 문제는 각 반군들이 이해관계가 얽힌 주변국가들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 100년이 넘는 식민통치에 치가 떨리던 소말리아 국민들이 더욱더 외국에 극도의 반감을 가지게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이 최악의 사태를 몰고 올 수 있다고 생각한 소말리아의 100개의 정치·경제단체들은 1990년 바레의 퇴진과 새로운 민주정부 수립을 요구하는 성명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물론 바레는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폭력정치를 폈고, 이는 반사적으로 반군들의 공격을 더욱 거세게 만들어 사태를 악화시킨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배경이 된 소말리아의 무정부 상태는, 반군들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1991년 바레가 국외로 도주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결국 서구열강의 식민지배, 짧은 민주정부와 긴 독재정부, 기아와 난민 그리고 반군간의 전쟁으로 특징지워지는 소말리아의 이런 불운한 역사가, 한쪽에 미군을 잡기 위해 쏜 총으로 아버지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소년을, 다른 한쪽에 동족을 죽이고 도망쳐오는 미군에 환호하는 군중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역사적 배경 정도로 외세에 대한 증오에 불타던 일부 소말리아인들의 의식세계를 정확히 설명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겪은 참혹한 식민의 역사가 미국이나 유엔에 대한 증오를 만들어냈으며, 그것은 어쩌면 정당한 자기방어의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이 잘 만들어진 영화로는 남겠지만 좋은 영화로는 기억되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그 점을 간과하고 소말리아인들의 죽음을 ‘미개인들의 문명에 대한 도전’ 정도로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철민/인터넷칼럼리스트 chulmin@hipop.com

신문에 연재되었던 원작 <블랙 호크 다운> 페이지 http://inquirer.philly.com/packages/somalia/

소말리아의 역사

http://www.countryreports.org/history//somohist.htm

<블랙 호크 다운> 공식 홈페이지 http://www.spe.sony.com/movies/blackhawkdown/

<블랙 호크 다운> 비공식 홈페이지 http://www.cinemayhem.com/blackhawkd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