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9년,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온 비행접시가 한 외계인을 조선 땅에 내려놓는다. 열다섯 어린 나이에 마당과부가 되어 시가로 향하던 소녀가 탄 가마가 절벽에서 추락하려던 찰나 외계인은 시간을 멈추고 소녀를 구해내지만 지구인들의 악행에 휘말려 결국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된다. 그리고 젊음을 그대로 간직한 채 조선이 대한민국이 되도록 이 땅을 떠나지 않고 살아온 외계인은 어느 날 옆집에 이사 온 한류스타가 과거 그 소녀의 환생임을 알게 되는데….
물론 이쯤에서 코웃음을 치고 싶어진다 해도 이해할 수 있다. 문제의 외계인이 시간을 멈추거나공간이동을 할 수 있는 초능력을 지녔고, 시각과 청각 등은 지구인보다 일곱배 정도 더 발달했다는 점을 굳이 덧붙이려니 손가락이 조금씩 오그라드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SBS <별에서 온 그대>는 이 모든 무리수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드라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무리해 보이는 설정들을 가장 영리한 방식으로 완성시킨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MBC <내조의 여왕>으로 새로운 세대의 주부상을 드라마에 끌어들였고, KBS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통해 주말 가족극이 천박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던 박지은 작가의 입담은 <별에서 온 그대>에서도 빛을 발한다. 모카라테는 “문익점 선생님이 숨겨 들여온 모카씨”로 만들었고 건강을 위해 ‘프로포폴’(사실은 프로폴리스)을 애용한다고 할 만큼 상식 없고 교양도 없지만, 뻔뻔해 보일 만큼 당당하고 천연덕스러워도 비굴하지는 않은 한류스타 천송이 캐릭터는 <엽기적인 그녀> 시절의 생기발랄함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듯한 전지현을 만나 제대로 피어난다. 짜장면, 치킨처럼 좋아하는 음식의 칼로리는 달달 외우면서 다이어트 때문에 하루 종일 사과 한개에 양배추 반쪽밖에 못 먹고 사는 천송이가 메이크업 담당자에게 ‘민낯인 척하는 풀 메이크업’을 요구하며 “모공 하~나도 안 보이게, 물광 좌앙난 아니게 내고, 화장으로 포토샵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어?” 하고 닦달할 때 같은 차진 맛은 전지현이 아니었다면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는 사랑스러움이다. 그런 천송이의 옆집에 사는 외계인 도민준(김수현)은 잘생기고 돈 많고 400년간 쌓아온 지식도 어마어마하고 심지어 초능력까지 있는 ‘사기 캐릭터’인데, 이 완벽한 존재가 졸지에 천송이의 매니저 취급을 받았다가 자신보다 한참 ‘어린’ 친구 장영목(김창완)의 아들 행세를 했다가 하며 발생하는 해프닝은 로맨틱 코미디의 빤한 공식들을 새로운 코드로 직조해나간다. 때때로 헐거워지는 큰 줄거리는 다채로우면서도 디테일이 살아 있는 천송이의 주변 인물들이 매끄럽게 메우고, 극본과 연출과 연기의 합이 딱 맞아떨어지는 드라마라는 점은 높은 시청률보다 더 주목해야 할 이 작품의 미덕이다.
그래서 판타지와 코미디 사이사이 미움과 그리움 같은 각자의 감정들을 차근차근 쌓아올린 이야기는 3개월 뒤 자신의 별로 돌아가야 하는 외계인과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추락한 스타의 시한부 로맨스라는 허황돼 보이는 설정에 힘을 불어넣는다.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사는 천송이와 자신 외에 다른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고 수백년을 살아온 도민준이 사실은 누구보다 외로운 섬이었다는 공통점을 깨닫고 함께하는 시간에 길들여지는 과정은 도무지 빠져나갈 수 없는 로맨스의 덫이다. 아직 겨울은 기니까, 도민준과 함께 추위를 버텨나갈 날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걸 생각하면 다행인지도 모르지만.
+ α
KMT184.05 대표 도민준의 매력에 도전하는 지구 대표 훈남은?
① 돈 자랑도 해맑게 하는 사슴 같은 눈망울의 재벌 2세 순정파 꽃미남 이휘경(박해진). ② 차가운 도시 고딩, 하지만 제 누나에겐 (가뭄에 콩 나듯) 따뜻한 꽃미남 천윤재(안재현). ③ 얼마 전 <한식대첩>에서 본 것 같은데 어느새 검사로 돌아온 꽃미남 유석(오상진). ④ 천하의 천송이에게도 목숨 걸고 직언할 줄 아는 프로페셔널 매니저 의리남 범이(김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