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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사람

<변호인> vs. <효자동 이발사>

<효자동 이발사>

<효자동 이발사>의 이발사 성한모(송강호)는 출산 직전의 아내를 손수레에 싣고 달리다 엉겁결에 시위대의 행렬에 섞인다. 이내 군인들의 총탄이 쏟아지고 부상자들이 속출하자 시위대 중 몇명이 내달리는 성한모를 붙들고 사정한다. “선생님, 여기도 좀 도와주십시오!” 그러자 성한모가 겸연쩍어하며 하는 말. “아… 이 (흰색) 가운을 보고 오해들을 하시는 모양인데… 나는 의사가 아니에요….” 한편 <변호인>의 속물 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은 체면 따위는 버리고 어디든 가서 명함을 돌린다. 그날도 한 고급 술집에서 나오는 한 무리의 사장님들에게 달려가 명함을 돌리려는 찰나, 갑자기 술집 웨이터에게 멱살을 잡히는 봉변을 당한다. “어디 남의 점포 앞에서 찌라시를 돌리노?” 다급해진 송우석이 말한다. “저… 변호사입니다…. 변호사… 송… 우석… 이라 캅니다.”

직업에 대한 오인이라는 사건이 두 영화의 이발사와 변호사에게 똑같이 일어났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다음과 같은 후속장면들이 그 익살극의 목적을 명확히 한다. 동네의 연탄사장은 성한모를 무시하며 “그럼 깎쇠를 깎쇠라고 하지, 이발사 선생님 그럴까?” 하고 면박을 준다. 변호사들은 송우석이 앞에 있는지도 모르고 “나이트 삐끼들처럼 명함을 돌린다”고 욕을 한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사회복지의 균등이 완료되기 전까지는 불철저한 관용구일 것이다. 이 오인은 그러므로 귀함과 천함의 그 관용구에 의도된 혼동으로 맞서 일으키는 익살이다.

그 오인을 성사시키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배우 송강호의 어감과 표정과 몸짓이다. 우리가 송강호를 서민적인 인상의 배우라고 말할 때 그 뜻을 평범한 중산층 계급을 대표하는 굳건한 이미지로 상정한다면 그건 잘못이다. 그보다 그는 귀함과 천함의 경계를 흔들어 혼란스러우면서도 해학적이고 친근한 감정의 지진을 일으킬 줄 아는 이미지를 지녔다. 그 때문에 이것으로도 저것으로도 보이는 폭넓은 너비를 지녔다. 송강호의 서민성이란 그 친근하며 폭넓은 이미지를 쉽게 규정하고 싶은 데에서 생겨난 말일지도 모른다. <변호인>의 경우라면 그보다 더 적절해 보이는 말이 있다. 송강호는 변호사와 변호인의 뉘앙스 차이를 묻는 질문에 <변호인>이라는 제목에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입장과 태도가 담겨 있어 마음에 들었다”라고 했다. 직업을 사람으로 바꾸는 것. 어쩌면 깍쇠나 의사나 변호사나 삐끼를 평등하게 껴안을 수 있는 건 사람이라는 개념 외에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로써 <변호인>의 가장 좋은 장면은 공판 장면이며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그것이라는 데에 이견을 달 수 있다. 차라리 국밥 아주머니 아들이 고문당한 흔적을 확인하자마자 무턱대고 튀어나오는 그 말,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라고 외치는 순간이 훨씬 더 돋보인다.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라는 그 말 앞에는, ‘사람한테’라는 괄호가 있을 것이며, 이 말은 거의 논리적이지도 예리하지도 않으며 막무가내인 데다 본능적이어서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의 울혈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 말을 하는 송강호의 송우석은 과연 사람답다.

결국 이발사는 질병을 고칠 수 없으므로 “선생님 여기도 좀 도와주세요”라고 말한 시민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성한모는 잘못이 없다. 그건 그의 직업적 무능이다. 노무현 시대에 그려진 박정희 시대의 이발사는 바로 그 무능에 대한 우화의 주인공이다. 반면에 송우석이 “변호사 선생님아 나 좀 도와줘라” 하고 청하는 국밥집 아주머니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람으로서의 무모함 때문이다. 그는 결과가 빤한 재판에 뛰어들지만 그로써 결국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한다. 박근혜 시대에 그려진 전두환 시대의 노무현을 모델로 한 변호사는, 할리우드의 범상한 내러티브 구조를 구태의연하게 답습하고 있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무모함으로써 현실을 자극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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