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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의 오! 마돈나] 고통받는 사람들의 연인

줄리에타 마시나 Giulietta Masina

<길>(1954)의 주인공 젤소미나는 성장이 멈춘 여성이다. 이를테면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1959)의 주인공인 오스카와 비슷한 캐릭터다. 단 오스카는 나치 독일에서 자의로 성장을 거부했다면, 젤소미나는 전후 이탈리아에서 타의에 의해 성장이 중단된 경우다. 단호하고 광기에 가까운 의지의 오스카와는 달리 감성의 젤소미나는 연약하고 바보 같다. 펠리니에 따르면 전쟁과 파시즘을 겪은 이탈리아의 운명이 그렇다는 것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딸이고, 배우지 못했고, 성장하자마자 돈에 팔려가고, 길에 떠돌 운명이며, 결국 이용만 당하다 버려진다. 이탈리아의 관객은 젤소미나를 보고 자기 연민에 울었다. 그런데 전세계의 관객도 그녀를 사랑했다. 말하자면 젤소미나는 시대의 초상화가 됐는데, 그녀를 연기한 줄리에타 마시나는 이 역을 통해 영원히 영화사에 남았다.

펠리니와의 만남

1940년대 초 줄리에타 마시나가 로마대학에 다니며 대학연극반 활동을 할 때, 페데리코 펠리니는 지방에서 막 로마에 도착한 작가 지망생이었다. 그는 글도 잘 썼지만, 그림 실력 덕분에 당시 미군들 캐리커처를 그려주고 생계를 꾸렸다. 펠리니가 작가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라디오 드라마를 통해서였다. 두 사람은 그때 만났다. 펠리니는 막 주목받는 라디오 작가였고, 마시나는 부업으로 성우를 하던 대학연극 배우였다. 마시나는 미래의 남편인 펠리니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유명 성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1943년 결혼한다. 펠리니는 23살, 마시나는 22살이었다.

이후 펠리니는 로셀리니의 조감독이 되면서 우리 모두가 잘 아는 거장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로셀리니의 시나리오를 쓰고, 조연출을 맡고, 결국 감독으로 데뷔한다. 반면 마시나는 라디오와 연극 무대를 통해 배우로 성장했다. 연기도 잘 했지만, 특히 춤을 잘 췄다. 네오리얼리즘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 알베르토 라투아다의 <동정도 없이>(1948)를 통해 영화에 데뷔했는데, 바로 그 작품으로 마시나는 이탈리아의 가장 오래된 국내 영화제인 ‘은리본상’에서 조연상을 받으며 배우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당시에 네오리얼리즘이 지배적인 미학인 것은 마시나에게 행운이었다. 마시나는 외모로 크게 어필하는 배우가 아니라서 하는 말이다. 알다시피 네오리얼리즘은 기성배우를 좀처럼 캐스팅하지 않았다. 특히 현실적이지 않은 빛나는 외모를 가진 배우는 오히려 기피했다. 지나 롤로브리지다로부터 이어지는 이탈리아의 육체파 여배우 시대는 네오리얼리즘이 쇠락할 때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마시나는 네오리얼리즘의 캐릭터들, 곧 하층민 여성들을 연기하며 주목받았다. 데뷔작에선 매춘부, 남편의 감독 데뷔작인 <버라이어티 쇼>(1950)에선 유랑극단 배우, 역시 펠리니 연출의 <백인추장>(1952)에서 또 매춘부, 로셀리니의 <유럽 ’51>(1952)에서 빈민촌 여성으로 나온다. 늘 먹는 게 걱정이고, 길거리에 나앉아야 하는 최하층 여성들이다. 모두 조연이거나 단역들이었다.

<길>이 발표될 때는 네오리얼리즘도 위기를 맞을 때이고, ‘분홍빛 네오리얼리즘’이라는 감상적 혹은 희극적 변형이 등장하여 관객의 사랑을 받을 때다. 이를테면 조각 같은 외모를 가진 롤로브리지다가 주연으로 나온 변형된 네오리얼리즘 영화 <빵, 사랑 그리고 판타지>(감독 루이지 코멘치니, 1953) 같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올 때다. 말하자면 사회고발과 여성육체의 전시, 그리고 패러디의 유머 등이 종합된 희극이 대세였다.

그런데 펠리니는 <길>에서 주로 조연배우로 활동하던 왜소한 외모의 아내를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세상의 관객은 이탈리아 여성의 관능에 매혹될 때인데 말이다. <길>은 정통 네오리얼리즘과 비교하면 정치성과 계급의식이 부족한 감상적 드라마로 비칠 수도 있는데, 관객의 사랑은 전례가 없던 것이었다. 세상의 풍파에 휘둘리는 젤소미나를 연기하는 마시나의 역량은 지금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어떻게 당시 33살인 배우가 어린이와 같은 맑은 눈동자와 남자를 아는 여자의 성숙한 눈동자를 동시에 연기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길>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으며 이들 부부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특히 마시나는 젤소미나 역을 통해 세상의 모든 고통받는 사람들의 연인이 됐다.

장례식에 울려 퍼진 <길>의 멜로디

<길>에서의 인기는 <카비리아의 밤>(1957)을 만나 절정에 이른다. 역시 펠리니의 연출작인데, 마시나는 또 매춘부로 나온다. 로마 밤풍경의 빼어남, 특히 카비리아가 밤이 되면 일터처럼 나오는 카라칼라 목욕탕 주변의 거리 풍경은 이 영화의 압권으로 남아 있다. 카비리아는 혈혈단신에 오직 몸을 팔아 생계를 꾸리지만, 늘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은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남자는 그녀에게 오직 돈만을 요구할 뿐이다. 비정하게 버림받은 카비리아가 자살의 유혹을 뒤로하고, 밤거리를 걸으며 눈물이 고인 눈으로 관객을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은 줄리에타 마시나가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연대의 몸짓으로 해석됐다. 일어나 앞으로 걷자는 것이다. 그리고 관객을 바라보는 그 장면은 이후 펠리니 영화의 주요한 테마가 되는 자기 반영성의 출발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카비리아의 밤>으로 펠리니는 2년 연속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았고, 마시나는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마시나는 펠리니 영화에서 최고로 빛났지만 아쉽게도 다른 감독들과는 특별한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특히 쥘리앙 뒤비비에의 대규모 예산 영화 <위대한 삶>(1960)이 흥행에서 참패하며 마시나는 잠시 영화계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펠리니 최초의 컬러영화인 <영혼의 줄리에타>(1965)에 오랜만에 등장한 뒤, 마시나는 사실상 영화계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 20여년의 공백을 깬 작품이 <진저와 프레드>(1986)이다. 과거 할리우드 뮤지컬의 스타 진저 로저스와 프레드 아스테어처럼 댄스 콤비를 이뤘던 두 늙은 배우들이 오랜만에 TV 특별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이야기다. 늙은 남녀는 이제 스텝도 엉성하게 밟는데, 그러면서도 평생 무대 위에 살았던 자신들의 삶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표현한다. 상대역은 펠리니의 영화 속 분신인 마스트로이안니였고, 따라서 <진저와 프레드>는 60대가 된 두 배우, 그리고 펠리니 자신의 스크린을 통한 작별인사처럼 보였다.

펠리니는 1993년 가을에 죽었고, 마시나는 금실 좋은 부부들이 대개 그렇듯 불과 5개월 뒤 죽었다. 장례식에선 마시나의 유언에 따라 <길>의 유명한 멜로디가 트럼펫으로 연주됐다. 마시나는 죽어서도 젤소미나로 남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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