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만 관객을 동원한 <7번방의 선물>. 올해 총 8편의 한국영화가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관객 2억명 시대가 열렸다. 어림잡아 5천만명이 1년에 4번씩 영화를 본 셈이다. 2011년 기준으로 미국 4.0회, 영국 2.74회, 호주 3.8회 등과 비교했을 때 한국인이 극장을 찾는 횟수가 이제 세계 최고 수준임을 보여준다. 그중 한국영화는 현재 1억1500만명, 연말까지 가면 전체 관객수의 60%를 넘을 것이 확실하다. 더 놀라운 것은 올해 500만명 이상을 동원한 영화 10편 중 무려 8편이 한국영화란 사실이다.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많은 것들이 후퇴한 2013년이었지만, 한국 영화산업은 분명 양적으로 큰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규모의 경제가 전부일 순 없다. 흥행 순위 1~20위의 매출 비중은 56%까지 치솟는다. 2013년 개봉한 835편의 국내외 영화 중 불과 2.4%가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이다. 승자 독식이 아닐 수 없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극장의 몰아주기 때문인데, 잘되는 영화 위주로 심지어 전체 스크린의 절반 이상을 열어주다 보니 양극화 현상이 심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첫주에 터지지 않는 영화들은 입소문에 의한 역전 드라마가 불가능하며, 태생부터 마케팅 포인트가 약한 저예산영화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처럼 극장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계산법으로 극장 스크린을 매일 프로그래밍한다면 200만, 300만 중박 영화들이 나오기 힘들다.
올해처럼 위대한 영화를 은밀하게 찾아다니며 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SNS 등에서 좋다고 입소문이 날라치면 벌써 가뭄에 콩나듯 교차상영이다. 비록 500만 이상 영화가 10편이나 나와 풍년처럼 보이지만 마케팅비도 못 건지고 쫄딱 망한 영화도 몇 백편은 될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의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똑같이 고생해 영화를 내걸었건만 첫주 성적에 따라 마치 정규직과 비정규직처럼 신세가 완전 달라지고 만다. 억울하면 마케팅비 많이 쏘고, 영화 잘 만들면 되지라는 말은 마치 억울하면 명문대 나와서 정규직 되란 말처럼 잔인하다. 무릇 노동현장을 지켜보면 알 수 있듯이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조를 외면하는 한 문제는 절대 풀리지 않는다. 조금 덜 벌더라도 같이 나눌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 이제 한국 영화계는 양적 성장의 착시현상에 기뻐할 때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공정한 게임을 할 수 있고, 약자를 배려하는 장치를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가 수치상으론 괜찮아 보여도 실제적으론 삼성과 현대 외엔 모두 죽을 쓰고 있는 것처럼, 한국영화 2억명 시대에 과연 극장 대기업과 상위 몇 퍼센트의 운 좋은 영화들 외에 안녕한 이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