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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그곳에 간다

시인 L, 드러머 K, 사진작가 P의 잉여생활을 엿본 뮤지션, 시인 성기완

겨울 오후의 벤치는 한산하다. 바람이 제법 매섭다. 넘실대는 파도 위로 햇빛이 비쳐 눈이 부시다. 하얀빛이 물결 위에서 반짝이며 춤을 춘다. 시인 L씨라면, 텅 빈 벤치 하나를 즐거이 차지한 채 이 즉흥적인 춤을 분명 두어 시간은 넋놓고 바라봤을 것이다. 구름이 해를 가려 빛의 춤이 일시적으로 멎어도 감상은 여전히 지속된다. 이번엔 구름과 해의 숨바꼭질을 오랫동안 바라본다. 풍경의 명암을 시시각각 바꾸는 이 숨바꼭질은 하늘과 땅 전부를 대상으로 하는 큰 스케일의 장난처럼 느껴진다. 드넓은 풍경 전체의 분위기가 끊임없이 바뀐다. 인상파 화가라면 이 변화무쌍한 빛의 유희에 황홀해하며 그 과정을 붓으로 기록했을 것이다. 시인 L씨에게는 이 위대한 놀이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그저 바삐 제 갈 길만 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멍청해 보인다.

직장의 룰, 잉여생활의 적

열정적인 잉여생활을 위해 드러머 K씨는 최근에 학교 강의를 중단했다. 직장은 단연코 정규 잉여생활 최대의 적이다. 직장의 룰은 잉여생활의 맛과 멋을 깔아뭉개는 무례한 조항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K씨는 완벽주의자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하는 수 없이 매우 철저해야 하고 스스로 완벽해야 한다. 그런 자세 없이 학생들을 대강 가르치는 동료 선생들이 비정상으로 보였다. K씨는 그 압박을 견디기 힘들었다. 게다가 뮤지션이라면 자기 음악을 즐겨야 하는데 자꾸 직장의 룰이 즐거움의 영역을 침범했다. 즐겁게 즉흥연주를 하다가도,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기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이 떠올랐다. 자, 왼손은 이렇게 하고, 오른손은…. 음악할 때는 음악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잡생각이 들다니. 한마디로 K씨는 드럼만 치고 싶었다. 다른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K씨는 직장을 관둔 뒤 밴드 3개를 하고 있다. 밴드 스케줄을 맞추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물론 모두 돈 안 되는 인디 밴드거나 실험적인 사이키델릭 밴드다. 가끔 세션 일도 들어오지만 드물다. 세션도 드럼을 치는 일이기 때문에 마다하지 않는다. K씨는 젊은 알코올홀릭이다. 레슨을 하다보면 낮에도 술이 당길 때가 있다. 그때 교실에 술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면 몸이 으슬으슬 떨리기 시작한다. 진눈깨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K씨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곳’에 갔다. ‘그곳’에서는 시인 L과 사진작가 P씨가 묵묵히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사진작가 P씨는 얼마 전 인디 뮤지션인 A와 헤어졌다. 그것은 또 다른 뮤지션 N과의 새로운 연애 때문이다. A는 울었고 N은 웃었다. A 이전에는 동료 화가 C2가 웃다가 울었다. 그 이전에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K가 그랬고…. P씨가 개인전을 한 게 언제였더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P씨는 한번도 자기 자신이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P씨는 훌륭한 사진작가다. 그러나 P씨의 진정한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영역은 사진이라기보다는 연애쪽이다. P씨는 연애 전공이다. 사소하고도 구체적인 디테일들이 결과를 치명적으로 뒤바꾸는 것이 연애의 매력이다. 그대목이 P씨를 미치게 한다. 이 세상에 아름다운 여인보다 더 사치스러운 게 어디있단 말인가! P씨는 로맨스를 위해 기꺼이 인생의 시간들을 아낌없이 희생했다. 왜 그런지 몰라도 미국 유학을 다녀온 이후에 그 열정에 불이 붙었다. 그것은 아마도 샌프란시스코 때문이었을 거라고 말해두자. P씨는 자신의 거의 모든 시간을 불살라 여자들과의 연애에 할애했다. 집을 아름답게 꾸미고, 좋은 술들의 이름을 외웠으며, 멋진 셔츠를 검색했다. P씨는 두번 이혼했고, 두명의 자식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 P씨의 친구들은 그 아이들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P는 아름답고 자유로운 연애를 위해 얼마 전 정관수술을 했다. 정자들은 연애를 방해할 뿐이라는 것이 P씨의 지론이다.

‘일하지 말자’는 구호

시인 L씨는 겨울 벤치에 앉아 책 한권 분량의 문장들을 머릿속에서 썼다가 지운다. 갈매기들은 백사장 위를 떼지어 날고 비둘기는 지저분한 부리로 모래에 박힌 양파깡을 쫀다. 자기 행동의 목적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구는 많은 사람들이 실은 비둘기처럼 행동한다. 아니, 어쩌면 비둘기만도 못하다. 비둘기는 이 풍경의 가장 큰 특징이 아무 목적도 없어 보인다는 데 있다는 것을 모르지만, 아무런 대가나 저항도 없이 그 풍경의 일부가 됨으로써 풍경의 본질을 수행한다. 누가 파도 보고 그렇게 치라고 했으며 해더러 따스하게 비추라고 했나. 해는 그늘이 불쌍해서 빛을 작열하는 게 아니다. 구름은 해가 샘나서 해를 가리는 게 아니다. 그냥 아무 뜻도 없이 전체의 일부분일 뿐이다. 이 과정에서 해가 얻는 것이 없기 때문에 해는 일하는 것이 아니다. 구름도 가져가는 게 없기 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존재들에게 따스함과 촉촉함을 주고 예쁜 숨바꼭질을 하면서도 정작 해나 구름은 장관님처럼 으스대지도, 사장님처럼 챙겨가지도, 예술가처럼 잘난 체 하지도 않는다. 시인 L씨는 다시 한번 파리 68혁명의 가장 중요한 구호의 하나인 ‘일하지 말자’(Ne travaillez pas)가 얼마나 중요한 화두인지 실감한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무위(無爲),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 무언가 얻기 위해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는 이윤추구적 가치관의 압도적 우위에 반기를 들고자 무위도식의 길을 택한 것은 아니었으나, L씨가 자연스럽게 이 사회의 적, 이 사회의 파괴자로 등장한 것은 그가 무위도식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L은 세상과 점점 더 멀어진다.

특급호텔 통유리 바깥 잔디에서 저녁을 맞이하는 길냥이와 그 안에서 티를 마시며 고양이를 바라보는 된장녀의 머릿속에는 비슷한 생각들이 들어 있을 것이다. 이제 어디로 갈까. 밤이 됐으니 매혹은 시작된다. 분주하고 지저분한 낮이 드디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오후 다섯시에 외출하는 후작 부인도, 머리 손질을 하고 살롱으로 향하는 프루스트도 비슷한 흥분을 느낀다. 구태여 비장한 것도 진정한 무위의 삶에서는 우스운 일이라 유쾌하게 빌어먹자 싶어 헛허 웃는다. 사람들이 저런 멍청이라고 놀리는데 L씨는 거기에도 익숙해져간다. L씨는 친구인 드러머 K씨가 있는 ‘그곳’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