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STAFF 37.5
[STAFF 37.5] 내가 먼저 배우를 사랑한다
이화정 사진 오계옥 2013-12-27

<변호인> 분장 김서영

Filmography

<좋은 친구들>(촬영 준비 중) <변호인>(2013) <설국열차>(2013) <도둑들>(2012) <쌍화점>(2008)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타짜>(2006) <말죽거리 잔혹사>(2004) <킬리만자로>(2000)

눈썰미 좋은 관객은 금세 알아볼 것이다. 2:8로 쩍 갈라진 가르마가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그 순간을, 그 의미를 말이다. 혹시라도 놓쳤다면, <변호인>의 송우석이 속물근성의 세무변호사에서 양심을 지닌 인권변호사로 거듭나는 대목에서의 송강호 얼굴을 되새겨보라.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가. “그건 배우 송강호가 가진 연기력과 파워가 이뤄낸 거다. 내가 한 건 별로 없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송우석의 헤어와 메이크업을 담당한 김서영씨는 자신의 역할을 애써 축소하려고 든다. 하지만 그녀의 손사래와 달리 <변호인> 속 캐릭터 하나하나에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보조출연자 한명한명까지 시대극의 정서에 부합하게끔 이미지를 창조해낸 건 그를 비롯한 분장팀의 공이다.

<변호인>의 캐릭터 이미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리얼리티’다. “1970, 80년대를 다루는 경우 코믹함으로 당시 정서를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 우린 최대한 리얼리티를 살리는 데 주력했다.” 그 시대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보다는 당시의 사진집, 특히 가족사진 등을 주로 참고한 것도 그 때문이다. 무엇보다 김서영씨의 가장 큰 고민은 송우석의 헤어스타일이었다. “실제 모델을 염두에 두고 숱감을 살리기 위해 가발도 착용했다. 초반엔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로 가다가, 점차 흐트러진 자연스런 머리로 인권변호사로서의 정감을 강조했다.” 송강호는 그녀가 고심 끝에 내놓은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을까. “처음 빗어 넘긴 머리가 어색했던지 송강호 선배는 한 가닥이라도 내리면 안 되냐고 하더라. (웃음)” 하소연해도 소용없다. 스타일에 관해서는 김서영씨의 말이 곧 법이었으니까.

분장 스탭은 특별한 존재다. 배우와의 근접거리 1cm, 현장에서 가장 먼저 배우를 맞는 이들도 분장팀이다. 감독이 배우의 내면을 확장한다면 분장팀은 배우를 캐릭터에 최대한 가까운 스타일로 창조해주는 외연의 확장자다. “배우의 전적인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처음엔 서로 다가가기 어렵다. 그래서 내가 먼저 배우를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사교에는 영 소질이 없다는 그녀가 배우와의 거리를 더욱 좁히기 위해서 터득한 자신만의 방법이다.

김서영씨는 기업체의 비서직으로 일하다 우연히 특수분장을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분장의 길에 들어섰다. 데뷔작은 <킬리만자로>, 올해 경력 13년차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말죽거리 잔혹사>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타짜> <도둑들> 등과 같이 유독 선 굵은 남성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로맨틱한 영화를 하면서 트렌드에 민감한 스타일 창조에서도 즐거움을 느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누아르영화를 좋아하고, 피칠하고 상처내고 그런 작업이 더 재밌는 것 같다.”

<변호인>에 참여하기 전엔 <설국열차>에서 송강호, 고아성의 전담으로 해외 로케이션을 경험했다. “체코 작업이 남겨준 게 많다”는 그녀는 캐릭터를 창조하기 위해 가발 사용이 보편화된 기술적 측면을 습득했을 뿐만 아니라, 직업에 대한 마음가짐도 다잡았다고 한다. “현장은 여전히 힘들다. 24시간 대기와 열악한 환경이 공존한다. 그러다보니 점점 젊은 친구들만 남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설국열차> 현장에 연륜으로 무장한 스탭들이 많은 걸 보고 나도 버텨야지 싶었다. 열심히 해서 내공의 힘을 보여주자 싶더라. (웃음)” 김서영씨는 내년 1월 <좋은 친구들> 작업을 시작으로 빈틈없는 2014년을 준비 중이다.

만화책이 보물섬

김서영씨가 스타일의 영감을 얻는 곳은? 만화책이다! “순정만화부터 무협지까지, 가리지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본다.” 만화책은 김서영씨에게 두 가지 역할을 해준다. 하나는 마음의 여유, 생활의 활력 같은 심리적인 역할이고, 다른 하나는 그 휴식에서 오는 생각지 못한 기발한 소스와 자료로서의 역할이다. “만화책은 내 영감의 마르지 않는 우물이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