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결혼한 친구들 중 누구도 결혼을 권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결혼식장이나 돌잔치에서 오랜만에 마주한 그들은 웃으면서, 하지만 진지하게 충고한다. “사람이, 꼭 결혼을 해야 하는 건 아니야….” 그러고보니 그 미소에는 체념이 배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질풍노도의 신혼 시절 잠시 겪는 갈등이라기엔 결혼 10년차 선배의 조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남이 안 보면 몰래 내다버리고 싶은 것이 가족”이라는 기타노 다케시의 말은 너무나 유명하지만, 사랑했기 때문에 가족이 되기를 선택했던 배우자조차 이제는 내다버리고 싶은 존재라는 말을 눈앞에서 들었을 땐 사는 게 좀더 두려워졌다. 도대체 부부란 무엇인가,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JTBC <네 이웃의 아내>를 보고 있으면 종종 그들이 떠오른다. 결혼 17년차, 능력 있는 광고회사 팀장 채송하(염정아)와 대학병원 의사 안선규(김유석) 부부는 앞집에 이사 온 민상식(정준호), 홍경주(신은경) 부부와 얽히며 불륜에 가까워지지만 문제의 시작은 그게 아니다. 그들이 서로 만나기도 전부터 각자의 가정에 뿌리내리고 있던 불만이 위험한 관계의 진전과 함께 증폭될 뿐이다. 연애 시절 그토록 감동적이던 서로의 장점이 결혼 뒤에는 고칠 수 없는 단점으로 불거져나오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사회에서 죽도록 뛰었더니 정 없고 이기적인 배우자가 되어버렸다는 게 그들이 마주한 딜레마다. 타인에겐 더없이 좋은 사람이, 매일 한 침대를 쓰는 입장에서는 원수 같은 대상일 수도 있다는 게 결혼의 현실이다. 그래서 내 옆에 있는 사람의 가치에 소홀해지고, 그에게 부족하다고 느꼈던 부분을 앞집 남자와 여자에게서 발견한 주인공들은 새로운 사람에게 설렘을 느낀다.
사실 불륜에 대한 드라마는 많다. 하지만 <네 이웃의 아내>는 새로운 상대에게 눈이 멀어 가정과 커리어를 화끈하게 버리는 남녀의 이야기가 아니다. 경주에게 상식은 밥그릇에 침을 뱉을 만큼 치사하고 이기적인 남편이지만, 동시에 그는 가족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에 짓눌려 힘들어하는 가장이고 경주의 어머니가 아플 때 성의를 다하는 사위이기도 하다. 남편과는 가벼운 스킨십조차 어색해진 송하가 일로 만난 상식에게 끌리다가도 “저 유부녀예요. 남편이 있고 아이들 엄마고요, 직장인이에요. 저도 한땐 참 꿈이 많았는데 지금은 너무 평범해져서 제가 가진 어느 것 하나 놓칠 수가 없습니다”라며 한발 물러서는 순간은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쓸쓸하다. 그래서 남의 남편, 아내와 함께 호텔까지 갔다가도 아이들의 전화를 받고 현실로 돌아오는 송하와 상식의 모습은 ‘선’을 넘지 않으려는 윤리적 자각이라기보다 자신을 구성하는 모든 가지가 배우자와 너무 단단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어 벗어날 수 없음을 아는 이들의 포기처럼 느껴진다. 물론 그들이 지켜낸 그것들이 때로는 먼저 뒤통수를 치고 배신하기도 한다는 게 인생의 몹쓸 아이러니이긴 하지만.
그러니까 결혼을 ‘강력 추천’하지 않는 기혼자들의 태도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버스럭대는 결혼 생활에 지쳐 서로를 물어뜯다가도 “다 당신 탓만은 아니지. 먹고사는 게, 이놈의 대한민국이 너무 빡센 거지”라고 씁쓸하게 탄식하는 선규와 송하 부부의 말처럼 먹고살기도 팍팍한 세상에서 좋은 파트너가 된다는 건 정말로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공률 낮은 선택을 한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행복해지길 바란다. 한 친구는 결혼 뒤 한동안 힘들었던 시기를 돌이키며 말했다. “우리 집에 남편이랑 나만 사는 게 아니라 ‘결혼’이라는 제3자가 같이 사는 것 같았어. 셋이 사는 데 적응하니까 덜 싸우게 되더라.” 아마 부부의 삶이란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 사람 각자의 생존과 별도로 ‘관계’ 그 자체를 위한 노력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처럼.
+α
불륜보다 짜릿한 채송하의 한방
직장인 채송하에게 커리어는 로맨스 이상으로 중요하다. 거래처 양 상무(염동현)의 성희롱마저 참아올 정도인데, 양 상무가 광고모델 여배우에게까지 치근덕대자 마침내 돌려차기를 날린다. 앞으로의 일이 예측되기에 통쾌하면서도 서글픈 장면. 결국 대기발령을 가장한 퇴사 통보를 받은 그녀에게 소주 한잔 따라주고 싶은데, 뭐? 갑자기 임신을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