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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변호인은 관객이다”
김성훈 사진 오계옥 2013-12-17

<변호인> 제작한 위더스필름 최재원 대표

고마워. 미안해. 수고해. <변호인> 현장에서 감독, 배우, 스탭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라고 한다. 부림사건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소재때문에 쉽지 않았던 제작 과정을 정면 돌파할 수 있었던 것도 제작진이 서로를 끌어주고, 챙겨준 덕분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투자부터 상영까지 제작의 전공정을 힘들게 이끌어온 위더스필름 최재원 대표가 이 세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을 것이다. 펀드매니저 출신의 투자자였던 그는 전 아이픽쳐스 대표, 전 바른손 대표 등을 거치며 많은 영화의 투자와 제작을 결정해왔다. 그런 그가 ‘변호사 시절’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계기인 부림사건을 스크린으로 불러들인 이유가 무엇일까

-언론/배급시사회 반응이 좋다. 예상했나. =못했다. <링컨> 같은 정치인을 소재로 한 영화는 영화 자체로서 평가를 받았다. <변호인>처럼 특정 인물이 논란이 된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그게 불편했다. 영화를 보고 얘기하자. 언론/배급시사회를 개봉일로부터 3주 전에 진행한 것도 그런 고민에서 나온 선택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후하게 봐주신 것 같다.

-서울 지역에서 진행하는 일반시사회와 달리 <변호인>은 제주도를 시작으로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천안 등 전국 주요 도시를 차례로 올라가는 전략을 선택했다. =영화를 둘러싼 오해를 벗어버리고 싶었다. 이건 보편적인 내용을 다룬 이야기인데, 영화를 보기도 전에 여러 얘기가 나오는 건 제작자 입장에서 영화를 열심히 만든 스탭과 주인공 송우석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송우석을 송우석으로 봐주면 안 되는가.

-극장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 영화의 반응이 좋아 많이 열고 싶지만 정권의 눈치도 신경 쓰는 것 같다. 첫주 상영관 확보가 관건이다. =CJ는 <집으로 가는 길>에, 쇼박스는 <용의자>에, 롯데는 <캐치미>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사실 첫주 개봉관 확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 영화가 관객에 의해 계속 힘을 받을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좌석점유율이 중요하다. 좌석점유율이 높으면 스크린 수는 자연히 확대된다. 어쨌거나 스크린 수는 내가 할 고민이 아니다. 공은 극장으로 넘어갔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전략이 따로 있나. =이 영화가 투자가 될까 고민했을 때는 그런 생각도 했다. 하지만 영화가 공개된 지금은 그런 고민을 할 단계가 지났다.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건 내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관객에 대한 모종의 조치라 생각한다. 그래서 <변호인>의 변호인은 영화를 본 관객이라는 얘기를 농담처럼 하고 있다.

-양우석 감독이 고려대 후배라고 들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변호인>의 아이템을 픽업하면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고. =그는 웹툰 작가다. 그와 다른 영화를 기획하다가 엎어졌다. ‘다른 거 없냐’고 물어보니 책(시나리오)을 보내왔다. 50페이지 분량의 트리트먼트였다. 읽어보니 부림사건을 소재로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기 같은 느낌이었다. 한 시간 동안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다음날, 감독에게 오라고 했다. 하자. 단, 조건이 있다. 부림사건을 베이스로 가지고 가되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최대한 시나리오에서 지우자. 그게 시나리오 작업의 목표였다.

-고졸인데다가 돈도, 백도 없는 부산 출신의 변호사라는 설정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하게 한다. =그 설정을 빼니 재미가 없어지더라. 부산 출신, 고졸, 인권 변호사, 세 가지 설정은 어떻게든 노무현을 비켜갈 수 없다. 그래서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부림사건 전후로 보여지는 송우석의 대비된 모습이었다.

-봉준호, 김지운 등 이름 있는 감독과 작업해왔다. 신인 감독은 이번이 처음이다. =양우석 감독은 현장 경험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그와 함께 작업을 했던 이유는 하나였다. 이 시나리오를 다른 기성 감독들이 맡게 되면 최초의 기획 의도가 왜곡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송우석을 누가 연기할 것인가가 관건이었을 것 같다. 송강호가 처음부터 수락을 하던가. =극중 나이가 35살이라 (송)강호를 처음에는 배제했다. 대신 30대 후반의 배우들에게 많이 연락했다. 부담스러워 하더라. 어느 날 오랜만에 강호가 놀러왔다. 시나리오를 줬다. 나중에 강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잘 봤는데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강호를 만났는데 ‘(<변호인>) 생각이 자꾸 난다. 감독 한번 만나게 해달라’고 하더라. 다행스럽게도 강호가 양우석 감독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날 헤어진 뒤 자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재원아, 할게. 좋은 작품 만나게 해줘서 고마워. 진심으로 연기할게.’ 송강호가 합류하면서 이 영화가 상업영화로 탈바꿈하게 됐다. 투자도, 캐스팅도 수월하게 진행됐다.

-송강호가 합류하기 전까지 돈을 어떻게 구했나. =해외 동포들을 상대로 20억원을 구하러 다녔다. 그렇게 돈을 구하러 다니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 이게 이렇게 눈치 볼 일이야? 시나리오를 읽었던 사람들 대부분 ‘책은 좋은데 입봉 감독이라 못하겠다’는 핑계를 대며 거절했다. 친한 대기업 임원은 ‘책 너무 재미있게 봤다. 몇 조원 넘는 회사가 꼴랑 몇 십억 되는 영화 때문에 눈치 볼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회사의 녹을 먹고 있는 이상 도와줄 수 없다’고 말씀을 주셨는데, 이 말이 너무 솔직하고 고마웠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을 텐데 그럼에도 진행을 계속한 이유가 뭔가. =내일모레면 50살이 된다. 나이를 조금 더 먹으면 완전 꼰대가 될 것 같더라. 와이프한테 책을 주고 할까 말까 물어봤다. 와이프가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거잖아. 그게 최재원 아냐?’라고 얘기해줘서 고마웠다. 정치적인 의도는 아니다. 남들은 용기라고 하는데 정말 무섭다. 진짜 마음속에 담았던, 그 시절을 살던 사람들을 얘기하고 싶었다.

-진행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뭔가. =강호가, 강호가…. 송강호가 다 해준 거다. 내가 벌인 일인데 다 송강호가 했다. 기자간담회를 앞두고 ‘재원아 이 말 하고 싶은데’, ‘그건 안 된다고? 아직 그렇지?’ 밤새 전화 통화하며 준비했다. 제작보고회 날 강호가 총알받이가 되어 모든 질문을 감당해야 했다. 송강호는 연기만 생각하는 아티스트다. 그가 한 거라고는 송우석이라는 사람의 삶에 들어가려고 혼신의 힘을 다한 것밖에 없는데 그래야 했다.

-NEW와 투자/배급 계약을 했다. =사실 CJ와 쇼박스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NEW에는 책을 안 줬다. 그런데 어떻게 구해 봤더라. 갑자기 영화사업부 장경익 대표가 전화를 해서 “어떻게 나한테 책을 안 줄 수가 있냐. 우리는 만장일치로 이 영화를 하기로 했다”고 얘기하더라. 김우택 대표도 직접 전화를 해서 “너 임마, 딴 데 가면 정말 안 본다”고 애정을 보여주셨고. 마지못해 하는 척했지만 그때 무척 감사했다.

-촬영하는 동안 현장을 공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했다. =아무래도 소재가 민감하니까. 행복하게 찍었지만 촬영 내내 굉장한 긴장감이 있었다. 그게 어떤 상황 때문에 방해를 받는 게 두려웠다.

-촬영하는 동안 외압은 없었나. =사전에 공개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어느 날 갑자기 생각한 게 외압을 걱정하는 것조차 이런 정국에서 알아서 기는 게 아닌가 싶더라. 영화는 영화로 가자. 영화의 힘을 믿자. 외압이 발생하면 그때 대처하는 게 맞다. 미리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을 걱정하는 건 아니다. 믿어보자, 송우석을.

-개봉일이 12월18일 수요일로 결정됐다(원래 19일이었다가 NEW가 18일 수요일 전야 개봉으로 변경했다.-편집자). =꽤 일찍 결정된 거다. NEW의 판단이었다. 후반작업을 적어도 10월 말까지는 해야 했다. 그전에는 개봉하기 어렵다고 하자 김우택 대표는 쿨하게 12월로 하자고 하더라. 크리스마스 직전인 핫한 시즌에 까기로 한 거지. 사람들은 12월19일이라는 날짜를 두고 어떤 의도가 있는 것처럼 의미를 부여하고. (웃음)

-공교롭게도 12월 중순에 각사의 마지막 카드가 대격돌한다. 자신 있나. =농담으로 CJ 정태성 대표한테 “비켜가지?” 그랬고, 쇼박스 (유)정훈이 형한테도 “1월로 가지?” 그랬다. 다 잘되어야지. 현재 가장 두려운 게 개봉일이 아직 보름 이상 남았다는 것. 시사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줘서 감사하다. 그런데 개봉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좀 두렵다. 영화가 끝까지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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