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단편영화의 조건은 무엇일까. 단편만이 시도할 수 있는 창의력일 수도 있고 파격적인 실험정신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단편영화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될 수 있는 기회, 말하자면 파급력을 그 첫 번째 조건으로 꼽고 싶다.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결국엔 관객을 통해 완성되며 그것이 단편영화라면 관객과의 소통은 더욱 절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2006년 시작된 애니임팩트(Animpact Animation Festival)는 국내 단편영화제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관객점유율을 자랑하는 옹골찬 영화제다. 올해로 8회째를 맞이한 애니임팩트는 이제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에서는 놓쳐선 안 될 영화제로 자리잡았다.
마뉘엘 바그너 감독의 워크숍을 마친 상하이시각예술학원 학생들.
영화제란 기본적으로 대중에게 덜 알려진 좋은 작품들과 관객이 만나는 장이다. 하지만 많은 영화제들이 신작과 신인 발굴에 힘을 쏟고 있는 사이에 정작 검증된 좋은 작품은 대중과 만날 기회를 찾지 못하는 모순적인 현실에 놓여 있다. 애니임팩트는 이 지점에서 단순하게 접근했다. 안시(프랑스), 오타와(캐나다), 자그레브(크로아티아)를 비롯하여 SICAF(한국), 아니마문디(브라질), 홀란드(네덜란드), 슈투트가르트(독일), 애니페스트(체코), 멜버른(호주), 테헤란(이란) 등 세계 유명 영화제의 단편애니메이션 부문 수상작들을 한자리에 모은 것이다. 보고 싶었지만 볼 방법이 없었던 유명 단편애니메이션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덕분에 애니임팩트는 항상 좋은 작품에 목말라 있는 국내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다. 영화제를 위한 영화제가 아니라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어 하는 관객을 위한 영화제로 해마다 그 실속을 다져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애니임팩트가 올해 또 한번 관객 확장을 위해 도약을 시도했다. 국내 영화제 최초로 한/중/일 3국에서 개최한 것이다.
상하이시각예술학원에서 진행된 애니메이션 상영회에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해 엄선된 명작 단편애니메이션들을...
올해 애니임팩트는 중국과 일본에서 각각 ‘애니임팩트 차이나’, ‘애니임팩트 재팬’이라는 타이틀로 열렸다. 단순한 순회 상영을 넘어 국제 행사로 규모를 키워가기 위해 현지 주최사가 행사 포맷을 차용해 공동 브랜드로 진행한다. 세계 10대 영화제 단편애니메이션 수상작을 한자리에 모으는 고유의 형식 아래 각국의 상황에 맞춰 유동적인 프로그램 구성이 가능한 것이다. 어느 나라 영화냐에 구애받지 않고 오직 애니메이션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함께 모여 보는 새로운 연대인 셈이다. 특히 이번 애니임팩트 차이나는 “좋은 작품을 최대한 많은 이들과 공유한다”는 애니임팩트의 기본정신에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부합하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1월29일부터 사흘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애니임팩트 차이나는 주상하이한국문화원과 상하이시각예술학원에서 이원 개최되었는데, 상하이시각예술학원에서는 학생들과의 만남을, 주상하이한국문화원에서는 일반 관객과의 만남을 원활히 하고자 최대한 창구를 확장했다.
워크숍 작품을 만들고 있는 중국 어린이들. 플립북 제작에 푹 빠졌다.
11월29일 저녁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개막식 행사에는 상하이에 머물고 있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참여해 축제를 한층 빛냈다. 주상하이총영사관의 이강국 부총영사를 비롯해 벨라루스공화국의 안드레이 트리브시 영사, 헝가리의 이벤트호르베스 영사 등 각국 영사들은 물론 상하이시각예술학원의 곽대강 부원장, 공건영 교수, 서창 교수 등 학계 유명 인사들이 개막식 영화를 함께 관람하며 그동안 생경했던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관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의 장을 위해 감독들을 초청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캐나다 오타와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독솔로지>로 신인상을 받은 마이클 랭건, 인형애니메이션 마스터 월터 투르니에, 떠오르는 신성 에마뉘엘 바그너 감독을 비롯해 한국의 김민혜/김회선/박인식 감독이 초청됐다. 이들은 ‘내 생애 첫 번째 애니메이션’이라는 주제로 픽실레이션, 스톱모션, 플립북 등 다양한 방식의 애니메이션 제작에 관한 워크숍을 마련, 중국 현지 관객과 호흡을 같이 했다. 물론 다소 급하게 치러진 행사인 만큼 홍보나 관객동원이 국내만큼 원활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다. 그럼에도 내년부터 중국 베이징, 러시아, 타이 등으로 점차 확대해나갈 계획이라는 애니임팩트의 첫걸음으로 소중한 씨앗이 될 시간이었음이 분명하다. 적막한 호수 위에 떨어진 물 한 방울의 힘.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물론 잘 모르는 이들의 가슴속까지 파장을 새기며 퍼져나갈 애니메이션 축제를 기대해본다.
애니 싹틔울 토양은 충분
주상하이한국문화원 김진곤 원장
이번 행사를 주최한 주상하이한국문화원 김진곤 원장은 애니메이션 전문가다. 1995년 문화산업국에서 실무자로 재직하며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담당했던 그는 당시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SICAF)가 탄생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그는 올해 초 주상하이한국문화원장으로 부임하며 한국 문화의 힘을 알릴 수 있는 틈새시장으로 애니메이션이 지닌 잠재력에 다시 한번 주목하며 ‘애니임팩트 차이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애니임팩트 차이나는 어떻게 기획하게 된 건가. =애니임팩트 연합사무국쪽과 상하이시각예술학원이 교류하며 함께 영화제를 기획한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도 함께하고 싶다고 참여를 제안했다. 시각예술학원이 있는 송강 지역은 상하이 외곽이라 상하이 시내에 자리한 문화원이 함께하면 상승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국문화원이 진행 중인 다양한 사업이 있을 텐데 애니메이션영화제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 =남들과 똑같이 하다보면 따라하기 급급해 경쟁력을 잃는다. 우리가 먼저 주도적으로 새로운 물결을 일으켜보자고 판단했다. 기본적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의 제작 수준과 노하우는 세계 수준급이라 생각한다. 애니임팩트를 중심으로 한국 단편애니메이션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면 새로운 한류의 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중국 시장에서 인정받으면 세계로 나가는 것도 가능하다.
-올해는 기대한 만큼 성과가 눈에 띄지 않아 아쉬울 것 같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준비기간이 촉박하기도 했고. 내년부터는 상하이의 상황에 맞춘 현지화도 시도할 예정이니 싹틔울 토양은 충분하다. 상하이 시민들은 영화의 도시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만큼 영상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콘텐츠가 좋은 만큼 홍보만 충분히 이루어지면 얼마든지 저변 확대가 가능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