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있으면서도 상대방 유리잔의 지문 얼룩, 신발 매듭 따위를 마음에 새길 때가 있다. 나중에 되새김질할 정보를 저장하고 분류하는 모양새가 어쩐지 소나 염소를 닮았는데, 반추동물이야 주식을 소화시키는 위장의 구조가 그렇고, 내쪽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별식으로 얻은 기쁨을 길게 반복해서 유지하고 싶은 가난뱅이 성정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볼 때, 특히 ‘쓰레기’(정우)가 등장하면 딱 그 상태가 된다.
‘멋도 맛도 모르는 쓰레기’라 불리는 부산 출신의 남자가 잔머리 굴리지 않는 다정함을 무슨 소파에 리모컨 던지듯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보일 때마다 머릿속에선 만국기가 휘날리고 폭죽이 터진다. 일상생활에선 허점투성이인 천재 의대생이란 상투적 설정도 나사 빠진 일상을 워낙 탄탄하게 다져놓은 덕분에 천재임을 증명할 과업에 치이지 않고도 매력적인 갭을 만들어낸다. 사랑에 눈을 뜬 뒤, 돈이나 가족, 지위 등 이전의 모든 이득과 관계를 포기하는 남자주인공들이 표준어를 쓰며 관념적 사랑을 대리 실현한다면,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는 관계 안에서의 의무나 책임의 무게를 자신의 체중처럼 당연하게 여기는 지방 출신 남자로 다시 현실을 향하는 판타지이기도 하다. 너무 잘 만든 캐릭터다. 머리로 이해하는 쓰레기는 그렇다. 좋아하는 배우나 근사한 캐릭터가 등장할 때, 보통은 다시 반복해서 보게 되면 분명 처음과 같지 않을 감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는데, 이 드라마는 마치 몰래 좋아하는 상대를 마주했을 때처럼 판단이 흐려지고 시선은 화면 구석구석으로 흩어져 뭔가를 채집하게 된다. 드라마 캐릭터에 반한 게 한두번이 아니거늘 어째서일까?
어떤 이야기를 다루는가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텔레비전 드라마의 연기는 대개 대사가 중심이 되어 상황과 감정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몸의 움직임은 대사처럼 약속된 기호가 되고, 불필요한 움직임은 통제된다. 진심 혹은 어떤 감정을 호소하는 데 자주 눈을 깜빡인다면, 불안이나 거짓말이라는 정보가 개입하므로 의도했던 게 아닌 경우 이 장면은 폐기된다. 부자연스러움 없이 극도로 통제된 배우의 신체가 뿜어내는 경이가 있지만, 이는 몇몇 배우들에 한정한 이야기다. 뭐 대단한 질곡이 없는 일상의 평범한 연애를 그리는 드라마에서조차 배우의 대사와 표정, 몸이 너무나 알기 쉬운 정보를 전할 때, 당연히 진짜 일상 연애와의 밀도 차이는 크게 벌어진다.
그리고 <응답하라 1994>, 특히 쓰레기 역의 정우는 이 밀도 차를 현실과 가깝게 줄이는 배우다. 그는 달달 떠는 발, 때때로 축 늘어뜨리거나 여기저기 척척 잘 걸치는 팔등, 의미 이전의 습관처럼 보이게 하는 동작으로 몸을 쓰는 데 능란하며, 사투리와 표준말, 존댓말과 반말을 숨 쉬듯 자연스럽게 오간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대상의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습관적인 동작을 눈에 새기며, 진의를 간파하지 못하는 대신 윤곽의 말단을 좇고, 의미를 부여하고 곱씹다가 다시 미궁에 빠지기를 반복하는데, 극에서 전해야 하는 분명한 상황과 감정 외에도 채집할 거리가 많은 쓰레기는 그야말로 노다지나 마찬가지다. 그때 거기서 왜 뛰었는지, 어째서 멈칫거리는지, 걸어서 다가간 이유가 뭔지 수없이 생각해봐도 답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캐릭터. 제작진이나 연기하는 당사자는 ‘그때는 그래야 한다’는 답을 찾아가며 만들어냈겠지만, 이쪽은 “몰라. 그냥?” 정도로 대충 답하곤 목 근처를 긁는 습관을 상상하는 것으로 족하다. 그것만으로도 올겨울은 훈훈하다.
+α
대사, 그 이상
<파스타> <골든타임> 등을 연출한 권석장 PD는 상황으로 빚어진 일차적인 정보 이상의 감정을 끌어내는 또 다른 연출가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정점의 순간에서 컷할 엔딩 키스 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여 마치 진짜 키스 이후처럼 수줍게 얼굴이 달아오르는 장면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정면을 향해 나란히 앉은 배우의 전신을 편집 없이 한컷으로 담아, 주고받는 대사보다 많은 감정의 흐름을 전한다. 물론 저 두 장면에 등장한 이선균 또한 손끝에서 발끝까지, 몸 전체로 많은 여운을 남기는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