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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FF 37.5] 존재하지 않는 시공간 창조하기
정예찬 사진 최성열 2013-12-13

<열한시> 이민아 미술감독

Filmography

미술감독 <열한시>(2013) <스카우트>(2007) 아트디렉터 <소년은 울지 않는다>(2007)

미술팀 <웰컴 투 동막골>(2005) <태극기 휘날리며>(2004) <라이터를 켜라>(2002) <서프라이즈>(2002)

영화는 태생적으로 시각의 예술이다. 보는 것이 가장 우선시되는 매체다. 활자로 되어 있는 시나리오를 영상화하는 것은 감독의 일이지만 그보다 앞서 감독의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들에 상상력과 기술력을 더해 시각화하는 작업이 바로 미술감독이 맡은 일이다. “풀어서 말하자면 영화를 찍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이민아 미술감독은 자신이 맡은 역할과 함께 쉽게 혼동할 수 있는 호칭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크레딧에 올라가는 미술감독의 정식 명칭은 프로덕션 디자이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를 도와 디자인을 물리적인 피사체로 구현하는 사람을 아트디렉터라고 부르는데 미술감독과는 다른 역할이다.”

그녀는 건축업계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구축하는 데 강한 끌림”을 경험했다. 건축학을 배우고 싶었으나 이과 출신이 아니었기에 무대미술을 전공했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그녀를 이끄는 것일까. 그녀가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뛰어들게 된 계기도 “고정적인 무대미술과 움직이는 이미지의 결합에 대한 새로운 끌림”이었다고 한다. 영화 제작 현장에 뛰어든 그녀는 도제 시스템을 통해 신보경 미술감독(<태극기 휘날리며> <소년은 울지 않는다>) 밑에서 경험을 쌓았고, 동시에 석사 과정으로 프로덕션 디자인을 전공하며 전문성을 쌓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노력한 자에게 기회는 찾아온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에서 함께 작업했던 황기석 촬영감독의 추천으로 김현석 감독을 만나게 되어 <스카우트>를 통해 미술감독으로 데뷔했고 <열한시>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열한시>는 3년 뒤의 미래를 그린 SF영화다.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시도된 적이 없는 타임머신 제작과 더불어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시공간을 창조해야 하는 작품이기에 보통 힘든 작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이번 영화에 많은 공을 들였음을 강조했다. 캐릭터와 서사와 미술이 함께 가는 영화를 꿈꾸기에 인물에 대한 심리분석까지 진행하며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한 상태를 표현한 애셔의 <천국과 지옥>을 키 이미지 삼아 세트와 소품 속에 녹여내기도 했다. 또한 “타임머신이 어떻게 구동되는지, 어떤 공간 안에서 어떤 변화를 거쳐 시간이동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 연구하며 숱한 밤을 지새웠다. 현실적으로 가능할 법한 디자인이어야 했고, 가장 밀도 있는 모양이어야 하며, 해체와 재결합되기에 용이한 구조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탄생한 것이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댄 셰흐트만의 ‘준결정질 이론’을 적용한 타임머신 ‘트로츠키’다. 그렇게 공들인 작품이었으나 “세트장 문을 통과하지 못해 해체 뒤 재조립하느라” 감격할 새도 없었단다.

이민아 미술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스카우트>와 <열한시> 사이 5년간이 비어 있다. 조심스레 물어보니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계속해서 <권법>(감독 박광현)을 준비해왔다”는 소식을 전한다. “현재 제작이 중단된 상태지만 곧 재개될 예정이니 계속해서 기대해주길 바란다.” 그녀가 <권법>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미술 작업이 적극적으로 드러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예산을 삭감하게 되는 경우 대부분 미술 예산을 가장 먼저 깎고 시작한다”며 한국 영화계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녀의 꿈은 한국영화 미술팀들이 “인테리어만 잘해주면 되는 스탭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들이 되는 것”이란다.

시즐(sizzle)작업

이민아 미술감독은 광고영상의 ‘시즐작업’이라는 개념을 영화미술에 적용했다. 시즐은 특정 장면 묘사를 넘어 영화 전반에 걸친 톤과 매너(tone&manner)를 부여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컨셉 디자인북과 구별된다. 사진은 타임머신이 해체되며 블랙홀로 들어가는 상황을 감독에게 설명하기 위해 각종 사진과 영상을 동원해 만든 시즐 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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