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기 때문에, 언제나 좋아하는 드라마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취향에 안 맞아도, 완성도가 떨어져도 일단 열심히 봐야 글을 쓸 수 있다. 그래서 ‘다시보기’ 창을 띄워놓고 중요한 내용이나 떠오르는 단상을 적다 보면 메모장에는 어느새 눈물의 이모티콘이나 외마디 비명이 난무한다.
다만, MBC <오로라 공주>는 그 정도로 극복할 수 있는 드라마가 아니었다. 한동안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는 친구들과 만들어놓은 채팅방에 <오로라 공주>를 중계했다. 심지어 오로라(전소민)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친구들에게, 민폐라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던 건 이 미친 세계를 혼자서 보고 있자니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서른 넘은 남동생이 잠자리에 들면 침대가에 둘러앉아 주기도문과 반야심경을 외는 황마마(오창석)의 누나들에, 푸드 코트에서 혼자 밥 먹는 사람을 둘러싸고 시비 거는 오로라의 올케들에, 야무지고 경우 바른 아가씨로 설정되어 있지만 그냥 고집 세고 눈치 없고 말 안 통하는 성격 같은 오로라까지 이 세계에는 멀쩡한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100만부 판매고를 올린 미남 작가 황마마는 다자이 오사무를 인터뷰에 인용하는 ‘지적인’ 예술가인데 서른두살 여자친구와 헤어지며 “나이가 좀 걸렸나봐”라는 누나들의 평가를 그대로 전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더 충격적인 건 그가 자신은 ‘누나보이’ 아니라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네이트 판의 ‘결혼, 시집, 친정’, ‘개념 상실 사람들’, ‘세상에 이런 일이’ 게시판 사연을 다 모아놓은 것 같은 이 드라마를 어떻게 혼자 보고 삭일 수가 있겠나. <오로라 공주> 중계는 이야기가 뿜어내는 독에 숨 막히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자 정신적 디톡스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황마마와 오로라가 사귀다 헤어지고, 오로라가 자신의 매니저 겸 부잣집 아들인 설설희(서하준)와 사귀고, 절에 들어갔던 황마마가 오로라의 설득으로 돌아와 결혼하고, 시누이들 때문에 황마마와 이혼을 결심한 오로라가 혈액암에 걸린 설설희와 애틋하게 재회하는 동안- 마음을 비웠다.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 속 세계에 캐릭터의 당위성이나 사건의 개연성을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게이와 트랜스젠더의 개념을 마구 뒤섞어 쓰고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건방진 배우와 어리석은 시청자와 경쟁 드라마에 호되게 일침을 가하는 창조주가 만들어낸 세계는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라 정색하고 비평하기도 민망하다. 게다가 극중 갑작스런 미국행과 사망 등으로 열명이 넘는 연기자가 하차하며 ‘배틀 로라’라는 별명을 얻었음에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 중인 <오로라 공주>가 수십회 연장될 거라는 소식은 대한민국 공영방송의 위엄을 보여준다.
그런데 얼마 전, 한 관광명소 인근 카페에 갔다가 그 기이한 인기의 비결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중장년층 주부 모임으로 가득한 가게 안의 테이블마다 아들 자랑, 며느리 험담, 자리에 없는 동창 평가, 각종 생활정보가 두서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 아들이 워낙 일편단심이야”에 “A형이지?”라고 반문하는, 뜬금없지만 당사자들이 몹시 진지하게 나누고 있는 대화는 임성한 작가 드라마의 한 장면을 그대로 가져온 것처럼 기시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나와 친구들이 남의 연애 얘기나 연예계 가십, 돈이나 학벌에 대해 남 눈치 보지 않고 평소보다 좀더 뻔뻔하게 위악적으로 떠들어댈 때의 분위기와도 비슷했다. 그런 면에서 임성한 작가는 우리의 내면 가장 밑바닥에 있는 속물성, 물질과 뒷담화에 대한 욕망의 찌꺼기들을 걸러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라마에 옮겨놓고 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남의 일이기만 한 양 내려다보고 있던 게, 처음으로 부끄러워졌다.
+α
세상 어디에도 없는 침착한 남자 설설희가 전하는 생명의 말씀
“암세포들도 어쨌든 생명이에요. 내가 죽이려고 하면 암세포들도 느낄 것 같아요. 이유가 있어서 생겼을 텐데, 원인이 있겠죠. 이 세상 잘난 사람만 살아가야 하는 거 아니듯이 같이 지내보려고요. 나 살자고 내 잘못으로 생긴 암세포들 죽이는 짓 안 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