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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의 장벽 극복하는 킬러 콘텐츠를 만든다”
송경원 사진 오계옥 2013-11-19

이덕재 tvN 본부장

이덕재 tvN 편성기획국장은 최근 본부장으로 승진을 했다. 개국 7주년을 맞이한 tvN의 조타수 역할을 맡은 지 무려 6년, 그간의 성과를 인정받아 드디어 본격적으로 다음 목표를 향해 도약할 준비를 마쳤다. 예능, 드라마 가릴 것 없이 tvN의 콘텐츠를 도맡아 관리해오던 그에게 그간의 결과물에 대한 정리와 앞으로 tvN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물어봤다.

-축하한다.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의 시청률도 성공적이고 tvN 드라마의 전성기가 오는 것 같다. =아직 한참 멀었다. 이제 겨우 가시적인 성과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듯 기회가 곧 위기이기도 하다. 잘된다 싶을 때가 가장 신중해야 할 시기다.

-케이블 방송 중 이만큼 확실하게 자리잡은 채널도 없지 않나. =어느 정도 안정화된 건 사실이지만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것에 비하자면 여전히 준비 단계다. 국내 시장에 머물 생각은 없다. 국내를 기반으로 아시아 시장을 겨냥 중이다. 편성, 마케팅, 제작팀 모두 그런 마인드다. 방송이 중심이긴 하지만 방송에만 머물 생각은 없다. 양질의 콘텐츠를 꾸준히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는 회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새 개국 7주년이다. 사실 그동안 적지 않은 실패를 경험했을 텐데. =초기에는 실패한 프로그램도 많았다. 채널 XTM에서 팀장을 맡고 있다가 개국 1년 정도 되었을 때 채널 tvN쪽으로 넘어왔는데 그때만 해도 논란을 일으킬 만한 프로그램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실제 사건을 재구성해서 보여주는 <범죄의 재구성>이나 불륜, 외도를 추적 방송하는 <스캔들>처럼 다소 자극적이고 수위가 높은 프로그램들을 앞세워 한창 이름을 알리던 시기였다. 사실 케이블 채널이 지상파와 경쟁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적으로 이런 채널이 있다는 걸 알리는 게 중요했다. 이후 지나친 자극보다는 편안한 휴식과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프로그램들을 차츰 전면에 배치하면서 현재의 tvN스런 이미지를 만들어 나갔다.

-tvN 스러운 이미지를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슬로건이 말해주듯 ‘넘버 원 트렌드 리더’가 되는 게 목표다. 단순히 시청률 높은 한두개의 프로그램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독자적인 영상 콘텐츠를 통해 문화 저변에 영향을 미치는 게 핵심이다. 예를 들어 <막돼먹은 영애씨>는 다큐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고 이를 통해 일상의 친근한 이미지들을 쌓아왔다. 이것이 고스란히 tvN스러움이 된다. 리얼리티 다큐를 기반으로 극적인 요소를 도입한 <음악의 신>이나 팬덤 문화를 재해석해 주류의 이야기 속으로 끌어올린 <응답하라 1997>(이하 <응칠>)도 마찬가지 경우다. 기본적으로 TV라는 올드 미디어를 기반하고 있지만 그건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시도하지 않았던 것들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재미와 공감, 이를 통해 삶의 패턴에까지 변화를 주는 것이 tvN스러운 것이라 생각한다.

<로맨스가 필요해>

-<응답하라> 시리즈는 물론이고 여타 프로그램을 봐도 기존의 장르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제작하는 것 같다. =자유로운 것과 되는 대로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우리가 새로운 소재나 과감한 기획에 거리낌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의 룰과 법칙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다. 누가 계속 위험부담을 안고 도전하고 싶겠는가. 다만 이건 우선순위의 문제다. 지상파가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루 종일 시청자를 붙들어 두는 게 중요하다면 우리는 단 한번이라도 시청자를 이쪽으로 끌어들이는 게 더 중요하다. tvN의 지상과제는 케이블의 장벽을 극복할 수 있는 킬러 콘텐츠를 만드는 거다. 케이블은 기본적으로 시청자들에 대한 도달력이 높지 않다. 지상파 채널을 지나 우리에게까지 도달하는 건 마치 에베레스트산을 넘어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그만한 동기와 보상이 있어야 한다. tvN에서만 볼 수 있는 프로그램들. <응칠> <꽃보다 할배> 등의 프로그램이 그 대답이다.

-tvN 드라마의 경우 반 사전제작에 가깝게 여유를 두고 만들어지는 것도 특징 중 하나다. =지상파보다 준비기간이 긴 건 사실이다. 아무래도 소재를 중심에 놓고 기획된 드라마들이 많다보니 라인업이 지상파보다는 일찍 결정나는 편이다. 지상파야 여러 옵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입장이지만 우리는 새로운 아이템을 일일이 발굴하고 찾아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최대한 사전기획 기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작품 퀄리티도 올리려 애쓰고 있다. 그래도 결국 현장은 바쁘게 돌아간다. 최후의 최후까지 작품을 다듬고 싶은 게 만드는 사람의 마음 아닌가. 세상에 여유 있는 창작이란 건 없는 것 같다. 항상 마지막에 불타오른다. (웃음)

-프로그램 시간 편성도 독특하다. <응사>를 금/토요일에 편성한 건 파격적이라 할 만한데. =편성도 하나의 예술이다. 사소한 요소 하나까지 고려해서 최적의 시간대를 유추해야 한다. 공중파의 편성시간대는 긴 시간 쌓여온 데이터들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쉽게 바꿀 수도 없고 바꿀 이유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후발주자인 만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결국 tvN 시간 편성의 중심에는 시청자가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봐줄 것인가가 늘 핵심이다. <응사>를 과감하게 금/토에 배치한 것도 그게 최근 시청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상 실질적인 주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위험할 수도 있지만 좋은 시간대를 개발할 수도 있다고 여겼다. 물론 맨땅에 헤딩하는 것은 아니다. 나름의 근거가 있어야 하고 준비된 콘텐츠를 갖춰야 한다. <응사>를 믿었기 때문에 한번 부딪쳐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결과가 좋지 않았으면 그저 좋은 시도에 그쳤겠지만 설사 그랬다 할지라도 얻는 것은 있다.

<응답하라 1997>

-현재 tvN 드라마의 브랜드 이미지도 그런 실패 과정을 거쳐서 다듬어진 것인가. =당연하다. 요즘은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하는 것이 힘이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콘텐츠는 있을 수 없다. 요는 익히 보아왔던 요소들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지의 문제, 그리고 그것을 직접 실행해본 경험치의 문제다. 우리는 소재에 대한 의견 개진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기도 하거니와 일단 좋은 아이템이라고 판단되면 파일럿을 만들어본다. 물론 10개 중에 7~8개는 실패한다. 하지만 그 나름의 노하우가 축적되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지상파가 이미 안 해본 게 없는 입장이라면 우리는 여전히 해볼 게 많은 입장이랄까.

-tvN의 내부 분위기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개개인의 뛰어난 역량에 의존하기보다는 집단지성, 이를테면 브레인스토밍에 좀더 집중하는 편이다. 예능은 예능, 드라마면 드라마라는 식의 구분도 별로 없다. 우리는 장르에 관계없이 모두 ‘방송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러다보니 기존 프로그램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장르를 넘나드는 하이브리드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긴 나만 해도 부모님은 충청도 분인데 부산 출생이고 서울에서 살고 있다. 경력도 제작, 기획, 사업 전반까지 두루 경험했고. 사실 요즘 하이브리드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런 차원에서 볼 땐 tvN의 방향이 자연스러운 거라 생각한다.

-<응사> <빠스껫 볼> 등을 보면 tvN 드라마가 실험에서 확장으로, 두 번째 단계에 접어든 게 아닌가 싶다. =이제 킬러 콘텐츠를 중심으로 확장할 수 있는 성과들이 슬슬 보이기 시작하는 단계다. <막돼먹은 영애씨>가 꾸준히 시리즈를 만들어왔고, <푸른 거탑>이나 <응사> 등이 이를 다시 한번 증명했다. 그간 열심히 땅을 일구고 모종을 틔웠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여러 갈래로 뻗어나갈 콘텐츠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스핀오프식으로 확장도 가능할 테고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처럼 포맷 자체를 판매하는 등 방식은 다양하다. 일차적으로는 2015년 정도까지 아시아 시장에서 콘텐츠로서 나름의 포지션을 확보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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