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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의 고민이 시작됐다

드라마 시장에 새롭게 등장한 tvN의 의미

<몬스타>

신촌역에서 연대 근방 하숙집까지 택시(!)를 탄 ‘삼천포’(김성균)가 종로를 지나 서울역의 야경을 스치면서도 택시기사에게 뭐라 항의도 못하던 그 시각. 하숙생을 기다리다 지친 성나정(고아라)의 가족들이 보던 텔레비전에도 홍식(한석규)의 꾐에 넘어가 갓 상경한 춘섭(최민식)의 긴장한 표정이 겹친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는 MBC <서울의 달> 외에도 <마지막 승부> <사랑을 그대 품안에> 등의 드라마가 자주 노출된다. 나정의 엄마(이일화)가 잠시 KBS <한명회>를 언급했지만, 당시의 유행과 정서를 이야기할 때 주로 부름받는 건 MBC 드라마였다. 1991년 SBS의 개국에 MBC는 고 김종학 PD와 송지나 작가 콤비의 <여명의 눈동자>로 맞섰고, 일본 버블경제 시절의 트렌디 드라마를 이식한 <질투>에 이어 신데렐라 드라마의 조상 격인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스타 차인표를 배출하기까지 ‘드라마 왕국’의 아성은 흔들림이 없었다. <응답하라 1994>의 시간선에는 MBC 드라마의 좋았던 시절도 겹치는 셈이다.

패권을 쥐고 있던 MBC 드라마에 95년 <모래시계>로 역습을 가했던 후발주자 SBS의 전략은 tvN의 현재와 매우 유사하다. 개국 초기 SBS는 타 방송사와 동시간대 편성을 피하고 자극적인 소재 경쟁을 주도했으며, 적은 제작비로 효율을 높이는 <오박사네 사람들> <LA 아리랑> 등의 시추에이션 코미디 형식으로 시장의 틈새를 공략했다. tvN 역시 유연한 편성과 지상파 아침드라마 못지않은 선정적인 드라마를 내놓는 한편, <막돼먹은 영애씨> 등 저비용으로 출발한 시즌제 드라마의 가능성을 놓지 않았다. 평범한 30대 직장여성의 인간관계로 현재 시즌12까지 이어온 <막돼먹은 영애씨> 이후, 타깃을 좁히고 공감을 끌어내는 디테일에 주력한 기획은 ‘군디컬 드라마’ <푸른 거탑>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SBS가 80년대의 정서를 공유하는 이들의 열광을 끌어낸 <모래시계>로 판세를 뒤집었듯, tvN은 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이들을 같은 문화를 소비했던(혹은 같은 소비가 문화가 되었던) 기억으로 묶어낸 2012년 드라마 <응답하라 1997>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개국 초기엔 대표가 국감장에 불려갈 정도로 선정성 시비가 끊이질 않았던 채널이 어느덧 사회적 신드롬을 낳는 시리즈를 안착시킨 비결은 무엇일까? 비슷한 시기에 개국해 2008년까지 의욕적으로 자체 제작 드라마를 선보이던 드라맥스의 편성표는 현재 지상파 드라마 재송출로 채워진 형편. 온미디어 계열 채널의 흡수/합병 이후, 사실상 적대자가 없는 CJ E&M이 모기업이란 점도 tvN 드라마가 살아남는 데 이점으로 작용했다. 케이블에서 지상파 수준의 광고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CJ E&M은 시청층을 분리하고 채널을 특화시킨 뒤, 드라마로 결합하는 방식의 기획에도 분주하다. 미리 만들어둔 몇곡을 극의 분위기에 맞춰 반복 사용하는 틀을 뒤집고, 드라마 캐릭터들이 음원을 만들어낸 tvN의 음악드라마 <몬스타>는 CJ E&M 계열인 Mnet과 공동제작한 경우. 오디션 프로그램 <꽃미남 캐스팅 오! 보이>의 우승자를 <꽃미남 라면가게> <닥치고 꽃미남밴드> 등 ‘꽃미남’을 전면에 세운 드라마에 투입하는 기획도 강점인 쇼/오락 프로그램과 드라마가 결합하는 시너지를 노렸다.

신원호 PD처럼 비드라마국 출신 연출가를 영입해 드라마를 제작한 점도 지상파 조직에선 쉽지 않은 시도다. 기획단계에서 작품의 규모에 합당한 제작비를 조율하는 CJ E&M의 시스템 또한 안정적인 제작을 담보한다. 외주 제작사는 일정 시청률을 넘어야만 광고수익으로 제작비를 보전하며 연출가나 작가 또한 시청률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지상파 드라마 환경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고 그만큼 새로운 시도가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이다. 김병수 PD와 송재정 작가의 <인현왕후의 남자>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이나 김병욱 감독의 시트콤 <감자별 2013QR3>가 tvN에서 방영되는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개국 7주년을 맞은 tvN은 KBS에서 CJ E&M으로 자리를 옮긴 곽정환 PD의 시대극 <빠스껫 볼>을 지상파 미니시리즈와 동시간대에 편성하는 강수를 두었다. 지금 궁금한 것은 시청률보다 이들이 어느 수준의 제작역량을 보여줄 것인가다. 지상파에서 내놓을 맞수는 무엇일까? 공채 PD와 작가 공모전 시스템으로 쌓은 인력을 제대로 성장시키고 있는지, 또 외주 제작사와의 관계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은 아닌지 먼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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