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 누드, 자연, 환상, 자유….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에는 그런 것들이 어김없이 담겨 있다. 2003년, 25살 나이에 휘트니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최연소 작가로 유명세를 얻은 그는 청춘의 속살을 가장 적나라하고도 아름답게 담아내는 작가로 꼽힌다. 그는 취미로 파티에서 함께 놀던 친구들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어대다가 사진의 길에 들어섰다고 한다. 10년 사이 모델이나 배우를 더 많이 찍게 되고, 연출에 익숙해지고, 필름이나 디지털카메라를 쓰게 됐지만, 마법과도 같은 생동감을 품은 그의 누드 사진들은 여전하다. 대림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라이언 맥긴리-청춘, 그 찬란한 기록>전을 기념해 서울을 찾은 그가 가장 자주 쓴 단어도 ‘마법’이다. 그가 말한, 마법으로서의 사진술에 관해 여기 옮겨 적는다.
-모델이나 피사체를 선택할 때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나. =예술가들을 가장 선호한다. 내 작품세계를 잘 이해하고, 누드 촬영에도 관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스피릿’을 본다. 자유로운 영혼이야말로 내가 정말로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다. 또 어릴 때 7명이나 되는 10대 형과 누나들 손에 자라며 그들을 영웅시해서인지 그들과 닮은 사람들도 많이 찍는 것 같다.
-젊은 사람들의 누드를 많이 찍는데, 할아버지를 찍은 사진도 눈에 띄더라. 노년을 기록하는 데도 관심이 있나. =실제로 50, 60대의 배우들도 많이 찍는다. 나이는 상관없다. 다만 몇살이든 그 사람의 가장 천진난만한 모습을 담고 싶은 거지. 사람이 장난스럽고 스스로를 너무 의식하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습이 좋다.
-누드를 에로틱하게 찍진 않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에로틱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겐 그렇지 않다. 내가 인간의 몸에 끌리는 건 오히려 해부학적인 관심 때문인 것 같다.
-해부학적인 관심은 어떻게 생겨났나. =어릴 때 <내셔널지오그래픽> 표지에 실린 아프리카 여성의 누드를 보고 굉장히 매혹된 적이 있다. 14살부터 17살 사이에는 누드 드로잉 수업을 다니면서 인간의 몸을 부위별로 자세히 관찰하게 됐고. 뉴욕현대미술관이나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가도 앙리 마티스의 <춤>이나 토머스 에이킨스의 누드화에 특히 매료됐다. 그런 관심사가 누드 사진으로 이어진 것 같다.
-누드 사진이 특히 당신에게 충족감을 주는 이유라면. =카메라를 들면 누구에게든 가서 당신의 누드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볼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카메라라는 마술상자가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할 수 없는 미친 짓을 할 수 있고 잘 몰랐던 사람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거다.
-‘마법’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데, 다른 인터뷰에서 스스로의 작품을 설명할 때 ‘판타지’가 중요하다고 말해왔다. 판타지와 현실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려 하나. =내게 영감을 주는 사진들을 모아놓은 폴더 속에는 전쟁 사진이 많다. 실제로 <뉴욕타임스> 같은 데서 거친 르포르타주 형식의 전쟁 사진을 많이 보는 편이고. 거기서 얻은 영감을 나만의 섬에 새로 옮겨심으려 한다. 마술적 리얼리즘의 영역에서 새롭게 표현해보려 하는 거다. 마술과 현실이 혼재된 사진은 늘 매력적인 것 같다. 보는 사람이 믿고 싶게 만드니까.
-전쟁 사진을 중요한 영감으로 삼는 동시에 낙천주의의 가치를 강조하는 편이다. =어릴 때부터 어두운 일을 너무 많이 경험해서 그런 것 같다. 10대 때 형이 겨우 34살에 에이즈로 죽었다. 삶이란 것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거기다 호모포비아적인 환경 속에서 게이로 살았던 경험도 영향을 미쳤다. 커밍아웃을 하고 나면 모든 삶의 규칙이 변한다. 그전까지 사람들이 내게 가르쳐준 온갖 규칙들은 개나 줘버리란 식이 되지. 아마 그런 감정들이 내 작품세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을 거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당신의 사진들이 당신의 삶을 담아낸 영화처럼 보이길 바란다고 한 적이 있더라. 사진을 연출할 때 영화 찍듯이 하는 편인가. =영화보다는 훨씬 헐겁다. 차라리 1960대에 유행했던 ‘해프닝’에 더 가깝달까. 마음에 드는 랜드스케이프를 고르고, 그 안에 세울 인물을 선택한 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마냥 지켜보는 거다. 나무에 올라가봐, 저 사람이랑 몸싸움을 해봐, 들판을 달려봐, 라고 하면서 예상치 못했던 사고가 일어나길 기다린다. 그러다 사고가 일어나면 그 사고를 계속 반복해보면서 가장 자연스러운 한장의 사진을 건져내는 거다.
-비슷한 작업방식을 지닌 영화감독 테렌스 맬릭을 가장 영향을 받은 영화감독으로 꼽은 적이 있다. =테렌스 맬릭은 사진작가에 가장 가까운 영화감독인 것 같다. 그는 영화 연출의 여러 방식 가운데 가장 헐거운 방식으로 작업한다. 촬영 때는 각본을 따르기보다 기본적인 윤곽만 갖고 들어가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지켜보고 이야기는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따로 만들어 붙이는데, 내 작업 방식도 비슷하다.
-그외에 좋아하는 영화감독이 있다면. =우디 앨런처럼 자기만의 세계를 지닌 감독들을 좋아한다. 그만이 쓸 수 있는 대사와 비슷비슷한 배우들을 가지고 보편적인 주제를 전달하잖나. 웨스 앤더슨도 그런 면에서 좋아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나. =가장 보편적인 작품들이 가장 개인적인 관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작가가 가장 개인적인 주제에 천착해 만들어낸 작품들이 가장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