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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 배려하지 않는 곳을 어루만지다

해외의 영화 관련 협동조합,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성과내고 있나

일본영화제작자협회는 매년 올해의 프로듀서를 선정하는 SARVH상을 시상한다.

2012년 12월1일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 사회 여러 분야에서 협동조합은 물론 협동의 경제와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협동조합기본법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협동조합 설립과 운영이 가능해졌고, 영화 관련 협동조합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고양의 영화나눔협동조합, 서울의 청년공정영화협동조합 모두를 위한 극장에 이어 대전에서는 마을극장 봄 협동조합 등이 설립되어 활동 중이다. 리틀빅픽쳐스도 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다만 기본법이 협동조합이 금융 및 보험업법을 영위할 수 없도록 하고 있어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로는 투자 등을 할 수 없다는 문제와 안정적인 자본금 형성을 위해서는 다양한 출자자 및 투자자와 협동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주식회사를 선택하게 된 중요한 변수가 되었을 것이다. 창작자가 아닌 자본이 주인 행세를 하는 시장에서 제작사들이 함께 힘을 모아 주인이 되려고 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미야코 영화생활협동조합이 대지진 피해를 입은 미야코 지역 아이들을 대상으로 영화를 무료로 상영하고 있다.

일본, 협동조합 영화관이 순회 상영

리틀빅픽쳐스와는 다르지만 협동 방식으로 영화 활동을 하는 사례들이 해외에는 꽤 있다. 한국보다 협동조합의 역사가 긴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면 우선 제협처럼 일본 영화제작사들의 연대조직인 ‘일본영화제작자협회’(이하 일본제협)가 있다. 한국의 제협이 비영리법인인 것과 달리 일본제협은 사업자 협동조합이다. 일본제협의 전신은 ‘일본영화독립영화협의회’였는데,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에서 영화 및 비디오 제작을 하고 있는 직원 100명 이하 또는 자본금 5천만엔 이하의 기업’을 대상으로 1995년 3월 협동조합으로 재출범했다. 2013년 3월까지 조합원은 56개사이고, 현재 일본에서 제작되고 있는 영화 대부분에 조합 회원사가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제작사들의 자조적 단체이니만큼 제작사들을 대표하여 정부기관과의 연계 사업 및 정책 개발을 시행하고 있으며, 사적녹화저작권자협의회의 구성단체로 사적녹화보상금을 분배하는 사업 등도 하고 있다. 이외 주목할 만한 사업으로는 조합 회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제보험인 ‘영화제작 상해보장제도’와 인터넷상 저작권 보호를 위한 ‘신뢰성 확인 단체’ 활동 등이 있다. 그 밖에 현역 프로듀서들이 매년 가장 뛰어난 신인 감독을 선정하는 ‘신도 가네토상’과 올해의 프로듀서를 선정하는 ‘SARVH상’을 시상한다.

사업자 협동조합과 다른 형태의 협동조합도 있다. ‘도쿄배우생활협동조합’(이하 배협)이다. 연예기획사로 분류할 수 있는 이 협동조합은 협동방식으로 연예계의 혁신을 도모하고, 이를 통해 연예계의 문화 향상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1960년 5월 설립된 일본 유일의 배우 생활협동조합이다. 배우와 매니저가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출연사업부를 통해 조합원 배우의 TV, 라디오, 연극 공연 등의 매니지먼트와 저작권 관리사업을 기본적으로 진행한다. 이뿐 아니다. 제작사업부를 통해서는 프로그램 제작과 여러 작품의 캐스팅도 하고 있으며, 공제부를 통해 조합원의 건강 관리는 물론, 경조사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을 보조하는 역할도 한다고 한다. 조합 내 극단 배협을 두고 연극, 뮤지컬 등을 제작하고 공연하는 활동도 하며, 배우 및 성우를 양성하는 교육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영화관 사업을 하는 생활협동조합도 있다. 1996년 설립된 ‘미야코 영화생활협동조합’은 일본 유일의 협동조합 영화관으로 85석과 62석 규모의 영화관 ‘시네마린’을 운영하고 있다. 2013년 현재 조합원은 1만7670명, 미야코시 전체 인구의 30%가 조합원이다. 미야코 영화생협은 협동조합답게 영화관만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본 대지진 이후 100회가 넘는 순회 상영회를 통해 지진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지역 공동체를 위한 활동도 하고 있다.

미국 영화제작자협동조합 마크.

북미, 비영리 영화관 운영

미국도 영화 협동조합의 전통이 길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두개의 주목할 만한 영화인 협동조합이 설립됐다. ‘영화제작자협동조합’(The Film-Maker’ s Cooperative)과 ‘캐니언 시네마’(Canyon Cinema)다. 각각 동부와 서부를 대표하는 이 영화인 협동조합은 독립영화의 제작과 홍보와 배급을 목적으로 한 영화인들의 자조적 단체다. 미국 독립영화인들은 협동조합을 통해 독자적인 영화 제작-배급 구조를 구현했다. 최근 영화 매체의 디지털 전환에 따라 부침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 진짜 독립영화인들의 단체로 역할하고 있다. 영화관을 운영하는 소비자 협동조합이 미국에도 있다. 일리노이주 샴페인 카운티에는 독립/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해온 100년 전통의 아트시어터가 있다. 이 극장은 디지털 전환과 안정적인 운영 등을 위해 추가 투자가 필요했는데, 관객이 직접 소유자가 되는 협동조합 전환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예술극장만이 아니다. 미네소타주 모리스는 인구수가 5천여명밖에 안되는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극장이 있다. ‘모리스 극장 협동조합’이다. 1940년 설립된 모리스 극장은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2010년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시민이 주인인 협동조합 극장이 되면서 영화관은 필요한 투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고, 전환 이전보다 훨씬 더 지역 공동체의 중요한 문화공간이 되었다.

협동조합의 천국 중 하나로 꼽히는 캐나다에도 ‘애틀랜틱 영화제작자 협동조합’(Atlantic Filmmakers’ Cooperative) 등 많은 영화인 협동조합이 활동 중이다. 캐나다의 영화인협동조합은 미국 영화인 협동조합보다 지역 영화인 공동체의 성격이 강하다. 캐나다의 영화인 협동조합은 지역영화 제작은 물론, 재정 지원 및 장비와 시설 임대, 제작 워크숍, 레지던스 프로그램 운영, 영화 상영 등 영화 제작과 교육을 위한 센터로 기능하고 있다. NFB 등 공공지원도 지역영화 협동조합을 통해 보다 친밀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영화관 협동조합도 있다. ‘아카디아 영화관 협동조합’(Acadia Cinema Cooperative)이다. 인구수 4천여명의 작은 도시 울프빌에 있던 오랜 영화관이 2000년 문을 닫은 뒤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지 않는 영화를 보고자 하는 관객이 모여 ‘펀디 영화조합’(Fundy Film Society)을 설립했고, 영화조합의 운영이 성공적이자 이를 기반으로 2002년 12월 영화관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비영리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영화제작자협동조합이 그동안 상영한 영화를 아카이빙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은 지금 여기에 적용해볼 만하다.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조/단역 배우나 영화 스탭들의 경우, ‘배협’ 같은 자조적 조직을 결성해볼 만하다. 영화 향유가 불균형한 우리나라의 현재 환경을 고려하자면 소도시의 영화관 협동조합도 시도해볼 만하며, 상영과 배급에 곤란을 겪고 있는 독립영화인들이라면 같은 곤란을 겪고 있는 이들과 함께 배급 협동조합도 만들어봄직하다.

주로 협동조합을 언급했지만 협동조합 말고도 다른 협동 방식들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카디아 영화관 협동조합’에서 언급된 ‘영화조합’(Film Society)이다. 영화조합은 상업적인 영화관에서 상영하지 않는 영화들을 상영하고 관람하고자 하는 영화인, 관객의 공통된 필요와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인 단체이다. 유럽은 물론, 미국, 캐나다 등 영화조합의 역사가 긴 나라가 많다. ‘영화조합’의 경우 영화관이라는 공간을 가지지 않고서도 설립과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에 ‘영화관 협동조합’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펀디 영화조합처럼 대학을 통해 상영을 진행할 수도 있고, 도서관, 영상미디어센터 등 공공문화기반 시설들, 카페, 클럽 등 민간의 대안문화공간들을 활용할 수도 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공공시설을 활용한 독립/예술영화 상영의 경우 단순히 상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관객의 영화조합이 설립/운영될 수 있도록 함께 지원한다면 보다 큰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