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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의 TVIEW] 천하제일 한식대회

달인들의 걸쭉한 입담이 곁들여진 <한식대첩>

올리브TV <한식대첩>.

보기 전에는 지레짐작하지 말아야 한다고 늘 생각하지만, 솔직히 제목만 듣고는 ‘흥’이라 생각했다. 올리브TV의 <한식대첩> 말이다. <마스터 셰프 코리아>로 재미 좀 보더니 한식을 주제로 한 서바이벌 요리 대결이라, 너무 뻔하지 않나. 지난 몇년간 ‘한식 세계화’라는 명분으로 벌어진 세금 낭비 뉴스가 연일 들려오던 터라 괜한 선입견도 생겼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마자 전국 팔도, 10개 지역 대표로 출전한 참가자들에게 허를 찔렸다. 대부분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연자들이 그길로 들어서기 위한 기회를 잡기 위해 신청한 아마추어들인데 반해 이미 수십년 동안 요리 경력을 갈고닦아온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상금이나 데뷔가 아니라 자신의 요리가 최고라는 인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충대충 해도 손맛이 있으니까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경북 잉어찜 명인이나 “아마 모르긴 해도 나가 일등은 따놓은 당상일 것이요”라는 전북 맛집 주인의 자랑도 얄밉다기보다는 충분히 가질 만한 자부심으로 보인다는 게 <한식대첩>의 재미다.

게다가 지역 대표들은 향토 요리가 특기인 만큼 자기 지역 특산물과 자신들의 요리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다른 지역이나 팀을 종종 ‘디스’한다. 궁중음식 전문가인 서울팀이 마장동 시장에서 갓 잡은 쇠골을 구해와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모으자 경북 아주머니들이 시샘어린 얼굴로 “다음에 우린 돼지불알 갖고 와야겠다”며 말을 보태고, 전남팀이 60cm짜리 민어를 준비해 칭찬을 받자 옥돔을 준비한 제주 다금바리 명인이 “제주도에서는 민어를 고기로 치질 않는다”며 은근히 견제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기싸움조차 흥미로운 것은 결국 어떻게 보이느냐보다 어떤 맛을 내느냐에 승부를 거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의 투박한 입담 덕분이다. 개미(‘깊은 맛’이라는 뜻의 전라도 방언)니 촐레(‘반찬’이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니 하는 지역 사투리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래서 성질 급한 남편과 애교 있는 아내가 함께하는 전북팀이나, 패기 넘치는 젊은이와 노련한 맛집 주인이 만난 충남팀, 소리 없이 깊은 내공을 보여주는 전남팀, 항상 느긋한 고수와 당당한 체구의 전직 해녀가 손잡은 제주팀, 그리고 다른 팀이 칭찬받을 때마다 고춧가루 뿌리는 소리를 끊임없이 쏘아대는 경북팀 등 개성 강한 열개팀이 나름의 맛을 낸다는 면에서 <한식대첩>은 기대보다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자신의 실력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조마조마한 얼굴로 심사위원의 선택을 기다리다가 합격 통지를 받으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광경은 역시 경연대회를 보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50년까지 한길을 걸어왔음에도 여전히 새롭게 기뻐하고 감격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왠지 덩달아 기뻐진다.

<한식대첩>에 정말 필요한 음식은 뭐?

고된 경연을 마친 뒤 참가자들이 떨어진 당을 보충할 만한 간식. 한 시간 내내 긴장하느라 에너지를 남김없이 써버린 나머지 데스 매치에서는 얼굴이 흙빛이 되어 서 있을 기운조차 없어진 이순환씨는 수란을 만들어본 적 없는 아내를 대신 내보냈고, 결국 전북팀은 탈락했다. 서바이벌에서는 체력도 실력이라지만 팔팔한 이십대도 아닌 어르신들이 다수인 만큼 맛밤이라도 좀 드셔가면서 하실 수 있게 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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