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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인호야! 세상이 너무 거칠었구나…
이장호(영화감독) 2013-10-15

이장호 감독이 그리는 ‘내 친구 최인호’

<별들의 고향>

“껄껄껄.” “허허허.” 중년 이후의 최인호의 웃음소리와 잘 어울리는 의성어다. “호호호.” 예나 지금이나 최인호의 아내 황정숙 여사의 웃음소리.

“하하.” 배창호의 웃음은 이렇다. “에~헤헤헤.” 안성기의 애매한 웃음소리. “히히힛.” 만년 소년 김수철의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 “씩.” 쪼개는 건 이명세의 썩은 미소다.

“낄낄낄.” 젊었을 때, 최인호는 이렇게 웃으며 200자 원고지를 메웠다. 대화를 많이 집어넣으면 원고지 칸을 끝까지 사용하지 않아도 원고료를 쉽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9월25일 고인이 된 최인호와 영별의 조문이 있었던 강남성모병원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다녀갔다. 서울고등학교 동창들, 특히 16회 동기들, 그리고 문인들, 영화인들 등등 평소에 그를 좋아하고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모두 왔다가 돌아갔다.

유독 김수철, 안성기, 배창호, 이명세가 첫날부터 마지막 미사까지 4일을 계속 영결식장을 지켰다. 평소 최인호를 좋아하기보다 집착했다고 해야 할까? 숭배했다고 해야 할까? 마지막 최인호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이 그렇게 길게 남은 사람들이다. 모두 영화와 관계되는 친구들이어서, 호불호가 분명한 생존의 최인호의 면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최인호와 나는 광화문에 자리한 서울 덕수초등학교, 서울중학교, 서울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오랜 친구다. 최인호는 어린 시절 평동에서 자랐고 나는 북아현동에서 자랐다. 그리고 광화문에서 초등학교, 그리고 신문로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신촌에서 대학교를 다녔다. 그러니까 우리의 청소년 시절의 문화적 토양은 서울의 서쪽이다. 인호는 가난했던 청년 시절까지 북아현동에서 자리를 잡았고 처음 자기 이름으로 된 집을 산 것이 신촌 연희동에 있었던 새마을 시립아파트였다. 그는 70년대 말 원고료를 모아모아, 단행본 인세를 아끼고 모아 강남의 신사동에 처음으로 집을 지었다. 시인이며 건축가였던 고교 선배가 설계를 한 아담한 이층집은 아주 멋졌다. 그 이후 최인호의 삶은 가난했던 서민에서 귀족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때부터 스승이신 조병화 선생처럼 파이프담배에 취미를 붙였고 좋은 앰프와 스피커를 마련하여 클래식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얼마 뒤엔 골프에 빠져들었다. 그래도 초창기 그의 집은 밤늦게까지 친구들이, 또 후배들이 술을 마시고 그대로 쓰러져 잠을 자는 과도기를 거쳐야 했다. 최인호가 싫어해도 전혀 개의치 않은 사람들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그의 가난한 신혼 시절, 어느 목욕탕의 2층에 월세로 방을 얻어 살림을 꾸린 신혼부부를 술에 취해 찾아갔다. 출입문을 통해서 들어간 것이 아니라 건물 밖 빗물받이 물통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간 뒤 창문을 두들겨 그의 잠을 깨우고 들어갔다. 그런 걸 모두 꾹 참고 지낸 최인호다. 시인 고은 선생이 쓴 <이중섭 평전>을 보면 가슴 아픈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하고 있다. 이중섭 화백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다. 밤이면 술에 취한 친구들이 위문이랍시고 몰려들었다. 좁은 입원실에 가득 모인 이들은 빈손으로 와선 입원실에 있는 것들을 먹고 마시며 잠까지 자고 가곤 했다. 이중섭 화백은 화를 참고 자기의 침대를 이들에게 내주고 자기는 보호자 간이침대에 누워서 밤을 지냈다고 한다. 이 일화를 읽으며 나는 이중섭 화백과 최인호가 똑 닮았다고 생각했다.

이런 것들 때문에 최인호가 투병생활을 하면서 친구 만나기를 기피했던 것이 아닌가? 나는 가책을 느낀다. 그의 문단 신인 습작 시절에 그가 책상 가까이 두어 무척 아꼈던 사진이 있다.

투명한 유리병 안에 흙을 넣어 개미의 굴을 관찰하는 선병질의 창백한 백인 소년의 사진이었는데, 인호는 그게 자기의 내면과 닮았다고 했다, 내가 모르는 그의 유년시절의 어떤 정신적 풍경과 닮았을 거라고 나름 짐작했다. 그런 그에게 세상은 너무 추악하고 거칠었던 것은 아닌가? 그는 무척이나 겁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과잉반응 혹은 과도한 적응으로 세상을 살았고, 그것이 그를 ‘낄낄낄’ 웃게 만들었고, 조숙하게 만들었고, 또 장년이 되어서는 ‘껄껄껄’, ‘허허’ 하고 웃으며 조로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 희귀하다는 침샘암도 그래서 생겼는지 모른다. 천재 인호야! 널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동안 그렇게 농담만 했었구나. 속 깊은 얘기 한번 못하고. 그래 천국에서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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