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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의 TVIEW] 징한 우정 같은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2, 여전히 영애를 지켜보는 이유는

tvN <막돼먹은 영애씨>.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잠깐 머물렀다 가는 친구 같다. 아무리 함께 울고 웃고 내 마음 같다며 감정이입해도 미니시리즈는 두달에서 석달, 일일극도 길어야 일년 남짓이면 막을 내리고 주인공들은 각자 연애니 결혼이니 제 갈 길을 가거나 아주 가끔은 이승을 떠나기도 한다. 그래서 KBS <그들이 사는 세상>의 주준영(송혜교)은 지오 선배(현빈)와 드라마를 만들며 질긴 연애를 이어가고 있을 테고,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장혜성(이보영)도 박수하(이종석)와 함께 모처럼의 행복을 누리고 있겠지만 종영과 함께 우리의 인연은 끝난 셈이니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무려 7년 동안 직원 수 열명 남짓, 바람 앞의 촛불처럼 아슬아슬한 회사에 다니면서 야근 때문에 광속으로 늙어온 동병상련의 아픔을 함께해준 친구가 있으니 바로 tvN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2의 이영애(김현숙)다. 출근 첫날 구두 굽이 부러지거나 바삐 서류 봉투를 안고 달리다가 때마침 등장한 회장님 아들 본부장님과 부딪히는 행운을 잘도 안는 신데렐라들과 달리 자력갱생을 모토로 소처럼 일하고 성추행범 및 욕쟁이 고등학생들에 과감히 맞서 싸우던 영애씨는 어느새 서른여섯이 되었다. 영애가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긴 하지만 나보다 먼저 결혼하면 배신감 느낄 것 같다던 동지들의 애정 어린 저주 때문인지 혼수 문제로 결혼이 깨져 애인과 헤어졌고,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던 직장 ‘아름다운 사람들’의 ‘대머리 독수리’ 사장(유형관)이 회사를 정리하고 귀농하는 바람에 실직까지 했다. 심지어 친하게 지내던 동생 예빈(강예빈)이 피 같은 돈 3천만원을 빌려가 잠적함으로써 돈, 애인, 직장이 모두 없는 3無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이쯤 되면 영애가 독하게 다이어트한 뒤 눈 밑에 점찍고 돌아와 피의 복수극을 펼치더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을 잃은 영애가 새 직장 ‘낙원 인쇄사’에 취직하면서 시작된 새 시즌은 최근의 몇 시즌보다도 더 활기 넘치고 재미있다. 물론 영애에겐 미안한 얘기다. 12년차 디자이너지만 화장실 청소에 텃밭 관리, 사장 어머니 제사 음식 장만까지 온갖 잡일에 노동력을 착취당하면서도 월급 203만원 받기가 빡빡한 영애의 현실은 흔히 ‘가족 같은 회사’라고 하면 ‘가’ 자를 떼야 뜻이 통한다는 씁쓸한 농담을 떠올리게 할 정도다. 틈만 나면 회사 돈 슬쩍 해서 유흥비로 쓰고 여자 쫓아다니느라 어머니 기일도 잊을 만큼 철딱서니 없고 이기적인 사장(이승준)과 궁상맞고 치사스러우면서 깐깐하기까지 한 과장(라미란) 콤비는 이 시리즈가 꾸준히 발굴해온 진상 캐릭터 중에서도 특히 주옥같은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막돼먹은 행각 사이사이 워킹맘의 고단함과 3년을 꼬박 모은 쌈짓돈조차 시부모에게 부친 뒤 쇼윈도의 마네킹만 바라보다 돌아서는 하우스푸어 며느리의 서글픔을 비추며 삶의 이면을 생각하게 만드는 이 드라마는 먹고사는 것의 어려움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꾸준히 놓치지 않고 7년을 온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실은 매일 투닥거리고 서로 치부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화해하고 모르는 척 함께 밥을 먹는, 떨어질 수 없어 징글징글한 ‘가족’ 같은 회사 생활은 <막돼먹은 영애씨>의 가장 강력한 판타지인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판타지가 끝나지 않기를 자꾸 바라게 된다. 나는 아직 그 자리에 있는 줄 알았는데 삶이 나를 어딘가로 옮겨놓았을 때, 그래서 익숙한 것들과 작별하고 새로운 것들에 적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날들이 계속되는 한 영애 같은 친구를 떠나보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거부할 수 없는 너의 마력은 이승준!

구준표가 재벌가 아닌 소기업 후계자로 태어났으면 이랬을까. 평소엔 철없고 미운 소리만 골라 하고 툭하면 회사 그만두라며 성질내지만 은근히 정 많고 천진한 매력이 있다. 가까이 하면 고생길이 훤히 보이는 남자임에도 그 유치한 농담과 경박한 웃음에 점점 끌리는 걸 보니… 사랑은 차가운 유혹 그래도 피할 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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