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 감독이 <58년 개띠 노총각감독 서울 위드 러브>라는 정체를 짐작하기 어려운 제목의 영화를 찍는다고 연락을 해왔다. <세계영화기행> 등 다수의 TV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독립프로덕션 인디컴미디어의 대표인 그는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지면서 10년 전 뇌출혈로 쓰러졌다. 몸 한쪽이 마비돼 지팡이 없이는 걷는 것도 불편한 몸. 가난하고 몸 불편한 노총각 감독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했고, 8월15일 크랭크인 현장에 <씨네21>을 불렀다. 영화의 정체도 궁금했고, 그간의 김태영 감독 얘기도 궁금했다. 슬프지만 그래도 희망찬 이야기를 전한다.
인디컴미디어 수상 경력
1993 <베트남 전쟁, 그 후 17년> 제29회 백상예술대상 TV비극부문상, 제20회 한국방송대상 외주제작부문상 1994 <카리브해의 고도, 쿠바> 제21회 한국방송대상 외주제작부문상 1995 <세계영화기행> 제23회 한국방송대상 외주제작부문상 1998 <생명시대1> 98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 비디오 부문 우수작품상 2000 <생명시대2> 2000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 비디오 부문 대상& 감독상 2001 <어머니와 아들> 제6회 베를린 국제 민속영화제 특별상 수상 2002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제39회 대종상영화제 4개 부문 수상, 제23회 청룡영화제 시각효과상 2006 <아버지의 나라> 2006 독립제작사협회 대상 2010 <천사의 아침> 2010 대한민국 신화창조 스토리 공모대전 우수상 2011 <샹그릴라의 여자 우체부> 제5회 BCM 다큐 사전제작지원상 수상 2012 <바비> 제42회 지포니영화제 그리폰어워드
딜쿠샤 201호. 트로트 가수가 꿈인 억순이가 <고장난 벽시계>를 부르고 있다.
“누추하지만, 희망의 궁전입니다.” 딜쿠샤 2층 ‘뽕짝 아줌마’ 억순이의 방에 들어서자 김태영 감독이 신난 아이의 표정을 하고서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8월15일.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 위치한 붉은 벽돌의 2층 양옥집 딜쿠샤에서 김태영 감독은 10년 만의 재기를 꿈꾸며 영화 <58년 개띠 노총각감독 서울 위드 러브>(이하 <58년 개띠>)의 첫 촬영을 시작했다. 공간이 주는 기운이 묘했다. 발을 뗄 때마다 삐걱 소리를 내는 마룻바닥은 90년 된 이 집의 역사를 그대로 웅변하고 있었다. 3.1 독립선언서를 태어난 지 하루 된 아들의 요람 밑에 숨겨 세계에 알린 UPI 통신사 기자 앨버트 테일러 부부가 지었던 딜쿠샤. 지금은 그곳에 억순이를 비롯한 15가구가 살고 있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혼합된 <58년 개띠>에 억순이는 희망을 상징하는 현실의 인물로 영화의 처음과 끝에 등장할 예정이다. 트로트 가수가 꿈인 억순이는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가사도우미로 일한다. 그렇게 번 돈으로 이른바 ‘고속도로 휴게소 앨범’을 제작했지만 제작비 1천만원이 무색하게 앨범은 찾는 이가 없어 반품 처리됐다. 캐스팅을 위해 억순이를 만난 김태영 감독은 “그거 사기 아니에요?”라고 물었다. 억순이는 이렇게 답했다. “그게 제 꿈인 걸요. 트로트 앨범 내고, 공중파에서 절 한번 불러주는 게.” 이날 억순이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노래 <고장난 벽시계>에 맞춰 여러번 빙그르르 춤을 추었다. 억순이의 콧잔등엔 땀이 맺혔다. 힌디어로 희망의 궁전, 이 상향, 행복한 마음을 뜻한다는 딜쿠샤. 억순이와 딜쿠샤의 기운을 듬뿍 받기 위해 김태영 감독은 이곳에서 크랭크인을 한 게 아니었을까.
김태영 감독 뒤편으로 보이는 붉은색 벽돌 건물이 90년 역사를 지닌 딜쿠샤다.
반전의 리턴매치를 향해
딜쿠샤에서 촬영을 마친 10여명의 스탭들은 근처 교회 주차장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도시락을 거의 비워갈 때쯤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식사 시간 종료를 알리고 다음 촬영을 재촉하는 지나가는 비. 서울 성곽길에서 나풀거리는 치마를 입은 ‘박카스녀’가 노총각 김 감독을 유혹하는 장면을 찍은 뒤 스탭들은 다시 경복궁으로 향했다. 휴일이라 경복궁은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궁에서의 촬영은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고 촬영 진행비도 따로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김태영 감독은 촬영비를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이날 꼼수를 부려 몰래 촬영을 시도했다. 두명의 촬영감독과 김태영 감독만 경복궁으로 입장했다.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 만큼 김태영 감독은 <58년 개띠>에서 연출과 출연을 겸한다. 영화 주인공인 노총각 김 감독으로 변신한 김태영 감독은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관광객 틈에 섞여 근정전으로 뻗은 길을 묵묵히 걸었다. “장애인 연기만 자연스럽지 다른 건 어려워요.” 뙤약볕 아래서 그는 ‘왕의 길’을 세번 왕복했다. 걸음은 느렸다. 그 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나중에 물었다. “내가 전생에 왕은 아니었을까, 상상했죠.”
서울에서 나고 자란 김태영 감독은 시간이 날 때면 자주 고궁을 찾는다. 몽상가 기질이 다분한 그는 경복궁, 창덕궁을 산책하며 조선의 왕들과 왕비들을 수시로 대면한다. 이번엔 아예 고종과 명성황후를 영화로 불러들였다.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와 <로마 위드 러브>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김태영 감독은 <58년 개띠>에서 과거로 훌쩍 시간여행을 감행한다. 고종, 명성황후, 순정효황후, 덕혜옹주 그리고 이상과 금홍이 <58년 개띠>에서 노총각 김 감독과 만난다.
<58년 개띠>는 하나의 장르로 규정할 수도 없고, 이야기를 한줄로 요약하기도 어려운 영화다. 굳이 정리하자면, 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황에 놓인 노총각 영화감독이 서울을 배경으로 상상 연애를 하고, 꿈을 꾸며 살아가는 이웃들을 만나면서 다시 의지를 다진다는 이야기다. 형식적으로는 다큐와 픽션, 현실과 판타지의 결합을 시도한다. 호기심과 모험심이 충만한 김태영 감독은 이 영화를 “몽상가의 짬뽕 프로젝트”라고도 했다. “평생 한번밖에 없는 기회인데, 망할 때 망하더라도 기왕이면 다 해보고 망하자(웃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항상 이렇게 최초로 하는 게 문제라니까.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영화가 될 뻔했던 <미스터 레이디>를 제작하다 평생 장애인으로 살게 됐잖아요. 이번엔 제대로 반전의 리턴매치를 해봐야죠.”
“절뚝거리는 걸 강조해주세요.”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오던 김태영 감독이 쵤영감독에게 주문했던 말.
영화라는 이름의 생존 확인
“뇌출혈로 쓰러지고 10년 된 지금이 최악이에요. 진짜 최악!” 서울 마포구 용강동에 위치한 인디컴미디어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는 도중 김태영 감독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웃으며 발신 자 이름이 뜬 휴대폰 바탕화면을 보여주었다. ‘**텔레콤 미납센터.’ 지금의 사무실을 10년 동안 유지해온 것도 기적이라면 기적이다. 한때는 <베트남 전쟁, 그 후 17년> <카리브해의 고도, 쿠바> <세계영화기행> <아시아영화기행> 등 웰메이드 TV다큐멘터리 제작사로 유명했던 인디컴미디어였지만, 지금은 사무실 보증금 까먹은 지 오래요, 월세도 부득이 미뤄 낼 때가 다반사다. 어디 사무실만 그런가.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아파트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그는 월세로 얻은 아파트에서 현재 3명의 남자와 동거 중이다. 한명은 별거 중인 기러기 아빠이고 두명은 이혼남이다. “이건 추태집합소나 마찬가지예요. (웃음) 빨리 각자 재기를 해서 헤어져야 할 텐데.” 경제적 무능력자로 낙인찍혀 사람들에게 온갖 멸시를 받았던 일 등 김태영 감독은 숨기고픈 자신의 일상을 <58년 개띠>에 고스란히 노출한다. <괴물>과 <26년>을 제작한 영화사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는 <58년 개띠>의 시나리오를 보고 “더 뻔뻔해져야 한다”고 조언을 했단다. “어차피 (장애와 가난을) 드러낸 거 마케팅으로라도 활용하게 나보고 뻔뻔해지래. 그런데 장애인이 구걸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난 너무 싫어요.”
김태영 감독은 오른쪽 팔다리를 못 쓰는 3급 장애인이다. 서울예대 영화과 후배인 고 조명남 감독과 트랜스젠더가 된 종갓집 장손을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영화 <미스터 레이디>를 준비하다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그렇게 됐다. 김태영 감독은 <2009 로스트 메모리즈>를 제작하기 전 조명남 감독과 구두로 <미스터 레이디> 제작을 약속한 상태였다. 소재도 장르도 너무 앞서간 탓에 주위에선 영화제작을 극구 만류했지만 김태영 감독은 약속을 지 키고 싶었다. 하지만 촬영이 반 이상 진행된 상태에서 결국 영화제작은 무산됐다. 출근길에 뇌출혈로 쓰러지고 3일 뒤 병원에서 깨어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6개월 뒤엔 낫겠지” 싶었단다. 지금처럼 무리없이 상대와 대화할 수 있게 된 것도 불과 3, 4년밖에 되지 않았다. “솔직한 얘기로, 장애인인 거 너무 싫어요.”
그럼에도 김태영 감독은 퇴원하고 얼마 되지 않아 “불편한 몸을 질질 끌고 사무실에 나와” 영화며, 방송이며 다시 제작에 착수했다. “내겐 일 외엔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일에 빠져서 노는 게 진짜 즐거워요. 그 즐거움이 지금까지 나를 끌고 온 힘이 아니었나 싶어요.” 물론 돈 안되는 다큐멘터리 말고 돈 되는 상업영화를 제작해보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2007년엔 조명남 감독과 함께 <대도 성학수>라는 영화를 준비했지만 그러던 중 조명남 감독이 암 선고를 받았다. 영화 역시 최종 계약 단계에서 무산됐다. 이후 <위대한 개츠비>라는 영화를 준비했지만 투자사 한곳이 발을 빼면서 꿈은 좌절됐다. 지인들에게 “5만원만 빌려줘” 하고 다녔던 게 그즈음이었다.
김태영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남들은 쉽게 누리는 걸 쉽게 누리며 살지 못했다. 그에겐 외로움을 함께 나눌 여자도 없고 가족도 없다. “엄마가 5명이었는지 6명이었는지 몰라요. 어릴 때 어머니가 아버지와 이혼하면서 제 유랑생활은 시작됐어요. ” 그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음악다방에서 DJ로 활동하다 방송국에서 FD로 일하며 16mm영화를 만들고 서울예대 방송연예과와 영화과에서 공부를 마치고 인디컴미디어라는 독립프로덕션을 세웠다. “경제적으로 고통스러웠지만 16mm 독립영화를 만든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의 자기 확인이요, 방송이나 예술은 성적순이 아니란 것의 증명 작업이었고, 학력에 대한 반항이었다.” 책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에 김태영 감독이 직접 쓴 글이다. 이장호 감독의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와 함께 제38회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됐던 <칸트씨의 발표회>(1987)나, 광주민주화운동 진압군 병사의 양심선언을 다룬 <황무지>(정부의 단속에 의해 상영되지 못했다)는 김태영이라는 존재를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인간을 바로 보는 것.” 김태영 감독은 이것이 다큐멘터리를 하게 된 최초의 동기였다고 한다.
“꿈꾸는 데 나이가 어딨냐”
세상에 눈뜨게 해준 것이 다큐멘터리였다면, 김태영 감독의 외로움을 달래준 오랜 친구는 단연코 영화다. “영화는 꿈의 엔터테인먼트인 것 같아요. 영화를 보는 그 두 시간만큼은 진짜 행복하니까.” <58년 개띠>에서 노총각 김 감독과 후배 감독은 이 런 얘기를 나눈다. “맨날 꿈만 꿔서 어떡해요. 우리 꿈꿀 나이 지났어요.” “꿈꾸는 데 나이가 어딨냐.” 김태영 감독은 영화를 보며, 영화를 만들며 영화(榮華)를 꿈꾼다. 현재의 꿈은 “계속해서 꿈꿀 수 있게 <58년 개띠>가 성공”하는 거다. 더 소박하게는 무사히 “영화를 완성”시키는 거다. 목표로 한 제작비 1억원을 아직 다 모으지 못했다. 김태영 감독의 지인과 최용배 대표가 1천만원씩 투자한 상태다. 스탭들은 대부분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하고 있고, CG, 믹싱 등 후반작업도 후배들의 도움을 받기로 약속받았다. 9월2일부터는 크라우드펀드 사이트 ‘굿펀딩’(goodfunding.net)을 통해 제작비 모금을 시작했다. 총 30회차 일정으로 10월 말까지 촬영을 무사히 마치면, 영화는 내년쯤 극장에 걸릴 수 있을 것이다. “급하게 찍지 않고 천천히, 철저하게 촬영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영화가 잘 만들어지면 로카르노영화제에 출품할 욕심도 있고요.”
epilogue
인디컴미디어 사무실을 방문했던 날 김태영 감독은 돌아서는 기자의 손에 한아름 책을 안겼다. <황무지>의 시나리오와 <칸트씨의 발표회> 팸플릿과 김태영 감독이 쓰거나 제작한 책들이었다. 그 뒤로도 김태영 감독은 기사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들(인디컴미디어에 관한 신문기사 스크랩이나 자신의 다큐 이력을 정리한 글들)을 수시로 보내주었다. 사무실에 빈손으로 들른 게 못내 미안해 “다음번엔 제가 밥 한번 사겠습니다” 했더니 손님의 지갑을 열게 하는 건 주인된 도리가 아니라고도 했다. 김태영 감독은 자신을 찾아주고 기억해준 사람에게는 어떻게든 고마움을 표하고 마는 사람이었다. “<58년 개띠>가 잘되면…”이라는 가정법이 현실이 돼 그의 빚진 인생이 빛 든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58년 개띠 노총각감독 서울 위드 러브> 배우 & 캐릭터
길용우(고종) 대한제국의 황제이자 비밀조직 ‘제국익문사’의 수장인 고종 역은 김태영 감독과 서울예대 선후배 사이인 길용우가 연기한다. 이번 영화에선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한 왕”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라고. “김태영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항상 좋아했다. 김 감독이 오랜 고통의 시간을 벗어나서 새로 일을 시작한다는 얘기를 듣고 뭐라도 도와주고 싶어 참여하게 됐다.”
진혜경(명성황후/와글녀) 진혜경은 고종의 사랑을 기다리는 비련의 명성황후와 와글밥집 사장인 와글녀, 1인2역을 맡았다. “영화 속 명성황후는 김태영 감독님이 생각하는 모든 로망의 집합체이다.” 시나리오 초고엔 명성황후와 김 감독과의 뽀뽀 신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명성황후의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진혜경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단다.
박창희(순정효왕후) 순종효왕후는 고종의 며느리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후다. “옥쇄를 치마폭에 숨겨 나라를 지키려 한 온화하고 강단있는 왕후다. 그 모습에 김 감독이 반한다. 순종효왕후는 김 감독을 ‘낭군~, 낭군~’ 하고 부른다.” 참고로 박창희는 네일아티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유럽에서 선정한 올해의 네일아티스트상을 수상할 만큼 대단한 실력자라고.
한초원(덕혜옹주) 고종의 막내딸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는 초등학교 5학년인 한초원이 연기한다.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됐다. 김태영 감독은 한초원이 사무실로 들어오는 순간 ‘아, 덕혜옹주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첫 영화인 만큼 한초원은 덕혜옹주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역사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단다.
조찬형(이상) 천재시인이자 제비다방 사장인 이상. 영화에선 진지한 모습보다 엉뚱한 모습이 강조될 것 같다고 한다. “상대 배역이 달샤벳의 아영이다. 여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게 이번이 처음인데, 아영이가 워낙 사랑스럽다보니 이상 역시 사랑스러워보여야 하지 않나 싶다.”
아영(금홍) 이상의 애인인 금홍은 달샤벳의 아영이 연기한다. “금홍은 이상의 여성관에 큰 영향을 끼친, 평양 최고 기생이다. 영화에선 이상에게 굴비를 사달라고 조르는 귀여운 인물로 등장한다.” 최근 아영은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 영화 <노브레싱> 등에 출연하면서 연기의 재미를 만끽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