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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인터뷰 거부선언했던 김기덕을 만나다 (1)
2002-02-14

“가학적이라고? 난 처음부터 종교적이었다”

… 당한 女子의 반복되는 臨終, 병을 돌보던

청춘이 그때마다 나를 흔들어 깨워도 가난한

몸은 고결하였고 그래서 죽은 체 했다

(중략)

욕이 나왔다 누이의 연애는 아름다워도 될까

파리가 잉잉거리는 하숙집의 아침에

(이성복, ‘정든 유곽에서’)

어찌됐건 영화감독 김기덕을 만났다. 나는 침묵을 서약한 그에게 마음놓고 시비를 걸었고(<씨네21> 335호), 그런데 갑자기 앞으로 아무와도 인터뷰하지 않겠다는 그가 질문에 대답을 하겠다고 알려왔다. 갑자기 나는 당황하였다. 왜냐하면 그와의 만남은 좀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내 멋대로 시간을 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그의 홈페이지를 뒤지는 일이었고(거기에는 김기덕 감독에 대한 나의 평에 대한 악평도 실려 있다), 그 다음에는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내가 찾아낸 인터뷰는 21개였고, <나쁜 남자>에 대한 평을 37편 읽었다. 그러고 난 다음 영화애호가들 사이에서 쓰인 지지자들과 반대진영의 글 184편을 프린트했다. 그걸 우선 무작정 읽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김기덕(의 영화들)에 관한 글들은 그를 옹호하건 아니면 그 반대로 비난하건 항상 비유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는 동물로 불렸으며, 괴물 취급을 당하고 있었고, 정신병에 걸린 환자처럼 대우받았다. 그러니까 김기덕(의 영화들)을 말하기 위해서 갑자기 의학이 동원되었다. 여기에 성-권력의 담론이 그를 설명하려고 하였다. 그를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자꾸만 지지하면서도 무언가 그가 잘 잡히지 않는다는 의심을 항상 말미에 붙여놓았다.

(문학 평을 쓰는) 정과리씨가 보기에는 김기덕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 소란 속에서 정작 텍스트에 대해 지키는 침묵이 의아하게 보였다(<씨네21> 336호). 그건 이유가 있다. 미안하게도 김기덕(의 영화들)은 형식(-구조)주의 비평으로는 붙들리지 않았다. 그는 거의 본능적일 정도로 우리 시대의 문화적인 담론들을 닥치는 대로 건드렸다. 그러나 놀라울 만큼 아슬아슬한 순간에 도식을 빠져나갔으며, 그는 숭고함과 저속함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그는 영화의 약속을 대부분 지키지 않았거나, 아니면 자기 방식대로 지켰다. 이 말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김기덕의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김기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김기덕이 우리 시대에 소중한 까닭은 그가 누구보다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사드에 대해서 푸코가 한 말. 우리는 괴물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같은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기준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권력의 편으로부터 우리를 저항의 입장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우리가 바꾸어야 하는 것은 사회의 모순이지, 그 모순 속에서 태어난 예술작품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목표를 바꿔쳐서는 안 된다. 말하자면 나는 지금 김기덕을 방어하거나, 또는 그저 그를 이해하자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김기덕을 빌려 무엇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지를 물어보면서 그 안에서 좀더 근본적인 것과 싸워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이 대화는 시작이다. ▶ 정성일, 인터뷰 거부선언했던 김기덕을 만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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