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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소를 향한 카우보이의 권총

웨스턴을 만드는 늙은 투우사 버드 뵈티커 Budd Boetticher

<7인의 무법자>의 존 웨인, 랜돌프 스콧, 버드 뵈티커(왼쪽부터).

버드 뵈티커는 투우사다. 청년 시절인 1930년대에 멕시코에 갔다가 투우에 흠뻑 빠졌다. 원래 그는 운동에 만능이었고, 대학 때만 해도 미식축구 선수로 평생을 살 포부를 가졌다. 그 희망은 부상 때문에 포기했는데, 다리 부상을 크게 입은 뒤, 멕시코에 휴양차 여행을 갔다가 투우를 보고 반해버렸다. 뵈티커의 표현에 따르면 “너무나 위험하고, 너무나 중세적”이었기 때문이다. 혈기왕성한 그는 당장 투우를 배웠다. 소개를 받아 당대 최고의 멕시코 투우사였던 카를로스 아루사로부터 직접 배웠다. 1939년 프로 투우사로 멕시코시티에서 데뷔했는데, 첫 시합에서 가슴에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 경험으로 뵈티커는 투우 관련 영화로는 고전으로 평가받는 루벤 마물리언의 <혈과 사>(1941)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영화계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주인공인 타이론 파워에게 투우하는 법을 가르쳤다. 적극적인 성격의 그는 컨설턴트로 연출부에 들어갔는데, 어느새 식사 준비는 물론 엑스트라들 관리까지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연출부 막내 역할을 했다.

그는 소위 B급 범죄영화를 만들며 감독 데뷔했는데, 그가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던 꿈은 자신만의 투우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희망은 1951년 <투우사의 숙녀>를 통해 실현된다. 반(半)자전적인 이 영화는 투우사가 되고 싶은 청년의 시행착오를 다루고 있다. <혈과 사>가 투우를 모티브로 한 멜로드라마라면, <투우사와 숙녀>는 멜로드라마를 내세운 투우 관련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였다. 스토리보다 투우의 아름다움을 기록하려는 열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투자받기 어려운 투우영화에 대한 열정은 잠시 뒤로 미루고, 뵈티커는 드디어 한곳에 매진할 수 있는 다른 대상을 만났는데, 그건 바로 웨스턴이었다. 발단은 <하이 눈>(1952)에 대한 인상이었다. 매카시즘이 한창일 때, 미국사회의 모순을 비유한 드라마들, 특히 필름 누아르들은 점점 투자를 받지 못했고, 결국 영화인들은 웨스턴을 만들며 간접적으로 사회비판을 시도했다. 그 포문이 <하이 눈>인데, 뵈티커는 여기서 영감을 받아 <7인의 무법자>(Seven Men from Now, 1956)를 시작으로 랜돌프 스콧 주연의 웨스턴을 연속으로 만들며 자신의 사회적 발언을 시도했다.

1950년대 웨스턴에서, 뵈티커는 여러 면에서 앤서니 만과 비교된다. 만의 심리적 서부극은 ‘햄릿의 서부극’인데, 그렇다면 뵈티커는 ‘투우사의 서부극’이라고 부를 수 있다. 젊은 시절 배운 투우의 문화가 웨스턴으로 이식된 것이다. 그래서 뵈티커의 서부극엔 마치 의례를 치르듯 양식화된 우아한 동작이 있고, 남자다움의 예의가 있고, 피할 수 없는 폭력의 잔인함과 이를 끝장내는 클라이맥스가 있다.

예순이 다 된 랜돌프 스콧이 웨스턴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뵈티커의 자발적인 ‘변두리 심리’를 잘 드러내는 것이다. 말하자면 세상을 오래 살아 어딘가 집착하는 게 없을 것 같은 스콧의 이미지는 바로 뵈티커 웨스턴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 나이에도 스콧은 여전히 혼자 살고, 서부를 떠도는데, 이런 데카당스한 분위기가 바로 미국사회에 대한 뵈티커의 발언인 것이다. <뷰캐넌 라이즈 얼론>(Buchanan Rides Alone, 1958)에서처럼 권력을 독점한 집단에 억울하게 희생되는 멕시코 젊은이를 보고,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은 싸움에 개입하고,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또는 <라이드 론섬>(Ride Lonesome, 1959)에서처럼 역시 ‘어쩔 수 없이’ 바운티 킬러(현상금을 노리는 총잡이)가 되지만, 남자다움의 위엄을 잃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렇지만 더 나은 세상이 열릴 것이란 희망 같은 건, 그 어디에도 없다. 언제나처럼 늙은 주인공은 ‘혼자’ 남아, 여전히 서부를 떠돌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뵈티커는 우리 삶의 숙명으로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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