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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로코의 변주 어디까지 갈까

<주군의 태양>으로 건재함을 과시한 홍자매표 로코

SBS 드라마 <주군의 태양>.

“방금 되게 세게 찌릿했는데!” “아니요.” “되게 세게 그죠?” “아니요!” 처음 본 남자의 서류에 손가락을 뻗다가 탁 쳐내는 손과 접촉한 느낌을 눈치없이 떠드는 여자. SBS 드라마 <주군의 태양>의 태공실(공효진)과 주중원(소지섭)의 첫 만남은 이렇게 민망했다. 많은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의 눈치없음은 순수함의 발현인 양 일종의 덕목처럼 사용되어왔다. 남자의 세속적인 조건은 뒤늦게 깨달아야 하고, 작은 조직에서 트러블을 일으키는 왕따나 희생양이 되어 그가 그녀를 위로할 빌미를 제공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 공실은 첫 만남부터 서류를 엿보며 “여기(대형 복합쇼핑몰 ‘킹덤’) 사장님이신가봐요?”라고 대번에 찌른다. 그녀가 청소용역으로 취직한 쇼핑몰 사람들도 어딘가 이상한 공실을 핍박하지 않는다. 오히려 머리채를 잡아끌어내는 과격한 쪽은 주중원이다.

시도 때도 없이 접촉을 시도하고, 나사 빠진 사람처럼 ‘이힛’ 하고 웃거나 미간을 찌푸리고 징징대는 여자. 냄새나는 머리로 “당신 같은 사람 처음이에요. 당신은 나한테 특별해요” 등등 사랑의 각성과 고백의 순간에나 어울릴 대사를 늘어놓는 그녀의 주책은 매력의 장터에서 좌판을 걷어차는 꼴에 가깝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 공실의 행동은 기본 탑재된 성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죽음의 경계에서 목숨을 건진 이후, 그녀는 귀신을 본다. 흉측한 꼴로 아무 때나 달라붙어 막무가내로 졸라대는 귀신을 상대하느라, 공실은 수면 부족과 노이로제로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는 상태다. 본래 재주 많고 사교적인 성품이었던 매력적인 아가씨는 귀신을 보게 된 뒤, 밤새 보채는 갓난쟁이를 돌보다 진이 빠진 여자처럼 눈가에 다크서클을 드리운 채 사회에서 고립되었다.

중원과 접촉하면 귀신이 사라지는 ‘효과’를 본 공실은 살자고 매달리고, 중원은 공실의 말과 행동을 ‘로맨틱코미디의 법칙’에 따라 해석한다. 남자의 일터에 취직하는 ‘공식’을 따르긴 해도 어딘가 조금씩 핀트가 어긋나는 ‘신선한 들이댐’이라고 착각한다. 로맨틱코미디의 틀 안에 있으면서 규칙을 변주하고 의심하는 홍정은/홍미란 자매 작가의 장기는 <주군의 태양>에서도 여전하다. 공실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중원의 고모는 “기억해두겠어”라고 어디서 많이 들어왔던 대사를 던지는데, 이후에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모종의 사건으로 같이 밤을 보낸 이튿날 아침에도 해사한 얼굴이어야 하는 여주인공의 규칙도 여기선 말이 된다. 늘 퀭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중원 효과로 개운하게 잠을 자고 난 공실의 얼굴은 마치 CF처럼 맑게 반짝였다.

중원을 통해 숨 쉴 구멍을 얻은 공실은, 마치 사랑에 빠진 것 같은 달콤한 표정으로 잊고 지냈던 수치심을 깨달았다며 기뻐한다. 이 연애, 여기가 재미있다. 사랑으로 고립되는 나와 당신뿐인 세상의 정반대.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고립을 끊고 타인을 마주하는 감각을 되찾아간다. 중원은 공실이 귀신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으로 해결나지 않는 ‘산 사람의 세상’을 말하며 공실의 현실감각을 일깨우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던 중원은 ‘못 본 척할 수 없는’ 공실을 통해 시야를 넓힌다. 중원도 어린 시절 납치사건으로 난독증을 겪고 있었지만, 성실한 비서 덕분에 그의 ‘킹덤’에서 주군으로 군림하는 것엔 별 문제가 없었다. 공실과 중원이 귀신 사건을 통해 주고받는 영향은 남자의 트라우마를 여성이 구원하며 서로의 가치를 교환하는 식과 유사하나, 그 결과가 개인적인 극복이나 가족 단위로 수렴하던 것과 비교하면 좀더 확산되었다. <주군의 태양>이 흔한 소재, 익숙한 패턴을 어떻게, 어디까지 끌고 가는지 지켜보자.

+ α

이것이 ‘로코믹 호러’?

빈대 붙는다고 따돌림당하던 소녀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귀신이 된 에피소드의 마무리로 사람 없는 자판기에서 친구들이 좋아하던 음료수가 떨어지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귀신이 하나씩 나눠주는 대목까지 가버리니 아악! 비명이 터진다. 안락사 당한 군견 이야기도 그랬다. 원더걸스의 <노 바디>를 들으며 군견을 훈련시키던 군인은 탈영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자신을 지켜주려는 군견의 귀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수한다. 그런데 호송차에 타기 전, 그가 숨어 있던 가구회사 건물에서 흥겨운 <노 바디>가 터져나와 또다시 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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