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효 감독과 함께 위안부 그림책 작가 권윤덕의 스토리를 쫓아온 시간만 4년. 그 시간이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킨 것 같냐는 질문에 안보영 PD는 “잠깐 생각해봐야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망설였다. 그러고도 끝내 드라마틱한 변곡점들을 찍어 보여주기보다 “작가님이 12권의 더미본을 수정했듯 우리도 12편 이상의 편집본을 고치고 또 고쳤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그 지난한 과정 끝에 <그리고 싶은 것>의 개봉까지 성사시킨 그녀의 표정에는 호들갑스러운 데가 전혀 없었다. 개봉 당일인 8월15일 <그리고 싶은 것>이 종일 상영되고 있는 인디스페이스 앞에서 그녀를 만나 그녀가 권효 감독과 비로소 그려낸 것과 앞으로 그녀가 독립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서 그려내고 싶은 것에 대해 물었다.
-광복절 개봉은 애초 계획했던 건가. =빤하지만 최적이라 판단했다. 365일 유효한 이슈라는 건 없으니까.
-올해도 아침부터 인터넷이 야스쿠니 참배 신사 문제로 시끄럽더라. =올해는 오히려 조용한 편이지 않나. 뜯어보면 상황은 악화되고 있는데, 누구 하나 뾰족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긴 하지만, 또 우리 영화가 악감정을 건드려서 소란을 일으키고 분노를 극대화하려는 영화는 아니라서….
-권효 감독과는 어떤 계기로 만났나. =2010년 1월 영상원 방송영상과 전문사에 들어갔을 때 조교였다. 감독님도 자기가 남성이다 보니 민감한 사안의 여러 층위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여성 프로듀서를 찾았던 것 같다.
-전체적인 틀에서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었나. =사람들이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다시 고민하게 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그래서 고발이나 기록을 위한 다큐멘터리가 아닌 잘 직조된 한편의 이야기로 전달하려 했다. 이야기에는 끝까지 듣게 하는 힘이 있잖나. 관객이 권 작가님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하면 우리 영화는 끝이라고 생각했다.
-권윤덕 작가의 개인사를 밝히는 장면은 멈칫하게 되더라. 만드는 입장에서는 어땠나. =권 작가님이 위안부 그림책을 그리겠다고 한 건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고민과 판단이기 때문에 그 사실을 우회하고서는 이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단, 그 부분을 보통 뉴스에서 다루는 방식처럼 호들갑스럽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이 영화가 작가님한테 상처가 되면 안되니까. 그 인터뷰도 위치도 너무 뒤로 가면 서스펜스를 위한 것처럼 보일 것 같아 중간에 배치했다.
-두 사람이 충돌할 때는 없었나. =얼마 전에도 자막 최종 검수를 하면서 쉼표를 넣냐 마냐로 엄청 싸웠다. 그런 사소한 것 외에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감독님은 다르게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웃음)
-권윤덕 작가는 덕분에 고통을 덜었다고 했는데, 달리 말하면 두 사람이 그 고통을 나누어 짊어진 셈 아닌가. =작가님이 고통을 덜었다고 그 고통이 우리에게 바로 전가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동일한 상처를 갖고 있지 않으니까. 셀프카메라를 심리치료에 많이 활용하잖나. 작가님께 그런 과정이 돼드린 게 아닐까.
-일본 개봉도 추진하나. =지난해 12월19일에 투표하고 바로 일본 가서 동심사 분들에게 먼저 보여드렸는데 반응이 좋았다. 우연한 기회에 일본쪽 프로듀서와도 인연이 닿아 ‘자주 상영’을 추진 중이다. 정식 개봉은 힘들겠지만.
-다음 프로젝트도 권효 감독과 함께할 예정인지. =감독님에게 다른 프로듀서랑도 해보라고 밀어내기를 하고 있다. (웃음)
-본인의 차기 프로젝트는 뭔가. =얼마 전에 후반작업을 마무리한 <거미의 땅>(감독 김동령, 박경태)이 야마가타다큐영화제를 간다. EBS국제다큐영화제에 피칭해서 제작지원받은 <소꿉놀이>의 후반작업과 배급도 진행할 예정이다. 당분간은 시네마달의 상황 때문에 배급 일을 많이 맡을 것 같다.
-독립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서 어떤 길을 가고 싶나. =어느 작품을 하든 그 감독, 그 현장, 그 이슈, 그 사람들에 맞게 프로덕션을 잘 꾸리고 싶은 것이 작은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