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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의 영웅, 그의 단점까지 전부

애시튼 커처가 스티브 잡스를 열정적으로 연기해내기까지

평범한 로맨틱코미디나 그보다 좀 못한 액션 장르물에 자주 등장하며 대단한 연기파 배우들의 계보와도 거리가 있는 애시튼 커처가 스티브 잡스의 파란만장한 젊은 모험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전기영화 <잡스>의 주인공으로 정해졌을 때 그가 정말 이 입지전적인 인물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을지에 내기를 거는 사람들이 있었을 법도 하다. 결론. 커처가 갑자기 위대한 연기를 펼치진 못한다. 하지만 보론. 그는 누가 보아도 대단한 열정을 쏟아내고 있으며 혼신의 힘으로 잡스가 되고자 한다. 연상의 전 부인(데미 무어)과 엄청난 액수의 재산 분할을 놓고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는 영화 바깥의 얼룩진 그의 모습이란 여기 없다. 오로지 <잡스>의 잡스가 되기 위해 스스로에게 강력한 최면을 걸고 있는 배우 커처가 있을 뿐이다.

그 이상으로 움직이기, 그의 모든 것을 공부하기

아직은 트위터가 모든 이들의 것이 되기 이전, 커처는 이른바 최초의 트위터 스타에 속했다. 그는 트위터를 누구보다도 먼저 받아들였고 그 가능성을 믿었으며 그것으로서 자기의 사회적 위치를 설정했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2009년에 있었던 <CNN>과의 한판 대결이었다. ‘<CNN>과 나 둘 중 누가 먼저 100만 팔로워를 모을지 승부를 벌이자’며 그는 거대 미디어를 도발했다. 대결의 승자는 그였다. “거대 미디어가 하는 것만큼이나 어떤 한 사람도 많은 사람들에게 방송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그 이벤트의 목적이었다.

그가 쇼에만 능했던 건 아니다. 커처의 또 다른 직업은 사업가인데 그것도 아주 유능한 사업가다. 그는 2000년에 디지털 미디어, 텔레비전, 영화 등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회사 ‘카탈리스트’를 공동 창업했고 2011년에는 벤처 투자 회사인 ‘A-Grade’를 공동 창업했다. 커처는 2010년 미국 잡지 <타임>이 뽑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위’ 안에 들었고 각종 경제지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기업을 선정할 때마다 그와 그의 기업은 늘 명단에 올랐다.

잡스의 몸에 흘렀던 기술적 진화에 대한 직감과 애정과 관심 그리고 야심적 사업가로서의 피가 커처에게도 흐르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니 잡스가 커처의 평생의 영웅이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으며 수년간 애플의 주식을 갖고 있었던 건 당연한 일이다. 잡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자신에게 닥친 기분에 관하여 커처는 이렇게 회상한다. “아주 기묘한 감정적 반응을 느꼈는데 그 실체는 잘 몰랐다. ‘나는 그의 죽음에 왜 이렇게 충격을 받은 걸까?’ 그러자 나는 이 사람에게 영향받은 내 인생의 모든 점들에 관하여 생각해보기 시작했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무엇이라도 그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잡스는 내게 토머스 에디슨이나 헨리 포드와 같은 천재였다. 그는 정말이지 형식과 기능을 함께 녹인, 아름답고도 실용적인 생산물을 만들어낼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 두 분야를 다 해낸 사람은 <모나리자>라는 그림을 그리며 비행 장치도 함께 만들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정도랄까.”

평생의 영웅을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자 커처는 일단 외양적으로 완벽해지는 게 필요했다. 이 부분에는 그다지 반론의 여지가 없다. 원래부터 닮은 눈매에 그럴듯한 몸의 패턴까지 입혀지자 영화 속 커처는 영락없이 잡스처럼 보인다. 커처가 특히 신경 쓴 것은 잡스의 걷는 방식과 말하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어깨를 약간 구부리고 앞으로 쏟아질 듯이 몸을 기울이는 동시에 무릎은 제자리걸음을 하듯이 허공에서 휘적거리는 그 특유의 걸음걸이 그리고 프레젠테이션 때마다 청중의 귀를 사로잡은 잡스만의 말투를 커처는 거의 상징적일 정도로 강조한다.

잡스의 생각과 체질과 취향을 섭렵하는 것도 빠지지 않았다. 생전에 잡스가 남긴 방대한 연설과 인터뷰를 찾아 읽은 건 물론이며 그가 일생을 살며 경험한 몇몇을 커처도 경험해보기로 한 것이다. 가령 그가 먹었던 것들 먹기. 당근 주스, 포도, 팝콘. 그가 읽은 책들 읽기. 요가와 힐링에 관한 책들. 그가 좋아했던 음악 듣기. 밥 딜런. 그가 존경한 사람들 공부하기. 에디슨. 에드윈 랜드. 그가 좋아한 예술사조나 예술가 이해하기. 바우하우스. 장 미셸 폴롱, 안셀 애덤스. 그리고 그가 알고 지내고 함께 일했던 사람들 만나기 등.

단점을 감추지 않는다

커처가 잡스가 된다는 건 심지어 생전의 잡스가 남긴 그의 단점까지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잡스는 인간적인 결함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영화에서도 그 점은 도드라진다. 영화 속 한 장면. 애플이 성공을 거두고 주가를 올리던 그 때, 잡스는 회사의 수익을 나눠주는 과정에서 현재 공헌도가 적다는 이유로 과거에 창립을 도운 친구들을 모두 배제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커처의 답변이 무척 인상적이다. “이 영화에서 궁극적으로 나의 목적은 내가 존경했던 누군가에게 경외를 바치는 것이다. 경외를 바치는 가장 좋은 방식은 그의 재능과 단점 모두에 대해서 정직해지는 것이다.” 커처는 이렇게도 말한다. “나는 그 장면에서 잡스의 위치를 정당화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잡스가 그들에게 보상하는 게 옳다고 본다. 하지만 누가 우리의 성공에 여전히 핵심적인가. 이 어려운 질문은 마치 풋볼팀을 관리하는 것과 비슷하다. 예전에 공헌한 선수라고 해도 지금 그렇지 않으면 그를 붙잡을 수만은 없는 거다.” 커처는 잡스의 단점에 정직해지는 것을 넘어 아예 그 단점을 단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마치 잡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최신의 것들에 늘 호의적인 사람답게 커처는 <잡스>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최근에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지식 검색 사이트인 쿼라(QUORA)를 통해 공표한 적이 있다. 그중 인상 깊은 말이 있다. “그냥 살았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시대정신에 관여하며 살아 있는 누군가를 묘사할 기회란 일생에 단 한번뿐인 도전”이라는 것이다. 실은 그런 게 잡스의 정신으로 알려진 것들이기도 하다. 잡스의 어록 중 하나. “최고의 부자가 되어 무덤에 묻히는 건 내게 중요하지 않다. ‘오늘도 무언가 멋진 걸 해냈구나’ 하고 말하며 밤에 잠자리에 드는 것. 그게 바로 내게 중요한 것이다.” 성공이냐 실패냐는 결론과 무관하게 커처도 뭔가 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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