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외과 레지던트 면접을 보기 위해 기차에 탄 박시온(주원)이 건너편 좌석의 어린 소년을 바라본다. 소년은 엄마가 까준 계란을 입속에 넣었다 뺐다 재롱을 부리던 참이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면접 가는 의사와 눈을 마주쳤으니 얘야 큰일났구나! 너는 곧 계란을 먹다 기도가 막혀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하필 기도 확보도 어려워서 목이나 흉곽에 볼펜대가 꽂히게 될지도 몰라. 그게 공식이니까!’ 하지만 아이의 엄마는 다정하게 사이다를 챙겨주고, 아이는 눈이 마주친 시온에게 다가가 계란 한알을 내민다. 그렇다면? 사고는 역 대합실의 광고판 낙하가 불러왔다.
병원 밖에 있는 주인공 의사 근처에서 ‘때마침’ 전공에 맞춤인 질병이나 사고를 당하는 일반인이 누굴까 짐작하는 건 별스런 일도 아니다. 어린 시절 자폐를 앓았고 폭력적인 아버지의 욕설과 발길질을 보고 자란 시온의 시선이 다정한 모자에게 향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다만, 메디컬드라마에 중독된 나 같은 시청자는 노인이 떡 접시 근처에만 가도 불안하다. 케이스별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미드에선 ‘아, 저 사람이 이번 회의 환자가 되겠구나’ 싶은 떡밥을 던지고 이내 뒤통수를 치는 작은 추리게임을 벌이기도 한다. 일본 만화를 각색한 MBC <닥터 진>의 초반부엔 조선시대로 타임슬립한 신경외과의 진혁(송승헌)이 가는 곳마다 기다렸다는 듯 뇌질환을 앓는 환자가 나타났다. ‘저이는 전공 환자만 골라 끌어들이는 힘이 있나?’ 싶던 차에 장터를 걸어가던 진혁 앞에 불쑥 나타난 지게꾼이 구토와 설사를 하며 발치에 쓰러지더라. 콜레라였다.
메디컬드라마의 환자 발생 공식을 즐기는 가벼운 시청도 괜찮지만, KBS <굿닥터>는 대상 환자가 어린아이라 더 마음을 쓰게 된다. 그런데 병원 밖의 응급상황이 단지 사명감 투철한 천재 의사의 솜씨를 뽐내는 자리이기만 할까? <굿닥터> 1회. 광고판 낙하로 아이가 유리파편에 다치자, 의사로 추정되는 중년의 남자가 ‘다행히 경동맥은 피한 것 같다’며 신속하게 목 부근 경정맥 출혈 부위를 압박 지혈하던 참이었다. 이때 시온이 나서며 말한다. “안됩니다. 소아의 경우 그렇게 세게 압박하면 기도가 눌립니다. 그리고 좀더 위를 압박해야 합니다.”
보통 사람인 내게, 모나미 볼펜 등을 이용한 시온의 드라마틱한 노천수술보다 중요한 건 이 부분이었다. 응급상황의 대처법과 사례, 적용의 예외들이 단지 보는 것만으로 손에 척척 익을 리 없으나, 적어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나 주의해야 할 것들을 아는 만큼 공포를 이기고 돕겠다는 의지를 굳힐 수 있으니까. MBC <골든타임>의 최인혁(이성민) 선생이 중국집 배달부의 교통사고 현장을 둘러싼 사람들을 향해 “여기 누가 좀 잡고 계시겠어요”라고 외치고, 피가 흥건한 광경에 겁을 먹어 주춤거리는 이를 안정시키며 손을 빌리고 구조현장으로 끌어들이는 장면도 비슷한 맥락이다.
자폐에서 비롯한 ‘서번트 신드롬’을 겪고 있는 시온이 ‘제너럴 서전’이라 불릴 정도로 모든 변수와 가능성을 예측해야 하는 소아외과의로 검증받는 드라마. <굿닥터>에 기대하는 것도 예외적인 천재의 활약보다 소박한 종류다. 드라마 초반, ‘사회성이 다소 부족한’ 그가 레지던트 생활을 시작한 종합병원의 의사들은 그를 일에서 배제시키고, 눈치 없음을 윽박지른다. 사회성이 상호적인 거라면, 시온이 환자나 보호자를 상대로 한 ‘의사의 윤리’와 집단의 규칙을 받아들이는 동안 이쪽도 그의 표현과 감정반응을 익히고 알아가야 하는 역할이 주어진다. 막연한 공포나 불신을 극복하고 손을 빌리거나 빌려주는 관계가 되려면 알아야 하니까. <굿닥터>는 그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α
천재의 장난감?
‘서번트 신드롬’은 주로 자폐를 가진 사람 중 특정 분야에서 재능을 보이는 경우를 말한다. 사회성이나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지는 핸디캡을 가진 시온의 경우, 암기력과 다각적 공간 지각력이 월등해서 인체내부의 구조 파악이나 의학책의 페이지를 눈앞에 그려내곤 한다. 2005년 SBS 드라마 <봄날>에도 핸디캡을 가진 의사가 있었다. 고은섭(조인성)은 피에 대한 공포를 지닌 의사다. 형을 사랑하고, 어린아이 같고, 장난감을 좋아하고, 루빅스 큐브를 맞추는 것은 비슷한데, 시온은 이보다 한수 위. 무려 12면 큐브를 단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