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에 어떤 사람으로 태어나면 좋겠다는 상상을 종종 한다. 세계 4대 쓸데없는 고민임을 알면서도 좀처럼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 어려운 게 있다면 수지 닮은 외모로 태어날까, 설리 닮은 외모로 태어날까 하는 거고, 또 하나의 고민은 만화 잘 그리는 사람으로 태어날까, 춤 잘 추는 사람으로 태어날까 하는 거다. 사실 예쁜 외모로 주목받고 싶다거나 내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싶은 마음과 달리 춤을 잘 추고 싶다는 건 굳이 남에게 보여주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행복할 것 같은, 오롯이 자기만족을 위한 바람이기도 하다. 내 몸이 내 의지대로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멋진 동작을 만들어내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일까. 유치원에서 나비춤을 배울 때도 선생님에게 왜 그렇게 움직임이 뻣뻣하냐는 타박을 들었고, 초등학생 때 ‘앞으로 가!’라는 구령에 오른발과 오른팔이, 왼발과 왼팔이 한꺼번에 나가서 반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을 만큼 태생적 몸치에게 춤이란 영원한 미지의 영역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춤에 대해 잘 모르지만 막연한 동경을 품고 살아온 몸치 시청자는 요즘 Mnet <댄싱 9>을 보며 대리만족하고 있다. 한마디로 ‘<슈퍼스타 K>의 댄스 버전’이라 할 만한 이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재즈, 현대무용, 스트립 댄스, K-POP 댄스, 댄스스포츠 등 다양한 장르의 마스터들이 두팀으로 나뉘어 수많은 도전자를 심사하고 아홉명의 정예 멤버를 선발해 생방송 무대에서 승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슈퍼스타 K>가 그랬듯 예선에서는 참가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나 독특한 캐릭터를 부각시킨 편집이 눈길을 끄는데, 비슷한 패턴이어도 눈을 뗄 수 없는 건 역시 주인공들마다 각기 다른 간절함과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뽀얀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남아 있는 10대 댄스스포츠 커플은 또래의 실력자 커플에 대해 “열번 만나면 (우리가) 열번 져요”라고 씩씩하게 털어놓으면서도 기죽지 않고, <쿵푸팬더>의 주인공 같은 몸집의 부동산 중개업자는 섹시한 걸그룹 안무와 치명적인 표정 연기를 선보인다.
자신도 춤을 추는 사람이기 때문에 좋은 댄서를 발견하면 열광하고 눈을 빛내며 자기 팀으로 데려오려고 눈치작전을 펼치는 마스터들의 캐릭터도 <댄싱 9>의 흥미로운 볼거리다. 엄격한 심사위원 박지우는 자신과 장기가 비슷한 남성 참가자에게 “누가 힙을 더 잘 터는지 한번 대결해보자”고 할 만큼 적극적이고 자신만만하지만, 그의 누나이자 상대 팀 마스터인 박지은 앞에선 “집에서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는 남동생”일 뿐이다. 팝핀제이에서 소녀시대의 유리와 효연까지 분야와 취향이 다른 이들이 솔직하게 던지는 심사평은 춤이 팔과 다리의 움직임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동작이 화려하지 않더라도 감정을 증폭시키고 무대를 채워나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무엇보다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즐기고, 굵은 목과 큰 발처럼 춤을 추며 발달한 인간의 신체가 갖는 아름다움에 열렬한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의 에너지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래서 레벨 업 테스트용 안무에 대한 마스터들의 설명을 듣다 문득 일어나 턴을 해봤다. 역시나 참담한 수준의 꿈틀댐에 불과했지만, 다음 생엔 꼭 멋진 댄서로 태어나겠다는 바람은 더 확고해졌다.
+α
<댄싱 9>과 쓸데없는 고민, 누구의 파트너가 될 것인가.
➊ 열네살 연상의 김분선과 아델의 <롤링 인 더 딥>에 맞춰 드라마틱하고 격정적인 무대를 펼친 열아홉 미소년 김홍인, 나이 차도 비슷하니 딱 좋지 않을까.
➋ 순정만화 속 무용수처럼 늘씬한 팔다리와 사슴 같은 미모를 지닌 한선천과 함께라면 레이디 가가의 <배드 로맨스>에 맞춰 섹시한 뱀파이어를 연기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