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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남자들의 간증

현역 제대자가 본 <진짜 사나이>의 매력

남자도 운다. 이 단순한 진리를 우리는 얼마나 오래 숨겨(!)왔던가? 매주 일요일, MBC에서 방송하는 <진짜 사나이>는 남자의 눈물과 역사에 관한 장대한 간증이다. ‘나는 나는 진짜 사나이. 군대 갔다 온 진짜 사나이. 군대 안 가면 그냥 사나이. 그래서 우리는 진짜 사나이.’

기선 제압부터 세다. 군대를 갔다 와야 진짜 사나이란다. 그러곤 곧 ‘왜’라는 질문에 리얼리티로 대답한다. 호주에서 온 ‘싸나이’ 샘 해밍턴이 물에 빠지고, 선착순에서 낙오될 때, 우린 웃음을 터트린다. 그러곤 곧 ‘고작 저 정도도 못하나?’ 하는 우월감에 빠져든다. 그러나 그 자만심도 오래가진 못한다. 그래가지고 가족을 지켜내겠냐는 조교의 질문에 잔뜩 주눅이 든 그의 표정을 보며, 소파에 앉아, 러닝바람으로 TV를 시청하며 낄낄거리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샘 해밍턴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회사에선 그리 유능한 직원도 아닌 것이, 가정에선 아내와 아이들의 이상적인 남편과 아빠도 아닌 것이.

한때는 소년이었다고 우겨봐야 태초부터 머리 벗겨지고 똥배 튀어나온 채 엄마 뱃속에서 나왔을 거라고 짐작하는 사람들에게 구구절절 옛날의 꿈과 이야기를 들려줘봐야 황당하다는 반응만 돌아올 뿐이다. 결국 빛나던 그 시절은 지나가버렸고, 지하철 2호선처럼 순환하는 삶 속에서 가장과 남편이라는 기능에 충실하기 위해 오늘도 전력투구를 하고 있지만, 들려오는 것은 누군가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뿐이다. 그래서 샘 해밍턴의 고군분투는 더 눈물겹다. 동료들로부터, 조교로부터 한명의 부대원으로서의 가치를 보여주기 위해 벌이는 그의 인정투쟁은 뼛속까지 뭉클하다. 무조건 잘하겠습니다가 아닌, ‘무릎이 나갈 것 같습니다’, ‘누구보다 잘할 것 같지는 않지만, 아무튼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는 그의 고백은 세상이 원하는 대답이 아닌, 진실한 우리의 속마음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도 이름을 잃어버렸다. 우린 과장님, 부장님 혹은 여보, 아빠로 불리는 삶을 산다. 김부장이라는 호칭 속엔 부장 봉급을 주고 있으니 똑바로 하라는 경고가 담겨 있으며, 아빠라는 부름에는 나를 위해 이것저것을 해줘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숨어 있다. 숫자로 표기되는 훈련병의 신분 속에서 샘 해밍턴이 흙탕물에서 구르고, 어깨가 빠져라 봉체조에 지쳐갈 때, 우린 김 부장을 보고, 아빠의 모습을 본다. 35번이라는 익명성은 곧 우리 모두를 가리킨다.

역사란 곧 그 사람이다. 무엇을 먹는지가 아닌,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지가 그 사람을 만든다. 군대와 축구 이야기라면 지겹다는 표정을 짓는 누군가에게 TV의 예능이 선사한 버라이어티한 재미를 곁들여, 아이러니하게도 호주 ‘싸나이’ 샘 해밍턴이 대한민국 남자들의 역사를 들려준다. 우린 산을 넘고, 강물을 건너며, 헬기레펠의 공포를 견디고, 할 수 있습니다를 외쳐댄 ‘싸나이’였던 것이다. 지금 이 자리까지 딱지 쳐서 온 것이 아니라는, 수많은 망치질과 담금질을 견디며 강철처럼 버텨온 ‘싸나이’라는 것을 샘 해밍턴은 매주 보여주고 있다. ‘힘내라, 샘! 힘내라,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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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회-유격장에서 생긴 일

생각만 해도 숨이 턱까지 차고, 눈물, 콧물이 쏟아질 것 같은 군대의 유격장에서 우리의 샘 해밍턴은 예외없이 고문관이다. 그러나 그가 도하훈련장에서 흙탕물 속을 구르며 ‘한번 더’를 외칠 때, 우린 누구도 그를 보며 웃을 수 없다. 싸나이와 군대의 깃발은 낡을수록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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