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합정파’가 있었다. 이름 그대로 합정동 근처에서 자취하는 네명의 기자들이 가끔 동네에서 얼굴이나 보자고 만든, 회비도 없고 정모도 없는 느슨한 모임이었다. 슬리퍼에 편한 옷차림으로 동네 호프집에서 만나 수다를 떨다가 누군가가 “그만 일어날까?”라고 말하면 회사에서 보자는 인사와 함께 다들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가곤 했다. 아쉽게도 지금 ‘합정파’ 멤버는 나 혼자다. 신모 기자가 장가를 가고, 이모 기자가 서울 동쪽으로 집을 옮긴 데다 김모 기자는 워낙 공사다망(?)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모임이 와해됐다. 회사에서 매일 보는 사이라 섭섭함은 덜하지만 동네 마트에서, 분식집에서, 호프집에서 불현듯 만날 수 있었던 그때가 가끔씩 생각나곤 한다.
혼자 사는 데에도 ‘연대’가 필요하다. 연대란 거창한 약속도, 담보해야 할 책임도 아니다. 그저 나의 삶과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면 그만이다. 손발을 힘껏 뻗어 혼자서 벽지를 붙이고, 마트에서 1+1 행사를 보아도 당장 음식물 쓰레기부터 걱정하며, 내 한몸 나라도 잘 건사해야겠다는 생각에 홈쇼핑에서 건강용품을 주문해본 경험. 그 소소한 삶의 조각들을 나눌 수 있고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에너지가 있기 마련이다.
<나 혼자 산다>는 다양한 계기로 나 홀로 족이 된 여섯 남자의 ‘연대’기다. 예측 불허의 아이들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군대나 시골처럼 혹독한 환경도 없이 그저 남자 여섯명이 서식하는 방구석을 비추는 게 재미있을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 은근히 웃기고 은근히 애처로우며 은근히 가슴을 울린다. 그건 여섯 남자들이 선보이는 혼자 살기의 여러 유형들이 같은 화면 속에 따로 또 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양초를 켜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때 누군가는 삼각김밥과 불닭라면을 먹으며 사람을 그리워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고독을 자양분 삼아 음악 작업을 한다. 혼자 살아간다는 건 그동안 수많은 방송 프로그램과 영화들이 그려왔던 것마냥 찌질하거나 멋진, 양극단의 삶이 아니다. 반려자와 살아가길 선택한 사람들에게도 매 순간의 희로애락이 존재하는 것처럼, 혼자 사는 이들에게도 다양한 삶의 결이 존재한다. 그러니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 것. 혼자 살아서 외로운 게 아니다. 게을러서 청소 안 하는 게 아니다. 부족해서 결혼 못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나 혼자 산다>는 혼자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느껴봤을 감정과 정서를 친근하게 건드리되 그들이 경계 바깥에 위치한 사람들에게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았던 나름의 사정들을 설득 가능한 방식으로 영리하게 가공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경계 안의 나 홀로 족들이라면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느낌이 들 테고, 경계 밖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청자라면 자신과 같지는 않지만 완전히 다르지도 않은 삶의 방식을 조금이나마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다.
최근 <나 혼자 산다>의 여섯 무지개 회원들은 막내 서인국 회원을 떠나보내고 네 마리 강아지와 동거 중인 ‘개엄마’ 강타 회원을 영입했다. 흐지부지됐던 <씨네21>의 ‘합정파’ 모임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길 예정이다. 아직 동네 마트에서 마주친 적은 없는 윤모 기자를 어떻게 영입해볼까. 내게는 데프콘 회원의 요다 젓가락이나 노홍철 회원의 접대용 테이블도 없는데. 일단은 이성재 회원처럼 ‘들이대기’ 전략을 사용해봐야겠다.
BEST EPISODE
9회-나 홀로 족이 가장 약해지는 시간
혼자 떠나는 여행보다, 회원들과 함께하는 특별한 미션보다 더 오랫동안 잔상에 남았던 건 무지개 회원들이 홀로 보낸 어떤 밤을 조명한 9회 에피소드였다. 호기롭게 혼자서 <아이언맨3>를 관람한 ‘한남동 황태자’ 이성재 회원. 소감을 나누고자 바쁘게 전화를 돌려보지만 당장 그의 곁으로 달려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별할 것도 신날 것도 없어 무료한 밤. 나 홀로 족이 가장 약해지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