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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들의 육아 교본

엄마가 본 <아빠! 어디가?>의 매력

<아빠! 어디가?>가 흥행하리라 예상한 이는 적었다. <해피선데이-1박2일> <일요일이 좋다-패밀리가 떴다> 등에서 우려먹은 ‘시골 가서 밥해먹고 놀다가 하루 자고 오기’ 예능에, 스타 부모와 자식이 함께 출연하는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의 기획을 섞어놓은 것이니 새로울 게 없었다. 아이를 대상으로 한 관찰예능이란 점이 신선해 보이지만, 그것도 90년대 초 <아기 꾸러기 병국이>에서 이미 봤던 게 아닌가. 하지만 방송 한달 만에 ‘윤후 먹방’이 터지면서, 시청률이 급상승했다. 요리하고 먹는 프로그램이 그렇게 많았건만, ‘윤후 먹방’이 특별한 화제가 된 건 무슨 연유일까.

윤후는 로망이 투사된 존재이다. 과거 배고프던 시절 어머니들은 “통통한 사내아이 하나 낳아서 원 없이 먹이며 키워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그 열망은 남아선호와 우량아 선발대회로 이어졌다. 배고픔을 갓 벗어난 70년 중반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란 카피는 그즈음부터 쏟아져 나온 인스턴트 식품들의 입맛과 함께 이후 세대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통통한 사내아이이자, 유난히 멘털이 튼튼해 보이는 윤후가 하필 짜장라면을 흡입하는 장면에 시청자가 꽂힌 것은 문화사적 맥락을 지닌다. 이는 튼튼하게만 자라달라는 주문을 들으며 자랐건만, 외환위기 이후 악화된 경제상황으로 삶의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한 70년대생들이 출산을 포기하면서, 십수년째 이어지는 ‘저출산 시대’의 결핍을 드러내는 징후이다. ‘윤후 먹방’과 <아빠! 어디가?>에 열광하는 이들은 비단 아이 부모들이 아니다. 오히려 미혼이거나 젊은 세대들이 많다. 그들은 부모 되기의 미션 앞에서 ‘아마 난 안될 거야’란 결핍을 내면화한 채 방송으로 대리만족을 삼는다.

<아빠! 어디가?>는 ‘아버지 육아’라는 사회적 요청을 반영한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아버지들은 돈벌어오는 기계로 살다가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내쳐지는 이중의 실패를 확인했다. 이후 기러기아빠는 돈벌어오는 아버지로 존재를 확인받으려는 극단의 가족기획으로, 부성소외의 바닥을 보여줬다. 그러나 아래 세대들은 변화에 눈을 떴다. 성인남성노동의 가치가 하락하고 맞벌이가 보편화되면서 아버지 육아는 저출산의 대안으로 떠올랐고, 남성들의 인식도 변했다. 10년 전 육아휴직을 신청한 아버지는 104명이었지만, 올해는 2천명이 넘을 전망이다. 세계 최장 노동시간과 고용불안이 아버지 육아의 보편화를 막고 있는 지금, <아빠? 어디가!>는 아버지 육아의 바람직한 교본이자 부러운 전범으로 기능한다.

사실 육아는 노동이자 노동이 아니다. 연애를 감정노동이란 말로 치환할 수 없듯이. 육아는 가장 오래 사랑할 사람과 일상을 공유하며 관계를 맺는 과정이다. <아빠! 어디가?>에서 아빠들은 아이에게 밥을 해먹이고, 씻기고 재운다. 과거 이는 모성의 이름으로 여성들에게만 부과된 활동이었다. 여성들은 육아가 본능이 아닌 노동임을 강조해왔지만, 육아가 대체 불가능한 추억을 쌓는 과정이자, 자신의 어린 시절과도 대면하는 치유의 과정임이 누락되어왔다. <아빠! 어디가?>는 아빠들에게 일상의 가치와 육아의 본질을 체험시키고, 아이들에겐 살가운 부정을 느끼게 한다. 6개월이 지난 지금, 그들은 조금씩 변해 있다. 아빠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큰 축복이다.

BEST EPISODE

24회-아빠가 달라졌어요

<아빠! 어디가?>를 통해 가장 크게 성장한 이는 성동일이다. 첫회에서 그는 아이가 “겁도 많고 소심하다”고 말했다. 우는 아이를 달랜 건 그의 매니저였다. 그는 앞서 걸으며, 돌부리를 차며 뒤따르는 아이를 나무랐다. 그러나 24회 촛불의식 때, 그는 말문을 닫은 아이를 다그치지 않는다. 잠자리에서 그가 조용히 묻자, 아이는 “아빠 사랑해. 가끔은 무서워도 아빠가 아주 잘해줘서 고마워”라 말한다. 아이를 기다릴 줄 아는 자상한 아빠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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