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들 사이에서 운동이 일어났다. ‘박남매고속도로테이프(이하 박고테) 추진협의회’가 결성된 것이다. 열성팬들이 곡을 개사해서 보내기도 했다. 박진영의 <난 여자가 있는데>를 바꿔 <난 벨트를 맸는데>, 교통경찰의 애환을 보여주는 <쯩바> 등등. <두 남자 쇼>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박수홍이 피아노를 치고 박경림이 노래를 부른 것. 잘했던 것인지 단지 두명이 어울려 부른 게 감동적이었는지 모두모두 그 모습이 좋았단다. “그 얘기가 처음 나온 건 라디오에서였다. 우연이었지만.” 박수홍은 “언젠가 이것을 꼭 실행하리라고 생각했다”.(프로듀서 내레이션 중)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지난해 11월9일 <아름다운 밤>(SBS 금 밤 9시55분)이 시작되면서 현실화되기에 이르렀다. 박수홍은 프로듀서로 박경림은 전속가수로 나섰다. 일명 ‘트로트 하이웨이’.
박경림이 노래를?
첫회에서 박경림은 피곤하면 세 갈래 반으로 갈라지는 목 상태가 노래를 감당할지에 대한 검사를 받았다. 서울 강남 Y종합병원 의사는 “왼쪽 성대에 찰과상이 있습니다. 성대구증인데요. 심하지는 않습니다. 노래를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콤플렉스를 극복한 휴먼 다큐멘터리를 절묘하게 구성하는 ‘어쩌면 좋아-위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결론’도 보기가 좋다. 기대에 찬 얼굴들. “처음은 미비했으나(‘미약’이 아니라) 그 끝은 창대하리라.”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작곡가 주영훈에게 가서 어떤 곡이 어울릴 것인가에 대한 테스트를 받고는 종목을 ‘뽕짝’으로 확정한다. “그렇지. 고속도로 테이프의 90%는 뽕짝이 아니던가”라는 결론을 그제사 내리긴 했지만 그리 늦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뒤늦은 결론이 이 프로젝트와 어울렸다. 이 프로젝트 자체가 그렇게 본격적인 게 아니니까. “쟤들 장난이 심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이라고 첫회에 말한 대로 ‘심한 장난’ 정도랄까.
박수홍의 “가사는 생활에서 나오는 것이다”라는 말에 자극받아서 박경림이 지은 <바나나>라는 곡은 이렇다. “나나야, 바나나야, 휘지 마, 휘지 마.” 박수홍이 지은 <식염수>라는 곡은 이랬다. “마시면 안 돼요 눈에다 넣어야지 염수야 식염수야 마시면 안 돼요.” 첫 번째 곡으로 박수홍이 지은 <착각의 늪>의 가사는 이렇다. “관심 없는 표정 짓고 있지만/ 흔들리는 니 마음 다 들켰어 인정해/ 속이려 하지마 말은 안 해도/ 날 보는 니 눈빛은 내게 빠질걸….” 박경림의 ‘현실상황을 해석한’ 곡이다.
여기까지 ‘심한 장난’이다. 가수 유리상자에 ‘가성’을 배우러 간 박경림은 울고 만다. 가성을 내지 못하다가 (내레이션에서는 밤새도록 연습했다고 한다) 나온 가성에 터진 울음이었다. “가성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힘든 것 같다.” “음역을 고려하여 그 음역에 해당하는 것으로만 작곡을 하면 된다.” “얘, 혀도 짧네”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울면서 박경림은 “이렇게 노래를 제가 못할 줄 몰랐어요”라고 말한다. 유리상자의 모습도 평소와 많이 다르다. 그들이 ‘같은 오락프로’에서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이야. 박수홍이 가사를 붙인 <착각의 늪>은 ‘히트메이커’ 주영훈이 준 곡이다. 자신의 이름을 건 곡에 장난을 쳤을 리는 없다. 캔과의 집중훈련이라고 간 스키장에 달려온 가수 김현정은 자신이 직접 만든 ‘프로다운’ 가사를 주기도 한다.
그렇다. 이 프로젝트는 ‘웃기려고’ 하고 있지만 여러 가수들이 합류하면서 장난이 아니게 되었다. ‘박고테 훼밀리’로 구체화된 면모는 세상에 이런 후원이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다. 유영석, 유희열, 윤종신, 강타, 주영훈, 이기찬, 남궁연, 박진영, 유리상자, 이기찬, 박효신, 장나라 등.
2회에서 다음과 같은 장면이 벌어질 때 미리 그 ‘불협화음’을 알아봤어야 했는데. ‘돈 없는 프로듀서의 호주머니 사정’ 때문에 소속가수가 데모테이프를 만들기 위해 간 곳은 노래방이었다. 그리하여 데모테이프 만든 데 든 비용은 1만5천원. 그런데 그 데모테이프 발표회장. 놀랍게도 그 회장에는 전시품이나 모조품이 아닌 김나는 음식들과 현악4중주단 그리고 얼음조각까지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한국의 내로라 하는 가수들이 출동했다. “그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꼭대기에서 굴린 눈덩이가 굴렀다, 구르다보니 산사태가 났다.
‘심한 장난’, 장난이 아니게 되다
코미디를 유지하려고 하는 등장인물의 안간힘과 가수로서의 프로의식을 요구하는 압력 사이의 알력. 이 알력이 코너의 재미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알력이 자아내는 긴장감은 다큐멘터리와 드라마 방식으로 부딪친다. 프로그램에서 ‘휴먼 다큐멘터리’라고 주장하는 부분은 드라마적이다. 박수홍은 프로듀서라는 역을 박경림은 가수라는 역을 맡아서 한다. 박수홍은 소속가수를 키울 재력이 의심스러운 ‘배째라’ 프로듀서라는 설정이다. 그들은 과연 난관에 부딪히지만, 결국 프로그램의 재력(제작비)에, 방송의 영향력에, 그들의 인맥에 기댄다. 드라마는 ‘다큐멘터리적’이 된다. 출연자들 역시도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무시로 넘나든다.
3회 데모테이프 발표회장 초대자 명패에 마이클 잭슨이나 마돈나 등이 있다(코미디 드라마). 약속시간이 1시간이 넘었는데도 초대손님이 오지 않는다. 박경림은 “창피하잖아요. 이게 뭐예요” 하면서 울기 시작한다. 그 순간 “다 끝났어?” 하면서 주영훈이 들어오고 잇따라 김민종, 유리상자의 이세준, 주영훈, 유영석, 이기찬 등이 온다(드라마). 노래방에서 녹음한 테이프를 들려준 뒤 프로듀서가 허심탄회한 대화를 듣겠다고 소속가수를 밖으로 내보낸다. 그러자 “왜 저걸 내야 되는 거죠?”(홍경민), “쟤네들 웃기려고 그러는 거야”(주영훈), “인지도가 있으니까 노력 없이도 성공한다. 하지만 의도된 대로 성공하는 게 더 중요한 거라면 모험도 좋지만 경림이 솔직히 발성연습을 해야 된다”(유리상자), “정식적인 음악을 소화하기는 힘들 것 같다”(유영석), “음악성 승부가 아니다. 아이템이다. 외적인 것을 감안해야 한다. 반드시 성공한다. 자만할까봐 불안할 정도로”(윤정수), “선곡을 잘하면 된다”(홍경민),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해서 마음으로 찬성하고 있어. 다만… 여기서 스톱해”(김민종). 소속가수가 이 말들을 듣지 못하도록 밖으로 내보냈지만(드라마) 이들은 이 말을 소속가수가 듣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다큐멘터리). 다음주에는 이미 전국의 시청자들도 다 알게 될 건데.
11회, 주영훈의 곡을 받고 연습까지 한 뒤 녹음을 하기로 한 박 남매, 그들은 녹음실로 간다. 프로듀서 박수홍은 내레이션으로 “한방에 끝내야 돼! 한방에! 사실은 녹음실 협찬을 한 시간밖에 못 받았거든”(드라마)이라는 말을 읊는다. 녹음실에 있는 주영훈은 자신의 ‘진짜’ 직업이 프로듀서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자신은 음악을 녹음할 때는 신경이 날카로워진다고 말한다(다큐멘터리). 경림은 연습을 제대로 못했다(다큐멘터리/드라마). 경림은 목이 풀리지 않는다. 주영훈은 이대로는 녹음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부를 거야”, “이거 참 큰일이네”, “그건 흥얼거리는 것 아닌가”, “노래 연습 했니”, “그렇게 많은 사람이 도와주는데, 노래는 이 엔지니어분이 더 잘할걸”. 박수홍은 녹음실로 들어가서 박경림을 야단친다. “오늘 녹음할 거면 열심히 일해야지.” 여기서 울음을 터트리는 박경림. 녹음실 밖에서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생각한 박수홍은 이렇게 말한다. “네가 이해해. 녹음할 때 성격 더럽다잖아. 맞춰줘. 내가 야단치는 척 할게.” 밖으로 나온 주영훈은 심각하게 박수홍을 질책한다(다큐멘터리/드라마). 녹음실의 소리를 다 듣고 있었던 것이다. 박수홍은 망연자실한다. 그런 순간에 ‘박수홍의 매니저’로부터 음료수 등의 뇌물이 도착한다(다큐멘터리 이외 상황).
녹음실 안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방송카메라가 녹음실 안으로 따라 들어갔으므로 그 순간은 녹화됐고 방송될 것이다. 작곡가를 험담하는 것을 그 순간은 듣지 못한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듣는다. 그런데도 안에 들어간 프로듀서는 꾀부리고 밖의 작곡가는 장단을 맞춰 질책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미묘한 찰나가 다큐멘터리적이지 않다면 드라마는 성립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가 대면하는 순간은 박경림의 팬클럽 창단식에도 나왔다. 프로듀서는 “국내에서 끝내지 않고…” 운운하는데 창단식에 참가한 팬들은 “우리가 고속도로 테이프를 내기로 했는데요” 하기 전부터 이미 다 알고 있다.
프로그램이 뜨면 변한다?
오락프로그램에 도입된 다큐멘터리는 익숙하다. 대부분은 몰래카메라였는데 이제는 정해진 ‘목표달성’이 많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로 보여지는 것 역시 드라마적으로 구성된다. 다큐멘터리 자체가 가진 ‘생생함’까지 그대로 갖기 때문에 가끔은 위험해지기도 한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의 구분은 시청자의 본능에만 의지할 뿐이다. 반쯤은 믿고 반쯤은 웃어넘긴다. 웃으라 하면 웃고, 심각해져라 하면 심각해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심각해지는 순간에 의문을 던지기가 쉽지 않다. 부수적 효과가 웃음이고 본래 성격은 ‘진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트로트 하이웨이’는 드라마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다큐멘터리에 물음표를 찍는다. 잘해봤자 우리 심한 농담하고 있는 거예요, 하는 애교를 살짝살짝 비추는 것이다. 그래서 이 애교가 먹히지 않을 때, 직언에 충격받은 소속가수 박경림이 덩달아 심각해질 때, 가수라는 프로페셔널에 동화되어 심각함이 웃음을 가릴 때, 가수마저도 드라마를 저버렸을 때, 프로그램은 무기력해진다.
‘트로트 하이웨이’는 점점 드라마가 다큐멘터리를 감당할 수 없어하고 있다. 점점 사실쪽으로 무게가 옮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경진 PD는 “규모를 일부러 키우고 있다. 2월3일 사랑의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불우이웃을 도우려면 일단 수익을 내긴 해야 할 텐데. 테이프와 CD의 유통마진이 똑같다고 하더라. 테이프로만 제작하면 잘 팔리지 않으니 CD로도 낼 것”이라고 한다. 지금 주영훈, 윤종신, 남궁연, 작곡가 김동규의 듀엣곡 4곡을 받고 녹음까지 마쳤다. 녹음은 2월 말까지 완성할 계획이다. “홍콩의 여명과 이가흔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들이 2월 말 3월 초에 뮤직비디오를 찍을 예정”이어서다. 요약하자면 콘서트를 개최하고 홍콩 스타를 불러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테이프가 아니라 CD를 내고 고속도로가 아니라 사람들의 오디오 데크에서 울려 퍼지게 한다. 수익금이 모여 불우이웃을 돕는다. 설마? 농담도 잘 하셔…. <아름다운 밤> 12회분의 토크쇼 주제는 이거 였다. ‘연예인이 뜨면 변한다?’. 프로그램도 같다. 구둘래 kuskus@dreamx.net
오락프로그램 속의 다큐멘터리
나쁜 진담
1월30일 <섹션TV 연예통신>은 시작하자마자 <!느낌표>의 김영희 PD 인터뷰를 내보냈다. <!느낌표>의 ‘다큐멘터리-이경규 보고서’의 너구리 포획 현장이 재촬영 되었다는 것. 촬영진은 그간 매주 3-4개조의 잠복근무조를 운영하며 너구리를 기다렸지만 정작 포획된 순간 촬영 기회를 놓쳤다. 그래서 재촬영을 했으며 “재촬영 장면이 나갔지만 고지가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 사과를 드린다”는 내용이었다. ‘다큐멘터리’라고 고지된 순간 오락프로 내에 존재하는 코너라고 하더라도 아무도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느낌표>의 재촬영 보도에 이어 <섹션TV 연예통신>이 보도한 김희선과 에릭의 스캔들 보도 장면을 보자. 김희선과 에릭의 방송용 화면을 짜집기하여 두 명의 스캔들을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편집화면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지만 스캔들에 대한 심적 확증을 덧붙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 프로그램은 ‘오락 프로그램’으로 분류되지만 ‘진실’을 생명으로 하는 ‘보도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이 진담은 좀 슬프다.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의 ‘유리의 성’은 ‘스타 만들기 프로젝트’다. 1탄으로 띄울 스타는 개그맨 김한석이었다. KBS 별관 옆에 유리의 성을 지었고, 100일 동안 그를 그곳에서 생활하도록 한다. 유리의 성 내의 5개의 카메라가 잡는 장면은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된다 (http://www.crezio.com/event/yurisung/). ‘24시간 팬에 노출시켜서 인지도를 높이고 본인에게는 스타로서의 역량과 공인으로서의 자세를 훈련시킨다’는 것.
100일 동안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는 후반으로 가면서 맥이 빠졌다. 시청자 사이에서 “그가 중도에 포기하고 유리의 성을 나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유리의 성’은 ‘스타가 됐어야 할’ 디데이가 가까운 1월에 한번(1월 20일)밖에 방영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도 방영시간은 4분. ‘노출’만이 스타 만들기의 필수조건이 아님이 결론났지만, 시청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개그맨은 계속 유리의 성에서 생활해야 했다. 성공 강박이 낳은 ‘진담’은 사실 일종의 해프닝으로 그쳤다. 김한석은 2월2일 유리의 성을 ‘출소’하게 된다. 진담은 때로 농담보다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