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된 지 몇년이 흘렀지만 <매트릭스>는 여전히 흥미롭다. 영화의 시각적 스타일은 뛰어나고, 시나리오는 훌륭하며 온갖 장르를 혼합하는 기교 역시 탄성을 자아낼 지경이다. “영화는 동적인 흥분으로 가득 차 있으며 시각적으로 눈부신 한편의 사이버 모험극”이라는 해외의 비평이 과장은 아닌 듯하다. 평소 SF소설과 만화를 즐겨본다는 워쇼스키 형제는 <매트릭스>에서 대중문화의 온갖 파편적인 이미지를 배합하며 즐긴다. 영웅의 등장, 그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 이어지는 공식은 진부한 감이 없지 않지만 영화에 신화적 기운을 채색해 놓기에 충분하다. 이를테면 <매트릭스>는, 대중문화를 즐기는 세대를 위한 일종의 ‘장난감’ 같은 영화다. 토머스 앤더슨에겐 두 가지 신분이 있다. 프로그래머 앤더슨, 그리고 해커 네오다. 그를 체포한 비밀요원들은 이상한 기계곤충 같은 것을 뱃속에 집어넣는다. 앤더슨은 모피스라는 인물을 만나는데 두 가지 길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최근 벌어진 모든 일들을 잊는 것, 다른 하나는 이 삶이 거짓임을 인정하고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후자를 택한 앤더슨은 2019년에 깨어나 인간이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에 양육되는 현실을 깨닫는다. 모피스와 동료들은 기계에 대항해 매트릭스와 현실을 오가며 투쟁중이다.
<매트릭스>는 여느 SF영화들이 실패했던 같은 지점에서 출발한다. 현실과 가상세계는 어떻게 다를까? 둘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영화는 가상세계와 현실의 위치를 역전시킨다. 우리는 허상들로 이뤄진 세계에서 기계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미약한 존재에 불과하다. 이 문제의식은 여느 사이버펑크 영화가 기술 문명에 대해 보이곤 했던 절충적이고 가치중립적인 태도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매트릭스>는 홍콩영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MTV에 중독된 세대가 처음으로 만들어낸, “우리끼리 돌려보자”는 목적의 교본(敎本)용 작업으로 기억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