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전 남동철 기자와 인터뷰한 게 마지막인 것 같은데….” 남기웅 감독은 인터뷰 장소에 들어서자마자 <씨네21>과 인터뷰한 추억을 떠올렸다. 2000년 그가 내놓은 데뷔작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는 긴 제목만큼이나 과감한 실험정신이 돋보였고, 에너지가 넘치는 작품이다. 남기웅 감독은 이후 <우렁각시>(2002),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2005) 같은 영화로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다가 TV용 영화 <이브의 유혹: 키스>(2007) 이후 지금까지 6년 동안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새로운 형식에 도전하고 개성을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두던 전작과 달리 6년 만에 내놓은 <콩가네>(7월11일 극장 개봉)는 남기웅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이 반영된 가족드라마다.
-촬영한 지 꽤 됐다고 들었다. =지난해 12월24일에서 25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끝났다. 고생들 했지. 한겨울이라 춥지, 눈은 펑펑 내리지, 바람은 몰아치지. 세트장 안 날아간 게 다행이지.
-고향이 속초인가. =아니다. 속초를 아주 좋아한다. 질풍노도의 20대 때 속초, 강릉쪽으로 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래서 <콩가네> 시나리오도 속초의 한 바닷가에 있는 펜션에서 썼다. 촬영할 때는 그때 묶었던 방에 머물렀다.
-<콩가네>의 주인공은 못난 아버지 장백호다. =못난 건 아니고 강경한 아버지다. 내가 그런 것 같다. 아버지가 되고, 내 아버지를 겪으면서 말이다. 고향이 경북 예천인데 가풍이 엄하기로 유명하다.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그렇다고 아버지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나쁜 아버지가 있으면 집안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더 나쁜 놈(장백호)이 덜 나쁜 놈들(장백호의 가족)을 감옥에 처넣고 자신이 피해자라고 길길이 날뛰고 사람 잡는 게 이 영화의 주요 이야기다.
-그 메시지를 가족을 통해 그려낸다. =(기자에게) 동생을 잘 아나? 난 우리 형을 잘 몰라. 함께 일하는 사람보다 훨씬 몰라.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족 구성원끼리 보이지 않는 폭력이 벌어진다. 그럼에도 함께 살아가고, 이해하고, 보듬는 게 가족이라는 거다.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실제 아버님은 어떤 분인가. =기자시사회 때 모실 거다. 아버님이 30년 동안 마을 이장을 하셨는데 동네 회관에서 이장 고별 연설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 감동받았다. 극 중 장백호 노모의 모델은 얼마 전 돌아가신 내 어머니다. <콩가네> 시나리오를 쓸 때 어머니가 당뇨를 앓으셨고,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셨다. 세상 모든 아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불효자였다. 어머니는 내가 만든 영화를 한편도 못 보고 돌아가셨다. 그래서 내 영화 DVD를 관 속에 함께 넣어드렸다. 가지고 가서 보시라고.
-장백호 역을 맡은 김병옥은 이번 영화에서 처음 주연을 맡았다. =캐스팅 1순위였다. 만나기 전에 그의 출연작 몇편을 챙겨봤다. 워낙 세서 약간 걱정이 되더라. 그런데 만나보니 털털하시고, 편하게 대해주시더라. 본인도 편하게 하고. 영화에서 뵐 때처럼 무서운 모습이 아니었다. 그리고 “주연이 처음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잘 끌고 갈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게 너무 고맙더라. 촬영 전 대본 리딩을 많이 했다. 항상 30분 일찍 나오셔서 준비하고, 새벽에 찾아와 함께 시나리오 고치고. 그 덕분에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콩가네>는 6년 만의 연출 복귀작이다. 어떤가. =그동안 먹고살기 힘들었다. 영화 잘못 만들면 이렇게 된다. 그건 개인의 역량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산업 분위기와 관련된 문제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어쩔 거야? 스스로 알아서 적응을 하든가, 아니면 어떻게든 살 궁리를 해야지. 그래서 이를 악물고 만들었는데 자연재해에는 당할 수가 없겠더라. 영화의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힘을 실어야 하는데, 시간, 비용, 날씨 등 여러 문제 때문에 원하는 대로 찍지 못해 아쉽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면 더 잘할 거다.
-차기작은 뭔가. =<콩가네>가 7월11일 개봉하는데 이틀 뒤인 13일에 <들국화>라는 제목의 작품 촬영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