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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sh on] 윤종빈 감독을 주목한다
장영엽 사진 오계옥 2013-07-04

칸 영화제 부집행위원장 크리스티앙 전

2004년, 칸영화제 조직위는 사상 초유의 사고를 경험했다. 그들은 경쟁부문 상영작인 왕가위 감독의 <2046> 언론 시사회가 시작될 무렵, 22개의 릴 중 단 하나의 릴만 가지고 있었다. 나머지 릴을 실은 두대의 오토바이가 칸 도심을 질주하고 있을 때, 부집행위원장인 크리스티앙 전은 세계 각국의 영화계 관계자 12명과 통화하며 <2046>의 순조로운 상영을 진두지휘해야 했다. 릴을 교체하는 순간의 10초 페이드아웃이 있었을 뿐, <2046>의 상영은 무사히 마무리됐다. 경쟁부문 영화의 선정부터 영화제 손님맞이까지, 집행위원장 질 자콥과 더불어 칸영화제의 실질적인 운영을 도맡고 있는 크리스티앙 전에겐 매년 가슴 쓸어내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터다. 그런 그가 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인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인 KAFA+의 6월19일 마스터클래스 강연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20여년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영화제에 몸담아온 그와의 인터뷰를 전한다.

-1년 일정이 가을부터 시작한다고 들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지금이 가장 조용한 시기다. 금요일(6월14일)에 칸영화제 사무실 업무를 마쳤다. 이번 일정이 영화제 이후 나의 첫 여정이다. 업무는 다시 10월 말쯤에 시작할 예정인데, 그사이엔 바캉스를 떠나거나 나만의 즐거움을 위해 영화를 본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참석할 예정인가. =당연하다. 올해로 16번째 부산에 간다. 한국이 아마 내가 가장 많이 방문한 나라일 거다. 부산에서 1년 일정을 시작하는 걸 좋아한다. 왜냐하면 한국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나라이고, 부산영화제는 모든 아시아영화 관계자들이 모이는, 건설적이고 밀도 높은 행사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경쟁부문에 초청할 영화를 선택하는 작업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올해 <아델의 삶-1&2>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는데,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결과였나. =칸에서는 마지막 순간에 늘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올해 출품작 중 <아델의 삶-1&2>를 처음 봤을 때, 영화제에서 그 영화를 접한 영화계 관계자들과 언론이 받았던 충격을 나도 고스란히 받았던 기억이 난다.

-단편영화부문의 경쟁작 선정에도 관여하나? 올해 한국 감독 문병곤의 <세이프>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매년 4천편 정도의 단편영화가 칸에 출품되고, 8명으로 구성된 조직위원회에서 40여편의 영화를 고르면, 그중에서 내가 최종적으로 경쟁부문에 진출할 9~10편의 영화를 고른다. 경쟁작 선정에 아주 깊이 관여하고 있는데, <세이프>를 보고는 굉장히 만족했다.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잘 다듬어진 단편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장르영화의 요소들을 성공적으로 담아내고 있더라. 나는 문병곤 감독이 장편영화 또한 잘 만들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영화제에 출품되는 수많은 영화를 보고 경쟁작을 선정한다는 건 달리 말하면 굉장히 많은 영화를 거절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올해 1700여편의 장편영화가 칸에 출품됐다. 물론 예술감독 티에리 프리모도 함께하지만, 주로 내가 거절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올해 적어도 1400여통의 거절 메일을 쓴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건 감독들에게 3, 4년 동안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을 퍼부었던 그들의 작품들을 영화제가 진지하게 고려했다는 걸 이해시키는 거다. 프랑스 사람처럼 직접 연락 가능한 경우라면 전화도 많이 한다.

-한편으로는 칸의 경쟁부문에 꼭 초청하고 싶기 때문에 공들이는 감독도 있을 법한데. =혼자서 결정을 내릴 수는 없고, 최종 결정은 티에리 프리모가 내린다. 그와 토론을 많이 하고, 자주 싸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2004년 남우주연상 수상작)를 경쟁부문에서 상영하기 위해 혼자 애를 쓴 기억이 난다. 도쿄에서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직감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을 거라 확신했지만, 처음에 <아무도 모른다>는 경쟁부문 상영작으로 선택되지 못했다. 결국 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상영된 뒤엔 모두가 좋은 작품이라는 점에 동의했지만. 로랑 캉테의 <클래스>(2008)도 경쟁부문을 선택하는 기간에 이 영화를 옹호하기 위해 조직위원들과 굉장히 많이 싸웠고, 결국 황금종려상을 수상해 자랑스럽고 애착이 가는 영화다.

-현재 주목하고 있는 한국 감독이 있다면. =이창동, 홍상수, 봉준호, 김기덕, 박찬욱, 김지운, 임상수…. 한국 감독들은 개성이 굉장히 뚜렷하다. 단지 한국에 왔기 때문에 하는 칭찬이 아니다. 봉준호 감독은 늘 모두를 놀라게 하며, 이창동은 문학적인 작가다. 홍상수를 초대하는 건 이미 칸에서 일종의 전통이 되었다. 김기덕은 다양한 방면으로 관심사를 넓혀나가는 감독 같고, 박찬욱은 강렬한 비주얼과 테마를 잘 다루는 감독이라 생각한다. 최근 주목하고 있는 또 다른 감독은 윤종빈이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를 보고 나는 성공적인 미국 갱스터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사회적인 면이나 경찰 세계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는 미국의 뭇 갱스터영화들보다 훨씬 강렬한 지점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이 감독이 한국에서나 국제적으로, 아직 재능에 걸맞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윤종빈의 영화는 굉장히 특별한 정서를 담고 있다. 나는 언젠가 그가 대단한 영화를 만들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인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인 KAFA+ 강연을 위해 내한했다. 어떤 강연을 준비하고 있나. =우선 칸영화제의 다양한 면모에 대해 설명해주고 싶고, 한국 영화인과 많은 부분을 교류하고 싶은데, 특히 한국 영화계 관계자들이 칸에 대해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가 궁금하다. (웃음)

-아마 가장 궁금한 건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칸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이 될 수 있는지가 아닐까.(웃음) =좋은 질문이다. (웃음) 1978년이었나, 고등학생 시절에 칸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툴롱이란 지역에 살았다. 어느 날 수업을 빼먹고, 기차에 무임승차해 칸까지 갔다. 칸영화제가 열리는 극장의 매표소 직원에게 표를 얻어 타르코프스키의 <스토커>를 봤다. 그곳에서 나는 영화를 처음 발견했다. 칸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생 때 3주간 스탭 일을 하기도 했다. 외교관을 꿈꾸던 나를 이 직업으로 인도한 결정적인 사람은 집행위원장 질 자콥이었다. 처음에는 3개월 일해보자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게 6개월이 됐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칸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이 되어 있더라.

-질 자콥은 2015년에 은퇴한다.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만큼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굉장히 많은 생각이 든다. 나와 칸을 이어준 사람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질 자콥은 오늘날의 칸영화제를 만든 장본인 아닌가. 아마 새 시대가 열릴 거다. (조금 있다가) 아니, 과연 새 시대일까. 칸의 힘은 안정성과 연속성이기 때문에 질 자콥 이후의 조직위를 새 시대라 부를 순 없을 것 같다.

-질 자콥처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진심으로 한번도 그런 생각은 안 해봤다. (웃음) 이 일은 너무나 특별하다. 나는 직업적인 관객이 되어 때로는 놀라고, 때로는 불편한 순간도 겪으면서 계속 이 일을 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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