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록적인 규모의 좀비영화.’ <월드워Z>가 새롭게 선보인 좀비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한때 인간이었으나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에 의해 좀비가 된 이들은 마치 삽시간에 광활한 평원의 생명을 털어가버리는 메뚜기떼처럼 무서운 속도로 증식하며 인류의 숨통을 옥죈다. 장벽을 넘기 위해 좀비들이 만든, 인간의 육체로 쌓아올린 바벨탑의 이미지로 마크 포스터는 좀비영화의 비주얼을 새롭게 혁신했다. 지난 6월11일, 주연배우 브래드 피트와 함께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몬스터 볼> <스트레인저 댄 픽션> <007 퀀텀 오브 솔러스>, 그리고 <월드워Z>까지 전혀 다른 스타일의 영화들을 연출해왔다. 다양성과 유연함의 원천은 무엇인가. =나는 여러 장르에 도전하는 것을 즐긴다.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소재를 받았을 때 가장 흥분된다. 스크립트를 읽었을 때 ‘와, 이걸 어떻게 영화로 하지?’라는 막막함과 곤란함이 느껴질 때에야 비로소 도전심과 승부욕이 생긴다. 히치콕처럼 하나의 장르를 완성시키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나는 빌리 와일더처럼 여러 장르에 도전하고 싶다.
-그 말처럼, 이번 영화 <월드워Z>의 원작은 시나리오로 각색하기 굉장히 힘든 작품이었다. 주인공도 없고, 작풍도 다큐멘터리 스타일이다. 어떤 전략과 방식으로 접근했나. =원작은 선형적인 드라마 형식이 아니라 54개의 개별적인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작품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잠정적인 청자(聽者)로 설정되어 있는 유엔의 조사단원을 아예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가 맨 처음 감염된 ‘페이션트 제로’를 찾아가는 여정을 이야기의 뼈대로 세웠다. 또한 영화에 박진감과 생생함을 부여하기 위해 원작처럼 플래시백을 쓰지 않고 모든 장면을 현재형으로 진행했다.
-유엔의 조사관 제리 레인은 어떤 인물로 구상했나. =시드니 폴락의 <코드네임 콘돌>(1975)처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싶었다. 무지막지한 힘을 가진 슈퍼히어로 대신, 주저하고 망설이는 종류의 현실적인 영웅을 내세우면 보다 사실적인 긴장감을 연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거대한 이야기를 한명의 주인공이 끌어간다면 관객이 볼 수 있는 범위가 크게 제한되고 개연성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영화를 평행적인 스토리라인으로 이끌어나갔다. 가족의 이야기와 거대한 서사시 같은 재난장면을 나란히 놓고 진행한 거다. 가족의 이야기가 영화의 정서적인 핵심인 반면, 재난장면은 액션과 스릴의 주무대다.
-평행적인 이야기의 진행뿐 아니라, 러닝타임 초/중/종반에 상이한 장르와 스타일의 화법들이 섞여 있다. 일관성을 지키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초반의 필라델피아와 이스라엘의 재난을 보여주는 카메라는 주로 핸드헬드다. 주인공이 수백만명 사이에서 길을 잃고 어려움에 처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후반의 백신 개발 실험실에서는 보다 개인적이고 내밀한 긴장감을 보여준다. 막막하고 광대한 곤경에서 출발하여 점차 개인적인 여정의 끝으로 수렴하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압도적인 이미지는, 무엇보다도 어마어마한 수의 좀비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언덕의 모습이다. =나는 스위스에서 자랐다. 어릴 때 집 뒤에 큰 개미언덕이 있었는데, 언덕을 오르는 개미떼의 모습을 자주 바라봤었다. 이 작품을 맡기로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고 작업 내내 머릿속에 머물렀던 이미지도 그것이다. 이 영화 전체가 그 이미지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월드워Z>는 인구폭발 시대에 사는 인류의 공포에 대한 개인적인 비전처럼 느껴진다. =그렇다. 나에게 이 영화는 좀비 장르라기보다는 종말을 다룬 묵시록적인 스릴러(apocal yptic thriller)다. 이미 전세계에는 70억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100억명이 넘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언젠가는 이로 인해 세계가 멸망하고 우리는 우리가 초래한 결과를 마주해야 할 것이다. 나는 언제나 낙관적인 편이지만, 이러한 사실은 명약관화한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