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도중 문병곤 감독의 스마트폰은 수시로 울었다. 여러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 전화였다. 갑작스러운 관심이 부담이 될 법도 한데 이 젊은 감독은 그런 상황이 아주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그가 만든 단편 <세이프>가 얼마 전 폐막한 제66회 칸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세이프>는 학비를 벌기 위해 지하 주차장에 마련된 불법 오락실 환전소에서 일하는 여대생(이민지)이 도박 중독자(강태영)의 돈을 가로채다가 금고에 갇히는 내용의 이야기다. 13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금융 거래의 어두운 이면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수상은 예상했나. =전혀 못했다. 예상했더라면 자연스럽게 무대에 올라갔을 텐데. 사전에 수상에 대한 아무런 언질도 없었다.
-심사위원단은 영화의 어떤 점을 잘 봤다고 하던가. =이번 단편경쟁부문에서 돈을 소재로 한 영화는 <세이프>밖에 없었다. 에티오피아 출신의 한 심사위원은 “우리나라도 불법 환전소가 문제”라고 얘기하더라. 심사위원이었던 제인 캠피온 감독은 “긴장감있게 풀어나갔다”고 말해주었다. 자본이라는 추상적인 주제를 액션스릴러 장르로 익숙하게 얘기한 것을 잘 봐주신 것 같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동기(권오강)가 쓴 시나리오를 원작으로 했다. =원작의 주된 내용은 권오강이라는 친구가 불법 오락실 환전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담이다. 이 설정에서 자본의 거래를 부각하고 싶었다. 스스로 노는 데 대한 부채의식 같은 게 있다. 언제나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그래서 노동은 곧 자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환전소가 돌아가는 방식이 참 이상하더라. 환차 수익을 노리는 방식인데, 노동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채 자본이 이동하더라. 이 원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불법 환전소에서 일하는 여대생 아르바이트생 민지가 주인공이 아닌 환전소 자체가 주인공처럼 보이더라. =도박에 중독된 남자와 민지 사이에 돈을 주고받는 행위, 돈을 자동적으로 세는 계수기 등 돈이 거래되는 풍경을 일관되게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그걸 이미지가 아닌 사운드로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도박 중독자가 환전소 칸막이를 똑똑 치는 소리, 계수기가 돈을 세는 소리 등 돈과 관련한 사운드가 관객에게 건조하고 불편하게 들렸으면 했다. 사운드 덕분에 컷을 분할하지 않고 숏에 리듬감을 부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대부분 카메라를 고정한 채 찍었다. 영화의 후반부, 주차장 밖 실외장면만 핸드헬드로 찍었다. =단편 <세이프>를 통해 연기 연출과 콘티 연습을 하는 게 연출 목표 중 하나였다. 그러려면 카메라의 움직임이 고정되어야 했다. 카메라가 움직이는 순간 연기 연출에 집중하는 게 어려우니까.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무엇인가. =집에 8mm 캠코더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형과 함께 카메라를 가지고 놀았다. 그때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를 보고 영화감독은 정년이 없는 직업임을 알게 됐다. 어린 마음에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작 <No more coffee break>(2008)는 ‘슈퍼맘’ 문제를 다뤘고, <불멸의 사나이>는 독거노인 문제를 그렸다. 사회적인 문제를 소재로 삼는 데 관심이 많나보다. =이야기를 해야 하는 당위성이 중요한데, 그게 사회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나 문제인 것 같다. 그렇다고 어떤 문제를 잘 아는 상태에서 소재에 접근하는 건 아니다. 흥미있는 문제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차근차근 공부한다.
-<불멸의 사나이>는 2011년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됐고, <세이프>는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이 경험이 앞으로 영화를 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영화를 포기할 뻔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찍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 이야기를 계속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 특히 <세이프>는 앞으로 영화하는 데 좋은 출발점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