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대륙과 인종의 경계를 넘나들며 식민주의와 욕망, 폭력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왔던 프랑스 감독 클레어 드니의 시선은 지금 유럽 대륙에 머물러 있다. 도시의 밤거리를 배회하며 자신의 욕망을 좇는 <바스터즈>의 인물들은, 언젠가 파국을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위험한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은 이 타락한 도시의 진정한 선인인 마르코(뱅상 랭동)의 삶마저 파괴하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나쁜 놈들’ 천지다. 이번 영화를 통해 첫 디지털 작업을 시도한 클레어 드니는, 영화적 선택을 내리는 데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 주저함이 없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바스터즈>는 그녀의 머리와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무의식적인 매혹의 요소들을 엿볼 수 있는 영화다.
-비가 세차게 퍼붓는 첫 장면이 굉장히 강렬하다. =나는 비가 계속 내리고 있는 장면으로 영화를 시작해보고 싶었다. 마이클 만이 연출한 <도둑>의 첫 장면처럼 말이다. 음악을 맡은 뮤지션(<스튜어트 스테이플즈)에게 비에 관련된 음악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할 정도였다.
-<바스터즈>의 시사회에서, 이번 영화는 작업 과정이 매우 급박했다고 말했는데 그건 당신에게 큰 변화인가. =매우 큰 변화다. 나는 굉장히 느리게 작업하는 편이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초조함이 내 원동력이었다. 이번 영화는 달랐다. 제작사 와일드 번치의 프로듀서 뱅상 마하발이 지난해 초에 제안을 해왔다. “이번(2012년) 여름에 영화 한편 찍으면 어때요? 당신이 시나리오를 쓰면, 내가 돈을 구해올게요.” 그는 농담처럼 던진 말 같았는데, 내가 진지하게 받아들여버렸지. 나는 마치 경주를 하듯 새로운 영화 작업에 돌입했다. 나는 뱅상을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
-이 영화에 영향을 준 참고자료가 있다면. =이거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 내가 매료되었던 윌리엄 포크너의 책이 떠올랐고, 이번 영화의 주연을 맡은 뱅상 랭동의 얼굴을 생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0년대 필름 누아르 <나쁜 놈이 더 잘 잔다>가 생각났다. 그 영화의 주연배우였던 미후네 도시로의 영웅이자 희생자였던 복합적인 캐릭터가 떠오르더라. 나는 필름 누아르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나쁜 놈이 더 잘 잔다>도 당신 영화처럼 타락의 테마를 다루고 있다. 1950년대에 비해 현대 유럽의 타락이 더 심하다고 보나. =구로사와의 1950년대 영화는 일본의 특정 시기를 다루고 있다. 미국 문화가 물밀듯이 들어왔고 매춘과 타락이 만연한 시기였지. 나는 이것이 구로사와 아키라가 묘사하고 싶었던 일본이라고 생각한다. 내 영화 <바스터즈>와는 연출 방식이 많이 다른 작품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날의 세계도 그리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젊은 소녀들의 매춘에 관한 문제라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이 영화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소녀 저스틴은 소화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인 것 같다. 어떤 이미지의 배우를 원했나. =그녀는 포크너의 소설 <성역>의 캐릭터 템플로부터 영감을 받은 인물이다. 포크너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나는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는데, 그건 소녀가 그 자신의 불운과 대면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바스터즈>의 저스틴 역시 성폭행 등의 쉽지 않은 일을 경험해야 하는 인물이라, 사실 작고 가녀린 여배우 롤라 크레통이 그 역할을 잘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하지만 내가 본 롤라는 여성스러운 동시에 언제 무너져내릴지 모르는 불안감을 표출해낼 수 있는 배우였다. 그 점이 바로 내가 저스틴 역에 롤라를 선택한 이유다.
-윌리엄 포크너적인 여성 캐릭터를 통해 어떤 점을 보여주고 싶었나. =포크너는 일상의 비극을 그리는 사람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인생은 길지 않으며, 행복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는 이들에게 일깨워준다. 나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도덕을 얘기하기보다 아주 사소한 순간으로부터 삶의 다양한 관점들을 포착해낼 줄 아는 그의 화법에 깊이 매료됐다. 욕망에 사로잡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인물들, 포크너의 인물들이 이 작품에 임하는 나를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