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이 사랑하는 프랑스 작가주의 감독의 첫 미국영화. 아르노 데스플레생의 <지미 P>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너무나 유럽적인 이 지성의 감독이 미국을 배경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지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5월18일 기자시사를 통해 공개된 <지미 P>는 정신분석학과 꿈이라는 테마나 인물간의 대화에 주목하는 스타일에 있어 데스플레생 고유의 개성을 그대로 이어받는 영화다.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인디언 병사 지미(베니치오 델 토로)와 그의 상담을 맡은 정신분석학자 조르주(마티외 아말릭)의 우정과 치유를 조명한다.
-당신의 전작들을 돌이켜봤을 때, <지미 P>는 새로운 도전으로 느껴진다. =물론 이 영화의 시대와 배경은 내가 한번도 다뤄본 적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전작 <킹스 앤 퀸>에서 (이 영화의 원작인) 조르주 데브르의 책 <리얼리티와 꿈>(Reality and Dream)을 일부 인용한 적이 있다. 각기 다른 나라 출신의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두 남자가 정신분석을 통해 서로 우정을 나눈다는 이야기가 나를 사로잡았다. 이 영화의 주된 소재인 정신분석과 꿈, 그리고 대화는 언제나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나의 주관심사였다.
-<지미 P>는 전쟁 참전 뒤 정신분열증을 앓는 인디언 지미 피카드의 삶을 조명한다. 베니치오 델 토로를 지미로 캐스팅한 이유가 뭔가? 실제 인디언을 배우로 쓸 생각은 안 해봤나.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지미 피카드라는 사람의 자화상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보는 이들이 지미의 삶 속으로 깊이 몰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몰입은 오직 무비스타만이 이끌어낼 수 있다. 지미 역으로 누구를 캐스팅할지에 대한 고민을 굉장히 오랫동안 했다. 나는 인디언을 연기한 많은 배우들의 영화를 찾아봤다. 숀 펜의 영화 <서스펙트>에서 자살하는 인디언 역할을 맡은 베니치오 델 토로의 강렬한 연기를 보고서야 바로 이 사람이 지미에 적역이라는 걸 깨달았다.
-조르주 데브르의 책 <리얼리티와 꿈>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꼈나. =나는 그 책의 이론적인 부분보다 조르주와 지미의 대화에 매혹됐다. 특히 정신분석학자로서 자신이 맡은 환자에 애정을 지닌 조르주 데브르의 태도가 나를 감동시켰다. 프로이트마저 이렇게 말했었다. “정신분석학은 중산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하지만 조르주는 <리얼리티와 꿈>을 통해 정신분석학은 모두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지미와 나누는 대화에서 인디언 환자를 진심으로 존중하는 태도와 조르주 자신의 성장까지 엿볼 수 있었다. 나는 이러한 조르주의 태도가 인디언 캐릭터를 다루는 나의 방식이길 원했다. 그래서 이 책의 핵심인 조르주와 지미의 상담 과정을 영화에 그대로 인용했다(인터뷰에 동석한 <지미 P>의 공동 각본가 켄트 존스는 몇 가지 영화적 설정을 제외하면 이 영화의 대사는 조르주 데브르의 원작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편집자).
-지미는 네이티브 인디언이고, 조르주는 유럽 출신의 유대인이다. 당신은 이 두 소수민족이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나. =공통점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단지 나는 인디언과 유대인이라는 두 남자의 정체성이 이루는 균형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조르주는 유대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려 하고, 지미는 인디언이라는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재밌지 않나?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려는 사람이, 자기 환자에게는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을 바라는 상황이 말이다. 한쪽은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하고, 다른 한쪽은 받아들이는 모습을 통해 정체성을 마주하는 두 가지 방식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지미 P>는 당신의 첫 영어영화다. 미국에서 작업한 소감은 어떤가. =(조르주 데브르 역의) 마티외 아말릭과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왔으니 그의 예를 들자면, 마티외는 한두 테이크를 찍고 나면 카메라 앞에 와서 내가 찍어놓은 장면을 보고 코멘트를 한다. 그렇게 프랑스 배우들과 작업할 때는 누가 연기를 신경 쓰고, 누가 연출을 신경 쓰는지 모를 지경으로 경계가 없는데(웃음), 미국 배우들은 다르더라. 자신이 해야 하는 일, 내가 요구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 그 선을 넘지 않도록 조심했던 것 같다. 더불어 해외에서 찍는 영화라 예산과 시간의 한계를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차이는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크게 걱정되는 것들이 아니다. 나는 이국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을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중요한 건 이야기의 설정상 이 영화를 미국에서 찍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지 내가 미국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이 아니다.